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옥빈이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펼치는 영화 <악녀>.

배우 김옥빈이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펼치는 영화 <악녀>. ⓒ NEW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월드 프리미어에서 5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요란한 홍보문구와 함께 개봉된 정병길 감독의 영화 <악녀>를 만났다.

수 개월 이상 고된 트레이닝을 받았음이 분명해 보이는 '악녀' 김옥빈(숙희 역)의 액션 연기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일까? 영화가 '황당하고 섹시한 거짓말'처럼 느껴졌던 건.

영상이 아닌 문자를 통한 '액션'이라면 중국의 2~3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나관중의 <삼국지>도 그 어떤 액션 영화 못지않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흰 수염 휘날리는 황충의 적진 돌파'다.

촉나라의 유비가 가장 신뢰하던 장군 가운데 한 명이었던 황충. 그는 "이제 늙은 장수들을 대신해 젊은 병사들이 잘 싸워주고 있으니 나의 마음이 흐뭇하다"는 유비의 말에 내심 발끈한다. 왜냐? 정확한 생몰연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황충은 일흔을 넘긴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적진으로 말을 몬 황충은 젊은 병사 수백 명의 목과 팔다리를 자르고 보란 듯이 유비 앞으로 돌아온다. 이걸 읽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물론 중국 고대 역사소설에는 과장이 섞여 있다. <초한지>의 항우 또한 생애 마지막 싸움인 '해하(垓下)전투'에서 유방의 군사 수백 명에 홀로 맞서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때 항우는 황충 나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른 살에 불과했다.

평균수명이 현재보다 훨씬 짧고, 의료수준 역시 형편없었을 고대 중국에서 일흔 살이면 지금의 백 살쯤으로 봐야 하지 아닐까? 그런데, 일백 살 노인이 20~30대 병사 수백 명을 홀로 상대한다? 정말이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황당한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김옥빈이 뿜어내는 매력은 부정할 수 없지만...

 김옥빈이 열연한 <악녀>는 <초한지>와 <삼국지>에서 확인한 소설적 황당함에 섹시함까지를 더하고 있다.

김옥빈이 열연한 <악녀>는 <초한지>와 <삼국지>에서 확인한 소설적 황당함에 섹시함까지를 더하고 있다. ⓒ NEW


<악녀>의 도입부는 <삼국지>나 <초한지>의 전투 묘사 장면 이상으로 박진감이 넘친다. 주연배우의 머리 혹은, 가슴에 달린 카메라는 조직폭력배 수십(혹은, 수백) 명이 버티고 있는 건물로 성큼성큼 들어선다. 이어지는 피의 카니발.

무서운 수련과정을 통해 살인 기계가 된 숙희 역을 맡은 김옥빈은 위와 아래, 좌측과 우측, 앞과 뒤에서 동시에 달려드는 험상궂은 사내들을 개구리가 파리 집어삼키듯 제압한다. 처음에는 총을 사용하고, 총알이 떨어지자 칼을 이용하며, 그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면 주먹과 발로.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선보인 액션 신을 '총알 발레'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악녀>의 김옥빈이 보여주는 액션 장면은 이보다 한 수 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총은 물론 칼과 주먹, 팔꿈치와 무릎 여기에 도끼까지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숙희의 싸움 실력은 '휘황한 개화(開花)'라고 명명해도 좋을 듯하다. 멜로나 스릴러가 아닌 액션 영화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인상적 여주인공이다.

액션이 영화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전부'일 순 없는 것

 <악녀>에서 본 인상적인 액션 장면의 하나인 오토바이 추격 신.

<악녀>에서 본 인상적인 액션 장면의 하나인 오토바이 추격 신. ⓒ NEW


<악녀>는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한 영화다. 한 번 시작된 액션은 끝 간 데를 모르고 무한 질주를 계속한다. 액션 장면은 시간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잔인해지며, 숨 가빠진다. <삼국지> 혹은, <초한지>의 전투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악녀>의 싸움장면은 황당한 동시에 섹시하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의 실소(失笑)를 눈치챘는지 함께 영화를 보던 사진작가 L이 말했다.

"탄탄한 플롯과 철학적 메시지를 여기서 왜 기대해? <악녀>는 액션 영화야. 즉물적이고, 단순한 즐거움도 때론 정신건강에 좋으니 그냥 즐겨."

그 말에 위로(?)와 깨달음을 얻어 <악녀>의 한 줄 평을 이렇게 써볼까?

"칸까지 매혹시킨 김옥빈의 핏빛 누아르."


그러나, 온전히 떨칠 수는 없다. 이 영화가 황당하고 섹시한 거짓말 같다는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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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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