지난 21일, 마약 투약 혐의로 강제 출국당해 미국 LA에 머물고 있던 방송인 에이미가 현지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최초 보도한 <스포츠조선>은 에이미 측근의 발언을 인용해 "에이미가 자신을 소재로 다룬 19일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아래 풍문쇼>)를 보고 받은 충격과 억울함에" 자살 시도를 했다고 전했다.

"지인이 <악녀일기> 제작진이었는데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한 친구라 하더라고요.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건이 터지니 초반에 케어가 됐다면 어땠을까…."
"후배 기자가 에이미를 인터뷰했는데, 초면인 기자에게 2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대요."
"(해결사 검사 논란 당시) 검사 남자친구를 면회하러 가는데 취재진이 동행했어요. 현장 취재진에게 피부가 좋지 않으니 보정을 해달라고…"

에이미가 "충격과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해당 방송 내용이다. 패널들은 과거 에이미가 연인이었던 신화 이민우와의 결별 과정, 이후 김동완의 경고 등 에이미의 여러 논란을 세세하게 되짚으며, 자신들의 추측과 풍문을 더했다.

거침없이 '가십' 다루는 TV쇼 

 <풍문으로 들었쇼>, <용감한 기자들> 포스터.

<풍문으로 들었쇼>, <용감한 기자들> 포스터. 채널을 가리지 않고 이러한 가십 프로그램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 채널A/E채널


<풍문쇼>는 기자와 연예인 패널들이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가십 예능프로그램. 이들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여러 '설'들과 이미 보도된 뉴스 내용, 자신들의 일방적 경험 혹은 증언을 뒤섞어 떠든다. 선을 넘는다 싶으면 '설이다', '추측이다' 하며 도망갈 구멍을 파놓지만, 많은 시청자는 몇 가지 사실을 기반으로 나머지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20만 원을 빌렸다', '구치소 면회를 가면서 피부 보정을 요청했다' 등의 내용은 사실 여부와도 상관없는, 가십조차 되지 않을 '에이미가 이렇게 이상한 애예요'라는 뒷말에 불과하다. 패널들과 시청자들에게는 잠시 떠들고 지나갈 우스운 에피소드. 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한 인격체라는 걸 생각한다면, 미디어에 대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에이미의 과거 행적이 얼마나 잘못됐든지 간에 말이다. 심지어 한 패널의 말마따나 에이미는 연예인도 아닌,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조금 유명해진 '일반인'일 뿐이다.

<풍문쇼>가 2015년 한국을 떠난 에이미를 갑자기 소환해 그의 흑역사를 조목조목 끄집어낸 이유는 뜬금없지만 '정유라' 때문이었다. <풍문쇼>의 최근 포맷은 현재 화제가 되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뒤, 조금씩 가지를 뻗어 연예뉴스까지 오는 식이다. 19일 방송 역시 그랬다. 정유라가 귀국해 화제가 되자, <풍문쇼>는 그의 초호화 도피 생활이나 헤픈 씀씀이, 현재 머무는 최순실 명의의 200억 원대 빌딩 등 지극히 '가십'의 관점에서 정유라를 다뤘다. 이후 방송은 정유라의 "돈도 실력이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금수저들의 갑질을 지나 '연예계를 뒤흔든 문제적 금수저 스타'까지 흘러온다.

바로 이 문제적 금수저 스타가 에이미였다. 하지만 에이미가 끝이 아니다. 에이미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다 전하고도 방송은 전체 80분 이상의 1회 분량 중 30분을 갓 넘은 상태. 남은 1시간가량이 채워진 건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금수저 스타, 엄친아·엄친딸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유라'를 주제로 80분을 떠들 수는 없고, 연예계 금수저·엄친아·엄친딸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흔하고. 결국, 에이미 논란은 두 이야기를 잇기 위한 브리지(Bridge)였던 셈이다.

<풍문쇼>는 최근 무려 17년 전 배우 강남길 아내의 간통 사건을 재조명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 강남길의 오랜 상처가 헤집어진 이유도 이와 비슷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강남길은 브리지가 아니라 목적지였다는 정도. 12일 방송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러브스토리를 전하며, '역대 영부인의 내조 스타일', '연예계 대표 내조/외조 스타', '스타 배우자의 사고뭉치 남편' 꼭지를 거쳐 '배우자 외도로 고통받은 스타'에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러브스토리에서 강남길 아내의 간통 사건이라는, 공통점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두 이슈가 연결되기까지 고 장진영부터 최정윤, 설수진, 박철, 옥소리 등 여러 연예인 부부의 논란이 소환됐다. 이 과정에서 브리지(때론 목적지)가 된 연예인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기자가 이야기하면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

 풍문으로 들었쇼 화면 갈무리

<풍문쇼>의 최근 포맷은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뒤, 조금씩 가지를 뻗어 연예뉴스까지 오는 식이다. 에이미 논란은 두 이야기를 이어주는 브리지로 사용됐다. ⓒ 채널A


E채널 <용감한 기자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용감한 기자들>은 연예는 물론 여러 분야 기자들이 각종 뒷이야기를 전하고, 가장 자극적인 이야기를 '용감하게' 소개한 기자를 뽑아 '용감한 기자상'을 주는 방송이다. <풍문쇼>와 차이가 있다면 실명이 아닌 이니셜로 이야기한다는 것인데, 톱스타 A양의 스폰서, 아이돌 B의 은밀한 취미, 배우 C의 불륜 등이 단골 소재. 이니셜 뒤에 숨은 이야기는 더 자극적이고 과장되게 전달된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여러 '설'들은 기자들의 입을 타고 나왔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신뢰도'를 얻고, 연예인 패널들의 오버 섞인 리액션은 이야기에 '자극'을 더한다. 여기에 방송이 끝나면 누리꾼들은 이야기에 숨은 단서로 이니셜의 주인공 찾기에 바빠진다. 그래서 애꿎은 이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지만, 내놓고 해명이나 부인도 하지 못한다. 내놓고 부인했다간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오해를 사거나  되려 일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라시('찌라시'의 바른 표현)에나 오를 법한 황당한 이야기들은 "직접 취재한 내용"이라는 기자의 말에, 갑자기 '연예계 비화'로 위상을 달리한다. 주인공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이니셜로 포장은 하지만, 엄연히 사실 확인이 된 이야기라는 뉘앙스를 폴폴 풍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을 왜 기사로는 쓰지 않았을까? 기자라면 기사로 전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텐데 말이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사실 확인이 안 됐거나, 기사로 쓸만한 소재가 아니거나.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쓸 수 없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사로 쓸 수 없었던 이야기는 전파를 타고 전해진 뒤 수십, 수백 개의 연예기사로 재탄생된다. 이 기사들의 근거는 오로지 '방송'이다. TV 프로그램이 전파를 이용해 '카더라 통신'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이다.

기자가 가십생산에 동참... 창피한 일

 풍문으로 들었쇼 화면 갈무리

<용감한 기자들>에서 폭로된 A양의 이야기 캡처. 연예인 패널 윤정수조차 "드라마 보고 오신 거 아니냐"며 믿지 못 했다. ⓒ E채널


이런 가십 프로그램과 관련, 한 연예 홍보 담당자는 "이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게 '아니면 말고'"라면서 "업계에 떠돌아다니는 출처 불명의 '카더라' 스토리들이 많은데, 사석에서 들으면 웃고 넘길 별거 아닌 이야기도, 기자가 TV에 나와 이야기하면 갑자기 뭔가 진짜 있는 것처럼 소문이 난다"며 고충을 전했다. 이어 "흥미와 재미를 위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인 양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연예관계자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나, 당사자에게는 괴로운 과거의 추억을 끊임없이 소환하는 건 당사자에게는 잔인한 일"이라면서 "이혼한 지 10년도 더 된 전 배우자와 엮는 내용이나, 새로운 연인이 생긴 뒤에도 이전 연애사를 계속 언급하는 건 너무하다"라고 지적했다.

가십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는 한 기자는 "섭외 당시에는 좋은 이야기, 칭찬 위주로 해도 된다고 했지만, 막상 출연하기로 한 뒤에는 계속 '센' 소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훈훈한 사례를 소개하려고 하면 제작진은 양념이 들어간 부정적 사례를 원하더라"고 털어놨다.

이 기자는 이어 "취재원과 내가 아는 정보를 팔아 돈 버는 느낌이었다. 가십 예능에 출연한 기자 중 상당수는 방송 이후 취재원들이 경계하거나 싫어해 취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며 "녹화를 마치고 자괴감을 고백하는 기자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고 미디어를 비평해야 할 기자들이 TV에 나와 가십이나 전달하고 있다는 건 창피한 일"이라면서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들 모두 직접 취재한 거로 생각하지도 않지만, 이제 막 서른 넘은 기자들이 20년 전 연예이슈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우습다. 어차피 인터넷 찾아보고 아는 건 네티즌들과 다를 바 없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현재 <풍문쇼>는 에이미에게 사과하고 해당 회차의 온라인 다시 보기를 삭제한 상태지만, 프로그램 폐지에 관해서는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풍문으로 들었쇼 용감한 기자들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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