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주 >포스터

< 24주 >포스터 ⓒ 영화사 진진


< 24주 >를 연출한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1982년 동독에서 태어났다. 심리학으로 사회 교육학 학위를 받은 후 런던에서 2년간 연기교사로 일하다 2009년 독일의 명문 예술학교인 바덴 뷔르템베르크에서 영화 공부를 시작하고, 단편 영화 <성자와 창녀>가 80여 개의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으면서 단숨에 독일 영화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2013년 내놓은 첫 장편 영화 <투 머더즈>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의 후보에 오르면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투 머더즈>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커플을 다루었다. 얼핏 평범해 보이나 앤 조라 베라치드의 서사는 남달랐다. '레즈비언 커플'이란 과감한 설정으로 다른 영화와 차별을 선언한다. 정자 기증을 동성 커플에겐 허용하지 않는 독일 현실의 벽 앞에 선 키티아(사빈 울프 분)와 이사벨라(카리나 플라쳇카 분)를 통해 영화는 아이를 갖길 원하는 동성 커플이 겪는 여러 어려움과 그 과정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예리하게 잡았다. 아이를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과 아이 때문에 깨져가는 사랑은 온전히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졌다.

임신과 낙태... "낳을 것인가, 죽일 것인가"

 < 24주 >의 한 장면

< 24주 >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 24주 >는 앤 조라 베라치드가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이번에도 여성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소재로 삼은 것은 임신과 낙태다.

코미디언 아스트리드(줄리아 옌체 분)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코미디언이다. 일의 성공도 거두었고 남편과 딸이 있는 가정도 행복으로 가득하다. 두 번째 아이의 출산을 몇 달 앞두고 아스트리드와 마르쿠스(비얀 미들 분)는 담당 의사로부터 태아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진단을 듣는다. 많은 고민을 하던 두 사람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태아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며 부부는 아이를 낳을 것인지, 낙태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 앞에 선다.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독일에서 심각한 문제나 장애를 가진 태아일 경우엔 출산 직전까지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잡지로 보고 < 24주 >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태아에게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12주 전후로 낙태한 독일 여성이 90%에 달한다"며 "이를 마주하기 힘든 삶을 현명하게 외면한 것으로 봐야 할지, 혹은 합법적인 살인으로 봐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아스트리드와 마르쿠스는 줄곧 "우리 어떻게 해?"라고 자신에게, 타인에게 묻는다. 전작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면 이번엔 개인의 고민에 오롯이 집중한다. 태아를 낳을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는 고민에 빠진 아스트리드를 지켜보고 포착한다.

아스트리드에게 24주는 아기와 같이했던 시간이다. 24주엔 고민의 시간과 선택의 순간이 있고 삶의 죽음의 경계선이 위치한다. 관객은 옳고 그름을 잣대로 삼아 아스트리드를 판단할 수 없다. 그녀가 느끼는 사랑과 슬픔, 고통과 그리움의 다른 단어인 '24주'를 관객도 알았기 때문이다.

차분함 뒤에 가려진 '격렬함'

 < 24주 >의 한 장면

< 24주 >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영화는 상황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절대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선택을 강요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아스트리드가 마르쿠스에게 다운증후군이라도 아기를 낳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불쑥 원하는 아기 이름을 내뱉는 아스트리드와 그녀의 배를 안아주는 마르쿠스. 자칫 단순한 듯 보이는 이 장면의 뒤엔 감정이 맹렬하게 교차하고 있다. 영화는 차분함 뒤에 가려진 격렬함이란 톤 앤 매너로 인물과 상황을 담는다.

대비의 효과도 뛰어나다. 커다란 상처를 지녔으나 그것을 감춘 채로 사람들을 웃기는 직업인 코미디언, 당당하게 무대에 섰던 사람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강한 대비를 형성하며 감정을 묘사한다.

전작보다 영화적 기법이 성숙해진 면도 돋보인다. 다큐멘터리적인 기운은 이번에도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다. 영화는 태아 모습이 담긴 장면을 활용하며 다큐멘터리 분위기를 고조한다. 핸드헬드와 클로즈업을 적절히 사용하며 인물의 정동을 잡는 카메라도 한층 무르익었다.

그리고 질문한다

 < 24주 >의 한 장면

< 24주 >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 24주 >에서 아스트리드는 관객의 눈을 세 번 쳐다본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그녀는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주인공이 관객의 눈을 응시하는 장면을 "감독으로서 관객을 좀 더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당신의 선택을 묻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가진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부연한다.

< 24주 >엔 "강한 자는 쓰린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이것을 반어적인 표현으로 영화에 넣었다. 감독은 다른 이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처한 부부를 보여주며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고백한다. "실제로 그 상황에 부닥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영화는 관찰자의 자세로 한 여자를 보여준다. 섣불리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대는 행위를 철저히 거부한다. 그저 차분한 태도로 여자의 뒤를 따를 뿐이다. 그리고 질문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바바라>의 크리스티안 펫졸드, <토니 에드만>의 마렌 아데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독일 영화의 이름은 앤 조라 베라치드의 몫이다.

24주 앤 조라 베라치드 줄리아 옌체 비얀 미들 요하나 가스트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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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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