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옥자>

ⓒ 넷플릭스


상영 문제가 시끄럽다. 원고를 쓰는 이 시점까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포함한 멀티 플렉스들이 넷플릭스와 동시 개봉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해결되지 않은 이 영화의 떠들썩한 상영 이슈가 아직 영화도 보지 않은 관객들을 지치게 한다. 논의가 매듭을 맺지 못한 상태에서 감히 한마디 보탠다면, 이 영화 어디서 하든 찾아가 봐야 한다. 설령 그곳이 '옥자'들이 사는 산골짜기라 하더라도.

<옥자>의 기본 프레임은 소녀의 출가(出家) 서사(girl leaving home narrative)다. 소녀가 사춘기가 되면서 집 밖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동화 혹은 이야기들의 틀을 따라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오즈의 마법사>(Wizard of Oz),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등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일 것이다.

산속에서 할아버지(변희봉 분)와 단둘이 사는 미자(안서현 분)는 '미란도'라는 세계적인 GM(genetically modified: 유전자 조작) 푸드기업이 26개국의 개인 농장에 위탁한 슈퍼돼지 '옥자'를 키우고 있다. 언젠가는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소환'되어야 할 옥자의 운명을 모른 채 미자는 옥자와 산속을 누비며 꿈 같은 유년을 보내는 중이다.

위탁 기간인 10년을 맞게 되면서 옥자는 미란도 그룹에 의해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실험실로 강제 수집된다. 그리고 피붙이 같은 옥자를 구하기 위해 미자는 미국행을 결심한다. 이 시점부터 소녀와 돼지의 눈물겨운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눈물겹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영화 <옥자>

ⓒ 넷플릭스


<옥자>의 눈물겨움

첫째, <옥자>에는 불필요한 개그(gag)가 없다. 그리고 영화의 주된 동력은 미자의 처절한 '옥자 구출기'를 위해 할애된다(숱한 한국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머 코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유머 코드'들의 상당 부분이 사고와 지혜를 유도하지 않는, 말실수나 슬랩스틱에 기반한 '개그'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를 제외하고, <옥자>에는 억지웃음이나, 으레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들에서 보이는 관습적인 멜로가 없다.

대신 미자의 '옥자 구출 작전' 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영화는 오롯이 더러운 세상에서의 고군분투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앞서 언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처럼 미자 역시 여정에서 수많은 군상들과 조우하지만, 미자가 마주하게 되는 상대는 토끼 아저씨나 트럼프 병정들 같은 낭만적인 캐릭터들이 아니다. 자신이 변형한 돼지로 만든 소시지를 씹어대는 '친환경그룹' 의 CEO 루시 미란도, 살아있는 돼지의 살점으로 육질을 실험하는 죠니 윌킨스, 옥자를 폭찹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미자를 협박하는 루시의 비서 등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 구성원들이다. 사실상 이들 중 누구도 이유 없는 살인을 하거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인들이 아니다.

 영화 <옥자>의 스틸컷.

ⓒ 넷플릭스


<옥자>가 눈물겨운 두 번째 이유다. 우리의 상당수가 미자보다는 루시 미란도나 비서에 가까운 윤리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정의가 아닌 명령에 의해서, 애정이 아닌 돈에 의해서 우리의 동력이 생산되고 소멸한다. 그것은 권력의 윤리이고 돈의 윤리다. 영화는 주요인물들 외에도 미자와 옥자의 눈을 통해 사회의 다각에서 질식해 가는 군상들을 그려낸다. 예컨대 배경으로 등장하는 미트 패킹 공장의 불법 체류자들, 사무실의 큐비클 안에서 명령대로 움직이는 직원들은 돈을 위해 '돼지'만도 못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이고, 곧 '우리'다.

미자와 옥자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영화는 뛰어난 촬영으로 담아낸다. 현시대의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 중 한 명인 다리우스 콘지 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데이빗 핀처의 <세븐>, 장 피에르 주네의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촬영 감독으로 이름을 알려 <에비타>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기까지 그는 1990년대 이전의 영화들의 색감과는 완전히 다른 톤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예컨대 <세븐> 에서의 비장한 브라운 톤, <델리카트슨 사람들> 전반에 깔린 몽환적인 블루 톤은 다리우스 콘지가 창조해 낸 영화 전체의 이미지임과 동시에 영화가 추구하는 그랜드 테마의 그림자인 것이다.

<옥자>에서의 색감은 파스텔과 총천연색으로 이분화된다. 동화의 외피를 쓴 영화이기에 파스텔 톤의 몽글몽글한 색이 주인공들을 장식할 것 같지만 작품은 그 반대의 포뮬러를 택한다. "성실한 노동자들의 피"를 운운하며 착취적 기업을 운영하는 루시 미란도는 모든 행사에 핑크색 의상을 입고 등장하고 그녀를 휘감은 핑크빛은 과장된 조명으로 눈을 아리게 한다.

 영화 <옥자>의 스틸컷.

ⓒ 넷플릭스


미자가 그녀의 행사에 등장할 때도 미자에게 자신이 직접 디자인 한 핑크색 옷을 입힌다. 매끈한 플래티넘 금발과 교정기로 다듬어진 앞니를 포함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혹은 그녀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정제된 것이고 만들어진 것이다. 루시 미란도의 존재를 장식하고 있는 엷은 핑크 톤은 그녀의 이중성과 자기기만을 상징하기에 완벽한 색감이다.

반대로, 초록이 흘러내리는 숲에 사는 미자는 빨간색 점퍼, 초록색 바지 등 섞이거나 희석되지 않은 색을 입고 등장한다. 그녀를 비추는 과한 조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자와 옥자는 살을 맞대고 마음과 말을 나눈다. 미자는 옥자의 길게 늘어진 귀를 들춰서 이야기하며, 자신의 귀를 갖다 대어 옥자의 '마음'을 듣는다. 이들을 대변하는 천연색은 거짓을 강요하는 카메라 앞의 파스텔 세상과 대비된다.

세속을 상징하는 파스텔 톤이든, 교감을 상징하는 천연색이든 <옥자>는 아름다운 영화지만, 그런데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슬프고 씁쓸한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는 악인과 선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돈의 논리와 타협한 '우리'들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그렇지 않은 누군가'를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옥자>는 동화라기보다 우화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예쁘고 귀여운 등장인물 뒤에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사실적인, '우리' 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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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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