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은하철도 999>(1979)는 단순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비디오로 다시 봐도 우리나라에서 첫 방영된 1981년에 7080세대가 환호했던 이유가 바로 이해되는 SF 애니.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된 만화 영화가 드물었던 그 시절에, <은하철도 999>가 캐릭터들을 각인시킨 생동감은 낯선 매혹이었으리라. 특히 철이(일본명 데츠로)와 메텔은 '레이지 버스(Leiji verse)'를 퍼뜨리는 젊음의 짝패다.

'레이지 버스(Leiji verse)'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인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연작들을 관통하는 세계관이다. 은하철도 시리즈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한 직설로써 드러나는데 영락없는 신파극이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면서 기계 행성을 오가며 소년 시대를 통과하는 철이의 성장통을 다룬 광의의 휴먼 드라마. '기계 행성의 지배를 받는 지구'라는 설정 하에 기계 인간으로서 영생하느니 유한한 생명으로 사는 게 낫다고 역설한다.

철이와 메텔

 은하철도 999. 메텔. 철이

은하철도 999. 메텔. 철이 ⓒ 마츠모토 레이지


그런데 그 인생이라는 게 철저히 남성 위주다. 철이의 모험적 행로가 소년(젊음)의 특권이며, 그 길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인간(사내)가 될 수 있음을 수시로 반추시킨다. 인류의 난제들이 남성의 열정에 의해서나 해결될 수 있는 양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게다가 젊음의 도전 정신을 부각하느라 노인의 지혜는 엑스트라용 대사처럼만 등장시키고 있어 세계적인 추세인 고령사회를 대비해야 하는 현재에는 문제시되는 세계관이다.

어쨌든 기계 모성을 파멸시키고 지구로 귀환하는 <안녕 은하철도 999: 안드로메다 종착역>은 철이의 소년 시대 종료를 시사한다. 철이가 "청춘의 환영, 젊은이에게 밖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 속을 여행하는 여자"인 메텔과 헤어져야 하는 이유다. 눈에서 멀어지는 메텔을 7080세대 소년들은 철이처럼 로망으로 간직해 옆에 둔다. 땅딸막한 철이와 길고 마른 몸에 긴 머리를 한 메텔의 대비는 그런 남성적 열망을 대변한다.

죽은 철이 엄마를 복제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육신을 얻은 메텔은 지금 여기의 성형미인과 다이어트 열풍에 은연중 닿아 있다. 현재 지구촌이 진입하는 4차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기술과 사물인터넷 및 빅데이터 등이 융합된 혁신적인 변화를 구현한 듯한 기계 행성에서도 그 욕망은 여전히 작동한다. 크리스털로 된 몸을 지닌 클레어나 얼음묘지의 관리인 섀도우 등은 기계 인간에게 부재한 유한한 아름다움이 깃든 메텔을 선망한다.

메텔의 신비로움 만드는 '유한함'  

 은하철도 999. 메텔. 철이

은하철도 999. 메텔. 철이 ⓒ 마츠모토 레이지


하지만 메텔은 기계 모성인 프로메슘 행성 여왕의 딸로서 기계 모성의 부품이 될 소년들의 영혼을 수집하는 악역이다. 그래서 엄마를 죽인 기계 백작을 좇으려 기계 인간이 되려는 지구의 메갈로폴리스 빈민 철이와의 만남은 유괴를 전제하고 있다. 처음부터 비극이다. 메텔은 죽은 인간들을 애도하며 늘 슬픈 표정으로 검은 옷만 입음으로써 그 비극을 체화하고, 비극을 내재한 아름다움은 그녀를 신비롭게 한다.

결정적으로 메텔을 결이 느껴지는 고급진 애니 캐릭터로 만든 건 영원한 우주 방랑자 역이다. 어머니를 두 번 배반해 다시 죽게 하면서까지 유한한 생명을 선택한 철이가 안드로메다를 파멸시키도록 도와주고서도 메텔은 우주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처럼 영원한 형벌의 의미는 아니다. 이미 메텔의 시간은 젊음과의 반복되는 만남이 점철되어 있고 장차도 그럴 것이지만, 자유의지가 작동하므로 그렇다.

메텔이 철이와 아쉽게 작별하는 마지막 장면으로써 영화는 젊음을 유괴하고 후원하는 메텔의 시간이 제대로 된 어른에게는 내재함을 암시한다. 철이처럼 살아 돌아가는 인간에게 메텔의 유괴는 젊음 발현을 위해 불가피한 시련인 셈이다. 그러므로 메텔을 추억할 수 있는 남성은 행복하다.


은하철도 999 메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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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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