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포스터.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포스터.ⓒ JTBC


드라마의 시작, 한 여자가 살해당한다. 그 직후, 망자가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그 주변엔 욕망과 불륜, 시기가 들끓는 상류층 여성들의 일상과 사건이 깔려있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드' <위기의 주부들>을 닮았다.

빚도 많고, 세상에 울분도 적지 않은 하류층 여성이 한 부잣집에 입성한다. 가사 도우미라기보단 간병인에 가깝다. 이 여성 간병인이 집안의 경제권을 쥔 가장을 유혹한다. 그리고 집안 사람들과의 아슬아슬한 갈등의 연쇄와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그리고 첫 회 첫 장면에서 드러난바, 그 욕망은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마치 한국영화의 고전이자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 <하녀>처럼.

그리고, 상류층 '강남 엄마'들의 생태계 최신판. 안판석 PD, 정성주 작가 콤비의 <아내의 자격>이 내밀하게 그린 이 생태계는 어쩌면 한국에서 드라마를 가장 많이, 자주 소비하는 시청 층이 가장 탐식할 소재다. 상류층의 화려한 소비와 '막장' 불륜극, 여성들과의 질투와 시기를 모두 담아내면서도 계급이란 화두를 영민하게 담아낼 수 있는 질 좋은 그릇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처음 방송된 JTBC <품위있는 그녀>는 이 모든 기시감 혹은 소재의 매력을 품고 출발한 드라마다. 더욱이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감독과 김선아가 다시 만났고, <힘쎈여자 도봉순>의 백미경 작가가 집필하고 김희선이 김선아와 함께 투톱을 이루는 작품이라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뚜껑을 연 지금, '가진 자들의 품격 있는 스캔들'을 내세운 <품위있는 그녀>는 겹치는 소재와 장르가 기시감과 아직 다 펼쳐내지 못한 캐릭터들의 속내와 행동이 전해 줄 가능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아 나가는 중이다.

전형적인 계급드라마의 구도, 어떻게 비틀것인가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김희선과 김선아.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김희선과 김선아.ⓒ JTBC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정해진다. 그 운명은 생각보다 너무 가혹한 나머지 순서와 등급이 정해져 좀처럼 그 이동이 허락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 내레이션의 주인공 김복자(김선아 분)는 운명에 저항코자 그 신분 이동을 탐한 하류층이다. 의도적으로 휠체어에 앉은 대성펄프 안태동 회장(김용건 분)에게 접근한 김복자는 육체와 다정함으로 이 '준재벌' 가장을 유혹하고, 방해자들에게는 현실적인 협박과 단호한 대응을 선사한다.

연기와 의도로 무장한 김복자는 그러나 때때로 이 신분 상승의 계기를 제공할 먹잇감들에 죄책감과 연민, 번민을 보임으로써 이 드라마의 주인공임을 상기시킨다. 어찌 됐건, 김복자는 살해당했고, 범인은 이 상류층 가족 구성원들 안에 존재한다.

이와 함께 <품위있는 그녀>는 그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김복자의 내레이션을 등장시킨다. 이를 통해 형식적 차별화와 여타 상류층 캐릭터들에 대한 끊임없는 거리 두기, 김복자에 대한 윤리적·도덕적 단죄를 희석한다. 이를테면, 이런 종류.

"우리가 누군가를 잘 안다고 말할 때, 과연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일까?"

"복선과 의도가 없이 시작된 관계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사물은 그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 실체를 들킨 사람이나 사물은, 얼른 그 정체를 숨겨야만 한다. 목표에 다다르는 걸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엔 안태동의 둘째 며느리 우아진(김희선 분)으로 대변되는 상류층 사람들이 자리한다. 전직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탁월한 미모와 몸매를 소유한 전업주부인 우아진은 (작가의 소개에 의하면) "모든 여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그리고 그 시선을 즐"기는 남부러울 것 없는 매력과 자산의 소유자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아이들 학원 모임에서도, 변호사 강기호(이기호 분)을 만나게 된 '마음 모임'에서도 우아진의 내재한 당당함은 내내 빛이 난다.

여기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김복자요, <품위있는 그녀>의 출발이자 이 드라마의 주제일 것이다. 그 균열은 하류층 간병인, 그것도 자신이 뽑았고 마음이 맞았다 생각했던 김복자가 불러온 풍요로웠던 집안의 평지풍파가 하나요, 무식하지만 자신만을 바라본다 믿었던 남편 안재석(정상훈 분)의 불륜이 둘째일 것이다.

이 위기 앞에서 큰 위기나 교만 없이 평온했던, 그리하여 다소 위선적으로까지 보였던 '품위 있던' 우아진이 어떻게 변모해 가는가, 이를 넘어 보통의 '욕망의 민낯'을 드러내느냐가 이 드라마의 초점이 될 것이다. 김태동을 발판삼아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김복자와의 대립 구도 속에서 말이다.

이렇게 <품위있는 그녀>의 구도는 명확하다. 하지만 아직 그 명확한 구도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1, 2화는 아직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캐릭터들을 펼쳐 놓는 출발이라 그런지 혼란스럽고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아래 해설처럼 말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 vs. 신선한 여성계급 드라마의 출현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김희선과 김선아.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김희선과 김선아.ⓒ JTBC


"법원을 가지 않고도 이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하루라도 알리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이름보다 자식의 이름 석 자를 숨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으며, 결혼 전에 불리던 자신의 이름은 누구의 엄마로 바뀌어 있지만,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할 기회가 오는 운 좋은 기회도 있다."

어쨌건, 미래의 망자가 될 화자 김복자와 <품위있는 그녀>는 우아진의 주변 인물들에 관심이 많다. 강남의 유한마담 차기옥, 레지던스 준호텔을 경영하는 남편을 둔 파워 블로거 김효주, 전직 경마장 아나운서이자 금수저 남편을 둔 오경희, 강남 수학학원 원장 백주경 등은 우아진의 배경은 물론 이 드라마가 펼쳐내는 '상류층'의 본거지다.

이들이 남편들과 모임을 하고 골프를 치고 불륜을 벌이거나 자식에 대한 집착을 보여 주는 모습은 그대로 김복자가 열망하는 신분 상승의 현재형으로 대비된다. 결국 <품위있는 그녀>의 설득력은 이 주변 인물들을 얼마나 '우아진 vs. 김복자' 구도에 밀착시키는 동시에 현실성과 공감을 보여야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펼쳐 놓은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군상들이 민낯을 드러내고 아우성치는 세상"의 인물들이기도 하고.

또 하나, <품위있는 그녀>는 제작 의도를 통해 "상류층 엿보기와 불륜만큼 드라마에서 많이 우려먹은 소재도 없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앞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레퍼런스'들을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흔한 소재를 비껴가기 위해 선택한 차별화 지점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작품들인 것은 심히 유감이다.

결국 <품위있는 그녀>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익숙함과 편리함과의 승부다. 안재석이 벌이는 불륜 장면의 식상함, 김태동을 이용하는 김복자의 계략, 선명하고 순진하게 당당해서 살짝 당황스러운 우아진의 성격 등등.

<품위있는 그녀>는 친숙하다 못해 예상 가능한 '지뢰'들을 곳곳에 깔고 시작하는 통속극과 '망자의 내레이션'과 같은 성공한 '미드'에서 따온 것과 같은 설정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김선아의 내레이션 역시 문어체와 비장함이 뒤섞여 아직은 손발이 오그라들기 일쑤다.

꽤 근사한 '태그 라인'으로 출발했지만,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작품들이 즐비하다. <힘쎈여자 도봉순> 역시 그랬다.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기운이 '힘쎈 여자' 영웅 캐릭터를 잡아먹은 대표적인 예다. 부디 <품위있는 그녀>는 그러한 용두사미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김선아와 김희선을 비롯해 이리 많은 여성 배우들이 개성 있는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드라마가 어디 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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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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