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정말로 허정무 카드가 다시 한번 한국축구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국축구대표팀의 차기 사령탑 자리를 놓고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며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허 부총재는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의 지휘봉을 잡고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업적을 이뤘다. 풍부한 연륜과 위기관리 능력이 장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태용-최용수-김호곤-김학범 등 다양한 인물들도 거론되고 있지만 월드컵에서의 경험과 성과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이를 충족시키는 인물은 허 부총재가 유일하다.

하지만 갑자기 불거진 허정무 '대세론'에 대하여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않다. 대표팀의 구원투수로서 허 부총재 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자격 논란에서부터, 축구협회의 무능과 구태의연한 행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 이르기까지 '불가론'도 만만치않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허정무라는 축구인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지금 허정무라는 인물이 과연 가장 필요한 카드인지, 과거의 공과에서부터 헌재의 상황, 앞으로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대표팀의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미디어와 축구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뜨거운 허정무 대안론 혹은 불가론에 대한 쟁점은 크게 4가지 정도로 요약할수 있다.

1. 감독으로서의 커리어

가장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쟁점은, 역시 '감독 허정무'의 역량에 대한 의문이다. 허정무는 이미 두 번이나 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하며 총 4년 6개월간이나 태극전사들을 이끈 한국축구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다. 1기 시절(98-2000)에는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중도 낙마했지만, 2007년 12월 핌 베어벡 감독의 후임으로 두 번째로 대표팀에 복귀하여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단점은 대표팀에 비하면 클럽무대에서의 성과는 확실히 떨어졌다는 것. 포항, 전남, 인천 등에서 감독을 역임했지만 리그 우승은 단 한 번도 차지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2007년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기 직전 그가 이끈 전남의 리그 순위는 10위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았던 인천에서는 성적 부진으로 중도에 낙마하기도 했다. 이전에 대표팀 감독직에 거론될 때도 그보다 리그 성적이 월등한 국내 감독 후보들과 비교되며 자격 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만 허정무가 당시 맡았던 클럽들이 주로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거나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팀들이 많았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한다. 단기전인 FA컵에서는 3번이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도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했을 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며 확실한 결과로서 모든 비난 여론을 불식시켰다.

지도자로서 허정무 감독에 대한 가장 악질적인 선입견 중 하나는 대표팀에서의 업적도 모조리 '선수빨'이라는 폄하다. 물론 허정무호 시절에는 박지성이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가 있었고, 이영표, 차두리, 박주영, 이청용 등도 모두 건재했다. 한 마디로 이런 호화멤버를 가지고 그 정도의 성과는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축구의 특성이나 대표팀의 역사에 대하여 조금만 지식이 있는 인물이라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알 수 있다.

애초에 박지성을 처음 발굴하고 주장까지 낙점한 인물이 바로 허정무였다. 이영표, 설기현, 김남일, 이천수, 이동국 등 한일월드컵과 그 이후까지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황금세대를 대거 발굴한 것도 허정무호 시절이었다. 물론 그 역량을 가장 극대화해낸 것은 히딩크 감독이었지만 허정무 감독이 아니었다면 최초의 박지성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2기 대표팀 시절에도 박지성 같은 기존의 '한일월드컵 세대'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기성용-이청용-조용형-곽태휘-김정우-이근호 같은 새로운 자원들을 끊임없이 대표팀에 발굴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사실 허정무는 소위 과감한 승부사나 변화무쌍한 전술가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감독은 아니다. 오히려 허정무의 진정한 장점은 '관리자'로서의 탁월한 선수단 장악력과 매니지먼트 능력이다. 가장 과소평가되는 부분 중 하나가, 역대 대표팀을 통틀어 히딩크호 시절 다음으로 '무한 경쟁'과 '실력 우선주의' 체제가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가 허정무호 시절이라는 점이다. K리그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준 선수라면 지명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번 이상은 대표팀에서 경쟁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지역예선에서는 일등공신이었지만 정작 본선을 앞두고서 폼이 떨어진 이근호나 김치우같은 선수들을 최종엔트리에서 과감히 배제하는 냉혹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훗날 조광래나 최강희, 홍명보같은 다른 국내파 감독 체제에서 벌어졌던 파벌-항명 논란이나, 의리축구-코드인사같은 잡음이 허정무호 시절에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나중에 더 재평가를 받은 대목이다. 어쩌면 지금의 대표팀 선수단에게 가장 필요한 동기부여와 사명감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는 가장 검증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성적도 매우 좋았다. 지역예선 무패-본선 16강이라는 성과만이 아니라 강팀들과의 대결에서도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허정무 감독 재임 시절에는 아시아의 강호로 불리던 일본, 이란, 사우디 등에 단 한번도 지지않았다. 공한증 기록이 깨진 동아시아대회 중국전 패배로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당시는 국내파 위주로 치러진 친선경기에 가까운 대회에 불과했고 전술 실험에 더 치중하던 상황이었다. 아시아권을 벗어나서도 그리스-코트디부아르 등 월드컵 본선에 오른 강호들을 완파했고, 에이스 박지성이 결장한 상황에서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과의 평가전이나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모두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종합적인 커리어로 봤을 때 일류 감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히딩크라는 독보적인 인물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의 국내파 감독'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업적을 남겼다. 축구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이나 근거없는 선입견에 치우친 냄비팬들을 중심으로 허정무의 이미 숱하게 검증된 업적과 능력 자체를  자국에서 오히려 깎아내리려는 현상은 안타까움을 준다.

2. 5년간의 현장 공백기

허정무 감독의 대표팀 복귀가 정말 현실화된다고 했을 때 어쩌면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약점이다. 지도자로서 허정무의 업적을 인정하는 이들도 2012년 인천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로 무려 5년이나 현장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

베테랑인만큼 풍부한 경험과 관록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감독직은 운전면허와는 엄연히 다르다.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경기흐름이나 상대의 전략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냉철한 판단력은 실전에서의 현장감각을 꾸준히 유지해온 이들도 장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허정무가 현장을 떠난 5년간 세계축구의 흐름이나 전술적 트렌드도 많이 변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도 이미 10년전에 유행이 지난 낡은 점유율 축구에 치우친 패러다임에서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술가적인 능력이 있고 현장감각이 살아있는 '감독급 코치'를 보좌역으로 함께 투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허정무와 함께 역시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의 '코치 복귀설'도 나오고 있는 이유다. 현재 대표팀에 남아공월드컵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정해성 수석코치가 있고, 주장 기성용 등 허정무호 시절의 주요 멤버들이 건재하다는 점도 빠른 현장 적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노련한 코치와 선수가 있다고해도 어차피 최종결정권은 결국 감독의 역할이다. 현장 감각이라는 게 애초에 객관적인 수치로 통계화할 수도 없는 것이라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몰고올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축구가 만일 허정무 카드를 선택할 경우 감수해야할 가장 큰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브라질월드컵 참사에 대한 책임론

허정무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의리축구 논란을 일으키며 몰락한 대표팀의 단장이자 축구협회 부회장 신분이었다. 당시 허정무는 축구협회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홍명보 감독을 감싸고 유임을 추진하려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결국 홍감독과 동반 사퇴했다. 홍명보호의 몰락과 월드컵 참사에 대하여 허정무는 중대한 동반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런 인물이 3년만에 이번엔 다시 감독이 되어 대표팀 관련 업무에 복귀한다? 그것이 명분상 과연 적절한가하는 비판도 허정무 불가론을 주장하는 일부 비판자들의 논리다. 일리는 있는 지적이다. 또한 남아공월드컵으로부터도 벌써 7년이 지났는데 '돌고돌아 다시 허정무냐'라는 축구협회의 회전문 인사와 과거로의 퇴행에 가까운 모양새도 여론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다.

다만 이 문제는 조금은 다르게 해석해볼 여지도 있다. 일단 지난 월드컵에서의 과오는 행정가로서의 평가지, 감독으로서의 책임이 아니다. 브라질에서의 실패는 사퇴로 책임을 졌다면, 남아공월드컵에서의 '감독 허정무'는 한국축구에 이전의 어느 국내 감독들보다도 큰 성과를 남겼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축구가 지금 허정무를 다시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기술위원장이나 부회장 역할처럼 '실패한 행정가'의 귀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성공한 감독'으로서 다시 부르는 것이다.

더구나 허정무가 다시 대표팀 감독이 된다는 것이, 지난 브라질월드컵의 과오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대표팀 감독이 된다는 것은 명예나 영광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자칫하면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라는 격이 될 수도 있다. 2013년 홍명보 전 감독처럼, 이미 전임감독들이 차려준 월드컵 본선행에 '무임승차'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본선행이 확정되지않은 상황에서 단 2경기만에 한국축구와 감독직의 명운이 걸린 일생일대의 도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공연히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가장 큰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바로 차기 감독 본인이다. 전임 슈틸리케 감독이 어느 정도 판을 깔아놨다고 해도 아직 한국은 엄연히 자력으로 본선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30여년만에 최초로 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한 오명을 뒤집어쓰는 국내파 감독이 감당해야할 비난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 대상이 만일 허정무 감독이라면 자신의 최대 업적인 남아공월드컵 16강 업적마저 지워지고 지난 브라질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축구인생에 평생 씻을 수 없는 멍에를 안게 될수도 있다.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나서겠다면 과욕이나 무리수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설사 지난 잘못이 있더라도 허정무처럼 한국축구를 위해 오랜 세월 기여한 인재라면 한번쯤 명예회복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4. 과연 더 나은 대안이 있는가

사실 4번의 질문에 진작 정답을 제시할 수만 있었다면 한국축구는 지금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거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더 나은 감독 후보들이 널려 있는데도 다 제쳐두고 뜬금없이 허정무라는 인물이 끼어들어 자리를 가로채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축구는 현재 사령탑이 중도에 경질됐고, 월드컵 본선행이 걸린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은 불과 두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어차피 인재풀은 한정되어있고 지금 시점에서 누가 감독이 되어도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허정무가 아니라면 한국축구에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국내파와 외국인 감독으로 나눠볼 수 있다. 국내파 중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이다. 신감독은 대표팀 사정에 누구보다  밝고 선수단과의 소통에 능하며 최근까지 현장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올림픽-청소년대표팀에 이어 또다시 A대표팀까지 무거운 짐을 지울 경우, 미래가 더 촉망되는 한국축구의 인재를 자칫 '제 2의 홍명보'로 전락시킬 위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신태용 감독은 당장 A대표팀보다는 최근 연령대별 대표팀의 경험과 연속성을 살려서 2018 아시안게임이나 2020 도쿄올림픽 대표팀을 기약하는게 더 합리적이다.

다른 인물은 어떨까. 대표팀을 이끈 경험이 있는 차범근-조광래-김호곤 전 감독 등은 '올드 스쿨'에 가까운 지도방식이나 현장 공백기라는 면에서 허정무 감독의 약점과 똑같이 겹치는 인물들이다. 김학범이나 최용수 전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최근 소속팀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못하고 물러났다는 게 약점이다.

그렇다고 최강희 전북 감독이나 홍명보 전 항저우 감독같이 비교적 최근에 대표팀에서 물러난 인물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무엇보다 이들이 최근까지 현장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한국축구에 새로운 전술적 비전을 제시했다거나 선진축구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누가와도 '거기서 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다면 적어도 전임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거론되는 허정무나 신태용같은 국내파를 지명도에서 압도할 수 있는 거물급 감독을 데려와야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시간과 비용 문제를 감안할 때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조건과 실적을 지닌 인물을 구하기가 어렵다. 냉정히 말해 그만한 감독이 재야에 있다고 해도 지금같은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할 만큼 외부의 시선에서 한국 대표팀 감독직이 그렇게 매력적인 자리도 아니다.

여기까지가 지금 한국축구가 처한 상황이고 현실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대안을 꺼내들지는 축구협회가 판단할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처럼 아직 시작도 하기 전에 차기 감독 후보들을 깎아내리고 비방하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어렵고 힘들어도 결국 누군가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앞장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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