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 싼 값에 팔려나간 '꿈' 지난 4월 28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 현장. 이 비극에 연대하고자 하는 한 누리꾼의 의견이 눈에 들어온다. ⓒ 김윤정


얼마 전 있었던 어느 드라마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의 일이다. 한 배우가 기자간담회 직전에 영상 촬영을 하지 못하겠다고 소속사를 통해 전해왔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그 '톱스타 병'인가? 하지만 그 생각은 기자간담회가 시작하자마자 부서졌다. 기자간담회 현장에 입장하는 배우들을 보았고 대번 영상을 촬영하기 어렵겠다던 그 배우의 얼굴 기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배우의 눈 밑은 어둡고 퀭했다. 밤샘 촬영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배우만이 아니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배우도 연신 허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피곤한 기색을 드러냈다. 어느 배우는 "(시청률 등) 결과를 확인하면서 촬영하기는 어렵다"며 '생방송'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데자뷔였다. 이 기자간담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간담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통상적으로 드라마 회차가 중반 즈음 넘어 진행되는 기자간담회는 사전제작 드라마가 아니라면 급박한 촬영 일정을 잠시 미뤄두고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드라마 시청률 높이려고 하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기자간담회는 배우와 제작진의 선택에 따라 일정을 조율하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적당한 시기를 골라 시청률의 반등을 위해 마련되는 자리인 셈이다. 다시 말해 '억지로' 나선 자리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충분할까?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자리인 것으로 다 된 걸까. 이한빛 PD가 사망하고 나서도 드라마 현장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밤샘 촬영은 기본이고, 근처 있는 찜질방에서 1시간 정도만 자고 후다닥 나와 다시 다음 회차 촬영을 하는 일도 여전하다. 사전제작 드라마라도 스케줄 설정을 일반 드라마처럼 그대로 가져가니 크게 다를 바 없단다.

고 이한빛 PD 어머니의 발언 대통령 선거 전 마지막 촛불집회인 ‘광장의 경고, 촛불 민심을 들어라 - 23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열렸다. CJ E&M 운영 채널 tvN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촛불혁명으로 부패하고 불의한 박근혜를 파면,구속시키고 조기 대선이 치뤄졌으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사회개혁을 바라는 촛불시민들의 요구는 사라지고 힜다’고 우려하며 ‘사드 배치 철회, 성과연봉제-노동개악 철회 등 촛불이 요구한 적폐 청산은 이뤄지지 않은 채 박근혜의 공범인 황교안 대행과 해당 장관들이 적폐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고 이한빛 PD 어머니의 발언 대통령 선거 전 마지막 촛불집회인 '광장의 경고, 촛불 민심을 들어라 - 23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열렸다. CJ E&M 운영 채널 tvN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안병호 전국영화노동조합 위원장은 우선 구체적인 표준근로기준법과 근로 감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적어도 10시간은 쉬어야 한다"고 안 위원장은 말한다.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당장 당일 오후 10시 방송은 나가야 한다. 이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촬영 현장에서 밤을 지새운다.

안 위원장은 무엇보다 드라마 현장 자체를 일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일하는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않냐"는 말이나 "노동 시간 인정보다는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자는 인식이 드라마 현장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을 부추긴다.

결국, 유가족들과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한 걸음걸음으로 CJ E&M은 8개월 만에 이한빛 PD의 사망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CJ E&M은 방송 현장의 개선을 약속했다고 전해졌다. 과연 방송 현장은 바뀔 수 있는 걸까.

기자간담회가 얼추 마무리되자 배우들은 기자들을 앞에 두고 "더 열심히 연기하겠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정말 시청자들에게 보답할 방법은 이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을까. 나의 남은 하루에 위안이 돼주는 드라마이면서 만드는 이들도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언뜻 배우들의 눈 밑 그늘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기자간담회 드라마 현장 이한빛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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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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