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바꿔라>의 소개내용.

<수업을 바꿔라>의 소개내용. ⓒ tvN


정권이 바뀌고 기대되는 여러 분야가 있지만 그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현 정부는 그간 수능 체제에서 기득권 세력이 되고만 외국어고등학교와 자사고 체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된 바 있다. 두 특수 고교를 없애고 기존 일반고 체제로 돌아가면 우리 교육의 악순환이 없어질까.

과연 일반고를 보내던 학부모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아이를 조련하며 기를 쓰고 특별한 과정에 끼워 넣으려 애썼을까? 이런 부모들의 욕구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면 새로운 교육적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는 학자들의 지적이 있다. 21세기, 과연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을 예능 프로가 먼저 구한다. 지난 5월 18일 시작된 tvN의 <수업을 바꿔라>에서다.

북유럽의 교육

첫 회 핀란드를 시작으로, 4회 스웨덴까지 이미 자타공인 선망의 대상인 북유럽 교육을 살펴보았다. 가만히와 조용히가 일상화된 우리 학교와 달리, 학생들의 동선을 최대화하는 것이 목표인 '움직이는 학교'는 그 자체로 교육적 충격이었다. 숲이 곧 학교가 되는 스웨덴의 신개념 통합 프로젝트나, 보기엔 공장 같은 네모난 상자 건물 속에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창의력 개발 수업 역시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교육 이민을 떠날 만큼 핀란드와 스웨덴은 선진교육의 롤모델이다. <수업을 바꿔라>는 그런 북유럽 교육의 신선함을 학부모인 패널들의 공감 십분 활용하며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했다. 특히 학부모인 이적의 현장 실습은 그 공감을 극대화하는데 적절했다.

5회에서 프로그램은 미국으로 방향을 튼다. 일찌감치 교육을 위한 이산가족의 단초가 되었던 곳, 유학의 대명사였던 미국의 교육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그런데 5회에 소개된 학교는 하고많은 미국의 학교 중에 실리콘 밸리의 '모건힐 차터 스쿨'이었다. 패널로 등장한 타일러의 소개에 따르면 학부모, 교사, 지역 단체들이 함께 위원회를 결성하여 만든 일종의 대안 학교다. 주 정부의 경제적 지원은 받지만 교육 과정은 온전히 학교 재량에 맡기는 학교, 학부모들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해야 하는 이곳은 아마도 4차 산업 혁명을 맞이할 미래 교육의 현장 답사 성격을 띠고 있다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국의 대안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까? 놀랍게도 모건힐 차터 스쿨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아빠, 어디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친숙해진 배우 성동일과 그의 아들 성준이 직접 체험했다.

 <수업을 바꿔라>의 한 장면. 성준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수업을 바꿔라>의 한 장면. 성준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 tvN


성준의 활약

새로운 환경,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부담에 가방조차 내려놓을 생각조차 잠시 잊었던 성준이 맞이한 첫 수업은 여러 나라의 지폐를 가지고 연구하는 수업이었다. 만약 우리나라 5학년 수업에 외국의 학생이 참여한다면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이미 초등 4학년만 되도, 교육 과정에 조금의 지체가 생기면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하는 한국 학교에선 눈만 껌벅거리다 끝날 것이다. 그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5학년 교과 과정은 어른이 봐도 풀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낯선 환경, 낯선 친구들을 만난 성준의 첫 수업은? 놀랍게도 성공적이었다. 선생님은 여러 나라의 지폐를 나누어주고 지폐를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어느 나라 지폐인지 조차 모르고 마치 예술 작품을 보듯 가까이도, 멀리도 살펴보기 시작한 학생들. 이 지폐 수업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뜻밖에도 생각하기였다.

우리 시대 대부분 지식들은 인터넷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검색 지식을 굳이 학교에서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학교의 지론. 그래서 선생님은 이방의 지폐를 통해 사고하는 힘을 키워주려 한다. 각자 모둠에서 지폐를 통해 알아낸 것을 적어보고, 그 다음에야 노트북을 열고, 검색을 하여 어느 나라 지폐인지, 그리고 지폐 속 인물과 그림들은 무슨 의미인지 스스로 알아간다. 그리고 선생님이 제시한 환율을 계산하여, 미국 달러와 비교한 해당 지폐의 가치를 알아보고, 하나의 보고서로 작성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바로 협동심이었다. 점심 식사 후 수준을 맞춰 들어간 2학년 코딩 수업(특정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기술)에서였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성준은 코딩 로봇을 움직이게 했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과목이지만 모건힐 차터 스쿨의 아이들은 스스로 코딩한 로봇을 자신이 입력한 값에 의거한 선 위로 작동하는 공부 중이었다.

아이들이 각자 만들던 코딩 로봇과 그 로봇이 달리던 선은 하나의 공동 작품이 돼 동심원으로 작동한다. 이 공동 작품을 두고 선생님은 "코딩을 잘했다"가 아닌 "디즈니랜드도, 학교도, 그 모든 것들이 서로 함께 힘을 모아 오랜 시간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수업을 닫았다. 모두 함께, 그리고 오랜 시간 노력에 방점이 찍힌 수업은 그 어떤 지식과 기술의 전수보다 감동적이다.

아마도 모건힐 차터 스쿨의 의도대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면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풀어가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며,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여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제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바로 이런 새로운 교육, 하지만 기본에 방점이 찍힌 교육으로 비롯되고 있는 것이란 실감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 학부모인 이적이 간 것과 달리,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하루 동안의 학교  생활을 거뜬히 수행해낸 성준은 기특하고 대견했다. 하지만 그 기특하고 대견한 성준을 바라보는 프로그램의 시선은 어쩐지 불편했다. 아니 불편하기 보다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해야 할까.

 코딩을 배우는 미국 아이들은 정작 협동심을 배우고 있었다.

코딩을 배우는 미국 아이들은 정작 협동심을 배우고 있었다. ⓒ tvN


우리 학교 교실이 벌써 초등학교만 되도 안경 쓴 친구들이 상당수인 것과 달리 모건힐 차터 스쿨에서 성준을 만나 친구들은 안경 쓴 친구들이 없었다. 심지어 그중에 성준이 가장 똑똑했다. 아이들은 간디가 누군지도 몰랐고, 우리 지폐의 이황에 대해 잘못 검색하여 이상한 외국 래퍼를 이황이라 검색했다. 심지어 5학년인데도 성준이 소수점 곱하기에서 자리수를 쉽게 옮기는 것에 대해 경이롭게 여기기까지 했다.

모건힐 차터 스쿨을 통해 검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식의 무용함, 그리고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프로그램이 성준에 대해선 수학을 그 학교 아이들보다 잘한다는 걸 보여준다. 과연 모건힐 차터 스쿨까지 가서 이게 자부심을 가질 일일까? 오히려 그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무지할 동안 많은 지식과 능숙한 수학적 능력을 위해 성준이란 아이가 공부에만 매진한 것에 반성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한류 자랑을 하는 지점에 이르면 낯이 부끄러워진다. 마치 우리나라에 내한한 외국 배우에게 꼭 빠지지 않고 한류를 아느냐고 묻듯 말이다. 새로운 교육관을 배우러 간 그곳에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학생과 방탄 소년단의 영상 통화까지 성공시키고야 만다. 배우러 간 곳에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명함 내보이듯 한 자랑 하고야 마는 그 행동이 불편했다. 새로운 교육 역시 인간다운 방향을 제시하기 보단 또 하나의 선진 문물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비추는 건 아닐지 회의가 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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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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