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공연된 솔오페라단(단장 예술총감독 이소영)의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팔리아치>는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적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 모두 엇갈린 사랑이라는 누구나 호기심 가고 공감 갈 소재로 한껏 오페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박수 갈채가 쏟아진 충만감

 솔오페라단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스펙트럼 풍부한 주연 네명 성악가의 음색, 불꽃튀는 사랑대결과 합창이 인상적이었다.

솔오페라단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스펙트럼 풍부한 주연 네명 성악가의 음색, 불꽃튀는 사랑대결과 합창이 인상적이었다. ⓒ 솔오페라단


마스카니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주인공들의 농도 깊고 스펙트럼 넓은 음색이 극의 내용을 선명하게 전해주었다.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목가적인 주제선율이 아름답게 전개된다. 26일 공연에서 알피오 역 바리톤 이탈로 프로페리쉐는 '말은 힘차게 달려(Il cavallo scalpita)'로 중후한 음성과 박력 있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산뚜짜 역 피오렌차 체돌린스의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Voi lo sapete)'는 부드럽고 농도 짙은 목소리로 박수를 받았다. 이어지는 산뚜짜와 합창단의 '부활절 합창'은 벅차오르는 충만감을 주며 박수 갈채를 끌어냈다.

1막은 연적인 두 여인 산뚜짜와 로라의 대결이 볼거리다. 메조소프라노 헬렌 레팔란(로라 역)과 피오렌차 체돌린스(산뚜짜 역)의 날카로운 눈빛 싸움과 손짓과 턱짓으로 사건의 긴박감, 한 남자를 둔 두 여자의 피 튀기는 싸움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옛 애인 로라를 못 잊는 뚜리두 때문에 괴로워하는 산뚜짜와의 '질투의 이중창'은 끊이지 않는 애증이 오케스트라 반주(지휘 박지운)와 두 주인공의 노래와 연기에서 잘 표현되며 1막이 끝난다.

2막 간주곡의 아름답고도 유명한 선율이 시작된다. 1막이 여성들의 대결이었다면, 2막은 남성들의 불꽃 대결이다. 테너 미하일 쉐샤베리즈는 큰 키와 맑고도 힘찬 고음, 천진난만한 모습이 뚜리두 역에 잘 어울렸다. "어머니, 이 술은 지독하군요"라며 어머니에게 산뚜자를 부탁하고 가는 저 사랑 많고 마음 여린 철부지 남자를 어찌해야 할까. 알피오가 뚜리두의 귀를 물어뜯으며 결투를 신청한다. 산뚜짜는 알 수 없는 예감에 슬퍼하고, 멀리서 "뚜리두가 죽었어"라는 섬뜩한 마을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알피오가 칼을 던지며 등장하고 비장한 음악과 함께 극이 끝난다.

[팔리아치] 눈 코 뜰 새 없었던 전개

 <팔리아치>는 소프라노 발레리아 세페(넷다 역)와 바리톤 고성현(토니오 역)의 노래와 연기가 맛깔났다.

<팔리아치>는 소프라노 발레리아 세페(넷다 역)와 바리톤 고성현(토니오 역)의 노래와 연기가 맛깔났다. ⓒ 솔오페라단


후반부 레온카발로 작곡의 <팔리아치>는 흥미로운 내용과 전개에 눈코 뜰 새 없었다. 무대는 1막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무대에 장식조명으로 포인트를 살려 효과적으로 간결함과 입체성을 갖추도록 했다. 여기에 주인공 네 명이 의자에 앉은 뒷모습으로 '인생은 한편의 극'이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데이얀 세빅 지휘의 코리안쿱오케스트라는 서주를 다소 빠른 템포로 연주해 극의 긴장도를 높여주었다.

<팔리아치>는 특히 '동양의 미사일', '대포알'이라는 별명의 바리톤 고성현(토니오 역)의 활약이 돋보였다. 도입에서는 '팔리아치(유랑극단자)'의 인생을 멋지게 노래하며 관객을 극으로 인도한다. 여주인공 넷다를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조롱하며 채찍질하는 비열한 모습이 얼굴의 흰 분칠과 잘 어울리며 전반적으로 극을 장악했다.

발레리아 세페는 유럽에서 '넷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프라노'라는 평가가 과연 느껴졌다. 아리아 '저 하늘 높이(Oh che volo daugelli)'와 실비오의 품에서 눈을 지긋이 내리깔며 사랑을 노래하는 모습, 2막 극 중 극에서 바람을 피우고도 능청을 떠는 모습 등에서 고음의 풍성한 성량과 놀라운 연기력, 미모로 관객을 여주인공에 몰입시켰다. 2막 넷다의 연인 실비오 역 바리톤 나현규 또한 풍부한 목소리와 믿음직한 연기로 넷다와의 조화를 보여줬다. 베페 역의 테너 정재윤도 타고난 미성과 순수함이 드러나는 노래와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전반부에서 뚜리두를 맡았던 테너 미하일 쉐샤베리즈는 후반부 카니오 역에서는 더욱 카랑카랑함과 파워를 갖추며 배역에 따라 음색을 달리하는 노련함을 드러내었다. 그가 부른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는 아내 넷다의 애정행각을 감지하고도 광대로서 무대에 서야 하는 비장감이 물씬 풍겼다. 극의 절정으로 치달으며 '아니오, 나는 팔리아초가 아니오(No, pagliaccio non son)"라며 넷다에 대한 사랑과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함까지 느껴졌다.

긴장감을 가지고 달려왔던 흐름과는 달리 마지막은 다소 약했다. 카니오가 넷다를 칼로 찔러죽이자마자, 객석에서 달려나온 실비오를 바로 금세 찔러 이들 둘은 나무토막처럼 풀썩 쓰러져 누워있다. 이어 극중의 관객들이 토니오를 둘러싸고, 그의 마지막 대사 '희극은 끝났소(La commedia finite)'가 TV 코미디쇼 마지막에 어이없는 장면을 표현할 때 효과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비장미'보다는 '황당함'에 의도적으로 초점을 맞춘 게 아닌가 싶다.

너무 비장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지 않은 연출가 쟌도메니코 바카리의 의도일 것이라 생각하는 가운데 커튼콜이 이어졌다. 김해시립합창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 브릴란떼 어린이합창단이 오늘 또하나의 주역이었다. 휘몰아치는 오케스트라 반주의 드라마적 느낌, 짧지만 강렬한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 오페라의 매력을 선사해준 솔오페라단의 밤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플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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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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