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델타보이즈> 메인 포스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던 작품이다.

<델타보이즈> 메인 포스터. 세상에 나오기까지 쉽지 않았던 작품이다. ⓒ 인디스토리


01.
250만 원의 예산. 9회차 촬영으로 종료. 주연 배우들의 전체 출연료 0원. 정해진 대본 없음.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필요했던 것들이다. 2시간짜리 장편 영화 한 편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 이 척박한 조건 속에서 데뷔작 <델타 보이즈>를 세상에 내놓은 고봉수 감독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과 함께 공동대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첫 작품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철없는 어른들이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최고 상금이 500만 원밖에 되지 않는 소규모 4중창 대회에 삶의 모든 것을 쏟는 네 주인공의 모습은 이성적으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별개로 막연하다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지를 관찰자적인 시점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이 영화 <델타 보이즈>다.

02.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부분이 적을 수밖에 없는 다양성 영화는 대개 생동감 있는 인물의 특성과 극적인 드라마에 힘을 싣는 경우가 많다. 최근 작품들만 살펴봐도 그렇다. 영화 <족구왕>(2014)의 만섭(안재홍 역)이라는 인물이 그랬고, <거인>(2014)의 영재(최우식 역)이 그랬다. 반대로,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는 드라마적인 부분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델타 보이즈>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매형의 공장에 빌붙어 근근이 살아가던 일록(백승환 역)과, 미국 시카고에서 대뜸 한국으로 날아와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예건(이웅빈 역). 재능도 없으면서 꿈만 좇아 방황하는 생선 가게 직원 대용(신민재 역), 그리고 아무런 목표도 하나 없이 사람만 좋은 준세(김충길 역)까지. 이 네 사람의 캐릭터가 너무 확실하다 보니 작품에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표정이나 말투, 행동까지 인물들의 특징이 두드러지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로 극 중 인물들에는 각각을 연기한 배우들의 실제 모습이나 이야기가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사전에 준비된 대본이 없었음에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겉으로는 우스워 보이지만 그들이 개의치 않는 이유.

겉으로는 우스워 보이지만 그들이 개의치 않는 이유. ⓒ 인디스토리


03.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지점들이 개성 있으므로 작품에 힘이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남성들이여, 위대한 꿈을 향해 노래하라'라고 적혀 있던 4중창 대회의 포스터 문구 하나만으로 다른 이유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던 네 사람에게는 저마다 꿈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꿈을 꾸는 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들이 숨겨져 있다.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꿈을 어떻게든 다시 한번 이루고 싶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꿈을 타인에게 기대기만 하고 현실의 무게를 전가하는 이의 모습은 물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용감하지만, 자신의 꿈만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꿈은 모른 척하고 그 꿈을 빌미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이의 모습도. 악의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꿈을 가볍게 생각했던 이의 모습에. 그리고 현재 자신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삶의 무게에 휘둘리기만 하는 이의 모습까지. 겉으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고 헛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관객들 스스로가 놓고 있었던 아련한 시절의 꿈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04.
대다수 관객이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인상 깊게 봤겠지만, 네 사람이 함께 차려입고 마지막 리허설을 했던 그 장면은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하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면, 델타보이즈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네 사람은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특히 가장 큰 변화는 일록과 예건에게서 두드러져 보였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록이 대회가 없어진다는 연락을 받고 곧장 뛰쳐나가고, 담당 직원에게 사정까지 하며 세상의 문턱에 부딪히던 모습. 그것은 자신이 팀을 꾸린 델타 보이즈 구성원 모두의 꿈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행동이 무의미했던 건 분명히 아닐 것이다. 영화의 첫 등장부터 자유로운 모습만 보여줬던 예건 역시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창하기 위해서는 이발은 물론 콧수염도 다듬어야 하고,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실제로는 그 속이 엄격한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었음을 마지막에서야 드러내는 것이다.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이런 변화들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것은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무형의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국내 관객에게 제대로 소개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델타보이즈>.

국내 관객에게 제대로 소개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델타보이즈>. ⓒ 인디스토리


05.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왜 일록이 나머지 멤버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모두가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을 텐데. 시간이 지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멤버들은 보였을 반응 역시. 그 상황에서도 예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짧은 영어를 섞어 쓰고, 대용은 아쉬운 마음을 억지로 감추는 듯 밖으로 나가 치킨과 소주를 사 오고, 준세는 뒷머리만 긁적이며 또 눈치를 보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 영화는 꿈을 이루고 어쩌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막연한 무언가가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기까지 겪어야 하는 수많은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꿈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네 사람의 노력 아닌 노력들이 원했던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평생 잊지 못할 리허설을 남겨주었을 테니 말이다.

06.
역시 이 작품에 단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배급의 문제다. 전국에 50개도 채 되지 않는 스크린 수(6월 14일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전국 28개)는 관객들이 이 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국내 다양성 영화의 배급 문제에 대한 논란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최근 영화 <옥자>로부터 시작된 온라인 플랫폼 극장 간 문제만큼도 쟁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제작 환경을 제대로 지원해 줄 수 있는 환경까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에 나온 작품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접점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작품의 9회차 촬영에 이어 이번에는 단 11회차의 촬영만으로 완성했다는 고봉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튼튼이의 모험>(2017, 정식 개봉 미정) 역시 같은 이유로 관객들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영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joyjun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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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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