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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전작권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 21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주권국가로서 우리는 우리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적절한 시점에 환수해야 한다"면서 "한국과 미국은 조건이 맞으면 우리가 우리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받을 거라는 합의를 이미 이루었다"고 말했다.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동안 반대론자들은 '주권국가일지라도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국익에 도움이 될까?

앞으로 이익이 될 것인가를 판단할 때 일차적 기준은 '이제까지 이익이 있었는가'다. 이제까지 이익이 있었다면, 앞으로도 이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이익이 없었다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이익이 안 될 공산이 높다. 

미 CIA, 5.16 미리 알았지만... 왜 가만히 있었나

5·16 쿠데타 열흘 뒤인 1961년 5월 26일이었다. 박정희 장군이 이끄는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카터 매그루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총사령부(주한미군사령부)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작통권)에 관한 3개 항의 성명이었다. 성명 제1항은 아래와 같다. 제1항 속의 '작전지휘권'은 '작전통제권' 이전에 사용된 표현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유엔군총사령관에게 한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복귀시켰음을 이에 성명하며, 유엔군총사령관은 공산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함에 있어서만 이 작전지휘권을 행사한다."

한국군 작통권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유엔군, 즉 미군의 수중에 있었다. 따라서 미군이 한국군한테 작통권을 복귀시킨다면 몰라도, 한국군이 미군한테 작통권을 복귀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동성명에서는 작통권을 미군에 복귀시킨다고 했다. 1961년 5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흘 동안 미군의 한국군 작통권에 구멍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열흘 동안은 박정희가 한국군 일부에 대한 작통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주재하는 박정희 의장.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주재하는 박정희 의장.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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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미국한테 작통권을 위임한 것은 대한민국을 잘 지켜달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미군은 박정희 쿠데타를 막지 않았거나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10일간 작통권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CIA 한국 지부는 그 해 4월 말, 박정희의 음모를 인지했다. 미국이 5·16과 어느 정도 연관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확실한 것은 5·16 당시 미국이 한국군 작통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이것이 대한민국 헌정질서 및 민주화의 퇴행으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작통권을 가져간 미국이 오히려 그로 인해 한국 국민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 것이다.

공동성명 제2항과 제3항을 보면, 미국이 작통권을 활용해서 박정희한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주기까지 했음을 알 수 있다. 5·16 당시에는 작통권을 갖고도 쿠데타를 방지하지 않았거나 방지하지 못한 미국이, 10일 뒤부터는 작통권으로 쿠데타를 공고히 해주는 일까지 했던 것이다.

제2항에서는 쿠데타에 동원된 부대들 중에서 제1해병여단과 제6군단 포병부대를 원대복귀 시킨다고 했다. 두 부대에 대한 작통권을 미군에 반환한다는 의미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제3항에서는 제30사단·제33사단·제1공수전투단 등에 대한 작통권은 계속해서 최고회의가 가지도록 했다. 헌병중대 5곳에 대한 작통권도 추가로 가지도록 했다. 박정희가 권력을 공고히 지킬 수 있도록, 한국군 일부에 대한 작통권을 미군이 그에게 넘겨준 것이다.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위임한 한국군 작통권을 미군은 이렇게 박정희를 지켜주는 데 사용했다. 

1979년 12월 12일,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9사단장 노태우 등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9사단은 전방을 지키는 부대였다. 이런 부대까지 쿠데타에 가담한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날의 상황을 <노태우 회고록 상권>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군단장인 황영시 장군의 승인을 얻어 9사단의 예비연대를 출동시키기로 결심했다. ······ 자정 무렵 나는 구창회 사단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29연대를 출동시켜 중앙청에 집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전방을 지켜야 할 부대를 쿠데타에 동원한 것이다. 이것은 전두환·노태우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한국군 작통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미국이 작통권을 이용해 전두환·노태우를 도왔거나, 아니면 작통권을 갖고도 전두환·노태우를 막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어느 경우든 미국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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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직후에는 쿠데타군이 미군에 작통권을 반환하는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12·12 직후에는 그런 게 없었다. 이 사실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첫째, 쿠데타 부대들이 쿠데타 순간에도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만약 이렇다면, 미군이 쿠데타에 직접 개입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미국이 작통권을 이용해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화를 파괴하는 데 동조했음을 뜻한다. 

둘째, 미군이 쿠데타와 무관하면서도 작통권 문제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작통권을 가진 미군이 쿠데타와 무관하다면, 미군의 통제에서 벗어나 쿠데타를 감행한 군인들을 처벌하거나 아니면 작전통제권을 회수한다는 표시를 했어야 한다. 근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미국이 작통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위가 걸린 문제를 가벼이 보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간에, 미국은 한국군 작통권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미군한테 전작권을 계속 맡기는 게 과연 이로운 일일까?

대한민국 국민 죽어가도 가만히 있었던 미국의 작통권

1980년 5월 18일, 전남 광주에서 시민들과 계엄군의 충돌이 시작됐다. 이 충돌은 5월 21일 시민군의 승리로 일단락되고 계엄군은 퇴각했다. 계엄군이 광주에서 쫓겨나자 전두환은 미국에 도움을 호소했다. 한미연합사 휘하 병력을 광주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미국은 5월 23일 이를 승인했다. 이 점은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의 보고서에서 드러난다. 언론에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한국 측과의 접촉 내용을 국무부에 이렇게 보고했다.

"저는 한미연합사령부 휘하의 일부 병력을 광주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답변을 상기시키면서 '우리는 질서 회복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라고 말했습니다."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해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는 것에 대해, 미국은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명확한 승인의 신호를 보냈다. 이에 힘입어 전두환은 5월 27일 새벽에 광주 재진입 작전을 벌여 시민군을 제압했다. 이처럼 미국은 대한민국이 맡긴 작전통제권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데 사용했다. 헌정질서 수호와 민주화라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작통권을 사용한 것이다.

1980년 5월의 광주. 서울시 마포구 현저동의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
 1980년 5월의 광주. 서울시 마포구 현저동의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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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1일, 작통권이 평시작통권과 전시작통권으로 분리되어 평시작통권은 한국군에 반환되고 전작권은 미군에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이 평시에는 작전통제를 할 수 없다.

하지만, 5·16, 12·12, 5·18 때처럼 미국이 평시에도 작통권 문제로 한국 국익을 해칠 가능성은 앞으로 얼마든지 존재한다. 한반도 상황에서는 전시와 평시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로 한국은 법적으로 전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국민들의 힘이 약해지고 수구세력이 발호하면, 미국이 전시 개념을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 내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여전히 농후하다. 5·16, 12·12, 5·18 때처럼 작통권 문제로 대한민국 헌정질서 및 민주화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항상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국가이기 때문에라도 전작권을 얼른 환수해야 하지만,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신속히 환수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져 외국군의 지원이 필요해진다면, 그때 가서 전작권을 외국군에 위임해도 늦지 않다. 한국전쟁 때도 그렇게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처럼,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사태를 가정해서 전작권을 외국에 미리 맡겨두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런 식으로 전작권을 맡긴 결과로 대한민국의 국익이 증진된 것도 아니다. 증진된 것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이익뿐이었다. 이제까지 미군에 대한 전작권 위임이 대한민국에 불이익만 안겨주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은 앞으로도 계속 불이익이 될 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작권은 하루라도 빨리 환수되어야 한다.


태그:#전작권, #작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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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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