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원더우먼'은 일종의 영웅이다. 갤 가돗이 주연한 2017년판 <원더우먼>의 포스터.

1970년대에 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원더우먼'은 일종의 영웅이다. 갤 가돗이 주연한 2017년판 <원더우먼>의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원더우먼'이라는 단어에서 배우 린다 카터(Lynda Carter)를 떠올리면 요즘 말로 '아재'다. 20대 이하의 신세대들에겐 갤 가돗(Gal Gadot)의 원더우먼이 보다 익숙하다.

마흔일곱 어쩔 수 없는 '아재'인 내 기억 속의 원더우먼은 투명한 비행기를 타고, 매력적인 눈웃음을 보내는 아름다운 전사(戰士)였다. 때는 박정희의 유신통치가 끝나가던 1970년대였고, 초등학생들은 만화영화 속 슈퍼맨, 배트맨, 아쿠아맨 등 각종 '맨(Man)'에 열광했다.

그 사내들 틈에서 나 홀로 고군분투 하는 '우먼(woman)'의 존재감은 크고도 돌올했다. 흉기와 둔기가 난무하고, 심지어 총탄이 빗발치는 싸움에서도 전투에 극히 취약해 보이는 복장만을 갖춘 채 악당들을 징벌하던 원더우먼. 부정할 수 없다. 1970년대 린다 카터가 연기한 원더우먼은 나를 포함한 한국 소년들의 영웅이었다.

누가 수레바퀴를 돌리거나, "어서 가라"고 노래하지 않아도 흐르는 게 세월이다. 린다 카터에 열광하던 소년들은 이제 젊은이의 농담과 신조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배 나온 '아재'가 됐다. 그리고, 오늘. 세련되게 진화한 새로운 원더우먼 갤 가돗과 만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 <원더우먼>의 주연배우 갤 가돗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을 지지했고, 그것을 이유로 레바논 등 아랍국가들은 <원더우먼> 상영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화 <원더우먼>의 주연배우 갤 가돗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을 지지했고, 그것을 이유로 레바논 등 아랍국가들은 <원더우먼> 상영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레바논, 튀니지, 알제리에서 상영불가... 영화 외적 화제도

최근 개봉된 <원더 우먼>의 연출자는 패티 젠킨스. 전작 <몬스터>를 통해 유년의 상처와 사회적 냉대가 만들어낸 '괴물(매춘과 살인을 저지른 여성 범죄자)'에 대한 가없는 연민의 시선을 보여준 감독이다.

극악한 상황 탓에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했고, 자아 성장과정에서 상처와 차별을 받은 여성에 대한 따스하면서도 객관적인 성찰은 패티 젠킨스를 페미니스트로 불리게 만들었다. 이번 영화 <원더 우먼> 역시 페미니즘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해석하는 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원더우 먼>은 영화 외적인 것으로도 화제를 불러 모았다. 헤즈볼라(Hezbollah·아랍의 무장정치조직)가 활동하고 있는 레바논은 "갤 가돗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을 지지했다"는 이유를 들어 <원더 우먼>의 상영을 불허했다.

갤 가돗은 이스라엘인이고, 군대에서도 복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영 반대 기류는 현재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알제리 등 무슬림 국가로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오락영화 한 편을 놓고 '인종-종교간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지구의 비극성을 보여주는 듯해 서글프다.

 <원더우먼>의 한 장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원더우먼의 모습이다.

<원더우먼>의 한 장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원더우먼의 모습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정의와 선의 실현'을 위해 동분서주 하는 원더우먼, 그러나...

패티 젠킨스와 갤 가돗이 합작한 <원더 우먼>은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보다 분명 진화했다. 액션영화의 알짬이라 할 특수효과는 1970년대의 그것과는 비교를 불허하고, 어지간한 남성보다 큰 178cm의 늘씬한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갤 가돗의 돌려차기는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원더우먼 '다이애나 프린스'가 태어난 곳으로 그려지는 데미스키라 왕국은 동유럽 크로아티아나 몬테네그로의 절경을 빼닮았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아름다운 도시를 눈요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기에 복합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간명한 줄거리도 '여름날, 시원한 극장에서 시간 보내기'를 원하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남성 슈퍼영웅 대여섯 명의 몫을 혼자서 거뜬히 해내며, 총알이 난사되는 세계 제1차대전의 전장 속을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질주하는 원더우먼 갤 가돗. 정말이지 '원더'하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내 목숨을 걸고 지구 위에 정의와 선을 실현시키겠다"는 절치부심으로 악당들에게 달려가는 원더우먼. 그러나, 거기엔 정의와 선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탐구는 없다. 선과 악의 구분이 너무나 뚜렷해 평론가들의 비평적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원더우먼 외의 캐릭터들 역시 "매력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선악은 칼에 잘린 두부 조각처럼 명확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원더우먼의 질주가 맹목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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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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