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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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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딸 다경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 부산스럽게 아빠 이대희 조합원에게 안겨 즐거워하고 있다. ⓒ 이희훈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 이대희 조합원은 직장폐쇄 해지 후 첫 출근 전 아내와 함께 밥상을 같이 하고 있다. ⓒ 이희훈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 이대희 조합원이 21일 직장폐쇄가 해제되어 331일 만에 출근을 하며 아내 윤숙자씨와 함께 딸 다경이에게 뽀뽀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계란말이와 북어국.

충남 아산에 사는 윤숙자씨가 남편 이대희씨를 위해 준비한 아침상이다. 다른 날보다 더 신경을 썼다. 7살 딸아이 다경이조차 새벽부터 일어나 아빠의 옆자리를 지켰다. 21일은 남편 이대희씨가 1년여 만에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첫날이기 때문이다.

남편 이씨는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 노동자다. 26년 넘게 한 직장에서만 일해 왔다. 회사 이름이 다섯번이나 바뀌었지만 위기 때마다 노조와 함께 잘 극복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사달이 났다. 회사는 '노조파괴 시나리오'까지 동원해가며 갑을오토텍 노동조합을 지우려 했다.

노조는 지난해 7월 8일 파업을 단행했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150명이 넘는 용역들이 동원돼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을 끌어내려했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이때 전국에서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갑을오토텍이 노동자들의 마지노선'이라며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대희씨는 작업복을 갖춰 입고 그 위에 항상 입던 노조 조끼를 입었다. 투쟁현장을 다닐 때도 입던 복장 그대로 이지만 331일 만에 출근을 위해 거울 앞에 섰다. ⓒ 이희훈
"잘 다녀오세요"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 이대희 조합원이 21일 직장폐쇄가 해제되어 331일 만에 출근을 하며 아내 윤숙자씨와 딸 다경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용역들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연대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등은 해결될 기미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16일, 갑자기 직장폐쇄가 종료됐다. 회사는 '조건없이 직장폐쇄를 해지한다'고 선언했다. 갑을오토텍 사측이 직장폐쇄를 한 지 331일 만이다.

지난 20일과 21일, 갑을오토텍 노동자 이대희씨의 아내 윤숙자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간중간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도 함께 챙겼다. 사연이 많았다. 노동자 400여명이 1년 가까이 직장폐쇄를 당해 월급 한 푼 받지 못했다. 딸린 가족들만 1600명이 넘는다. 사연이 없다면 오히려 더 이상할 일이었다.

회사 그만두고 함께 싸운 아내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이대희 조합원은 "직장폐쇄 해지까지 약 1년간의 시간은 가족들이 없었으면 못 견뎠을 것이다"고 말했다. ⓒ 이희훈
윤숙자씨는 어린이집 교사로 수 년을 일했다. 하지만 남편의 회사가 직장폐쇄를 선언하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윤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갑을오토텍 사측은 2015년 특전사와 경찰 출신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금속노조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별도의 수당까지 주면서 제2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게 했다. 새롭게 고용된 이들은 지게차를 이용해 기존 노동자들을 협박했다. 심지어 갈고리 같은 흉기를 사용해 폭행까지 했다. 당시 대표이사였던 박효상씨가 부당노동행위를 한 혐의로 법정구속된 이유다.

윤씨는 당시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얻어 맞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남편을 도운 이유라고 했다. 윤씨 뿐 아니라 갑을오토텍 노동자의 많은 아내들이, 지난 1년 거리에 서서 함께 싸웠다.

2016년 여름은 끔찍했다. 일당 17만 원을 받는 150여 명의 용역들이 밤낮으로 갑을오토텍 정문으로 몰려와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노조와 용역들간의 충돌을 방관했다.

"용역들이 밀고 들어오는데. 다들 밀리고 깔려서 넘어지고... 정말로 이대로 압사당해서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무서웠죠. 한 마디로 끔찍했고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버텨냈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과 학생들이,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충남 아산 갑을오토텍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용역들에 맞서 함께 공장을 지키며 밤새 대치했다. 아내들 역시 전국을 돌며 갑을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일촉즉발의 상황들을 아슬아슬하게 버텨냈다. 

노동자 김종중의 죽음, 갑작스런 직장폐쇄 해제

윤숙자씨도 처음엔 '7월이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땐, '여름이 지나면 종료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과 겨울이 돼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국까지 요동쳐 앞날을 예측하기 더욱 어려웠다. 공장을 지키며 버티던 남편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투쟁을 이어갔지만 특별히 상황을 타개할 만 한 동력이 없었다.

지난 4월, 갑을오토텍에서 23년을 일한 노동자 김종중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씨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미안하다, 죄송하다,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만 남긴 채 세상을 등졌다.

이 얘길 하던 윤씨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추락하는 느낌"이라고 그때를 돌이켰다. 그러면서 "분명 금방 끝낼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진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윤씨 뿐 아니라 버티고 버티며 투쟁을 이어오던 갑을오토텍 400여명의 노동자와 1600여명의 가족들도 실질적인 동력을 잃어버렸다.

지난 16일 갑자기 업무복귀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새롭게 바뀐 회사 대표가 노조와 교섭을 열고 21일부터 직장폐쇄를 해제하고 업무에 정식 복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윤씨는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그녀뿐 아니라 갑을오토텍 노동자와 아내들 모두 환하게 웃지 못했다. 그간 갑을오토텍 사측이 보여준 행동 때문에 쉽게 신뢰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지금까지 (회사가) 손바닥 뒤집듯 했어요. 상식 이하의 행동도 너무 많았고요. 어찌 이끌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다기 보다는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딱 그 정도였어요."

직장폐쇄 해제, 사측 결정 배경은?

.옷걸이에 걸린 이대희 조합원의 갑을오토텍 작업복 ⓒ 이희훈
갑을오토텍 근무지에는 직장폐쇄혜지 공고문이 부착되어 있다. ⓒ 이희훈
331일 만에 다시 일하기 위에 앉은 자리. 직장폐쇄가 해지 되어 출근을 했지만 공장의 정상화가 되기 위해선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이대희씨는 오랜만에 출근한 자리가 어색하다며 앞으로 일들을 걱정했다. 이 조합원은 품질관리 업무를 맞고 있다. ⓒ 이희훈
직장폐쇄가 해제됐지만 지난 1년 갑을오토텍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윤숙자씨 역시 처음 직장을 그만두고 갑을 사측을 상대로 투쟁을 했을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는 소리를 수차례 들었다. 실제로 그랬다. 다수의 언론이 연일 '연봉 9000만 원의 귀족노조가 파업했다'며 '노조의 이기심이 회사를 망하게 한다'고 공격했다.

파업에 참여한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지난해 9월부터 월급을 받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족들은 "만약 언론에서 말한대로 연봉을 9000만 원 받았다면 다들 일하지 않고 버텼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숙자씨 역시 파업과 동시에 그만뒀던 어린이집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다른 엄마들도 아이들 학원부터 끊었고, 대학생 자녀들은 자발적으로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회사의 목적이 서로 흩어지게 하고 와해시키는 건데. 다들 한 곳만 바라보고 왔어요. 물론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고요. 우리는 타당한 싸움을 하는 것이고. 우리가 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한 싸움이니까요."

업무복귀가 결정됐지만, 상황이 100% 해결된 것은 아니다. 1년여의 파업 동안 노사간 발생한 민형사상 고소고발이 여전히 남아있다. 회사는 소송과 관련해 노조에 '합의는 없다'고 이미 밝힌 상황이다. 무엇보다 고 김종중 조합원의 장례와 고용보장 문제 등에 회사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사태 해결의 길로 가느냐, 오히려 갈등 폭발로 가느냐 결정될 수 있다.

갑을오토텍 사측 입장을 좀 더 자세히 듣기위해 회사 간부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문자와 전화 모두 답하지 않았다. 회사 관리국 역시 '자신들이 대답할 문제가 아니'라며 즉답을 피했다.
태그:#갑을오토텍, #직장폐쇄, #업무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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