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엔터테인먼트


열여덟 용순(이수경 분)은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다. 남몰래 학교 체육 선생(박근록 분)과 사랑을 키워온 그는 어느 날 '체육'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용순은 소꿉친구 빡큐(김동영 분)와 문희(장햇살 분)의 도움을 받아 체육의 뒤를 캐고, 이 와중에 아빠가 몽골에서 데려온 새엄마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체육과의 소원해진 관계도 새엄마의 갑작스러운 관심도 마음에 들지 않는 용순은 날을 세워가며 줄곧 이들과 부딪치고,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육상 대회를 앞두고 돌연 자신이 임신했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영화 <용순>은 충청도 어느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사춘기 소녀의 열병을 그린다. 첫사랑의 희열을 맛본 주인공 용순이 자신 앞에 놓인 이별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그 어떤 것에도 최선을 다해 본 적 없는 용순이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런데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진심일지라도 상대방에게 제대로 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말하자면 영화는 소녀의 첫사랑을 통해 첫 실패의 아릿한 무력감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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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로맨스 신 하나 없는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건 역설적이게도 그런 맥락에서다. 용순의 첫사랑은 이미 단물이 빠질 대로 빠져 씁쓸하기만 하고, "우리 이제 학교 밖에서 따로 만나지 말자"라는 체육의 말 앞에 용순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누가 봐도 소생 불가능한 이 관계 앞에서 용순은 좀처럼 무릎 꿇지 않는다. 체육이 만나는 여자를 찾아내 혼쭐을 내주겠노라고, 그래서 기필코 다시 체육을 자신 앞에 돌려놓으리라 다짐한다. 여기에 언제나 그의 편이었던 두 소꿉친구 빡큐와 문희가 합세한다. 체육을 미행해 지켜보고, 운동장에서 만난 체육에게 눈을 흘기고, 체육을 유인해 기어코 용순과 만나게 한다. 무모해 보이는 일을 위해 그렇게나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청춘 그 자체다.

첫사랑을 대하는 용순의 심리는 그의 가족사와 맞물려 더욱 의미심장하다. 어린 시절 늘 싸우기만 했던 부모, 불치병을 앓다 가족을 버리고 옛 연인 곁에서 세상을 떠난 엄마, 언제 아빠의 재산을 훔쳐 도망갈지 모를 수상한 몽골인 새엄마까지. 용순에게 있어 사랑은 상실로 귀결되는 불행의 씨앗이면서도 결코 다신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가치로 여겨진다. 체육이 자신의 임신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게 불쾌하지만, 한편으론 그래서라도 자신을 떠나지 않길 바라는 용순의 속내는 그런 이유에서다. 맛있는 요리와 정성 어린 선물을 건네며 다가오는 새엄마에게 줄곧 날을 세우는 태도 또한 자신을 떠났던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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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미, 용순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분연히 맞서는 클라이맥스 시퀀스는 그가 겪는 성장통의 정점이다. 사춘기 귀여운 풋사랑쯤으로 치부되는 자신의 진심을 어른들 앞에서 당당히 외치는 용순의 모습은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그의 중요한 관문으로 비친다. 여기에 비로소 연적(戀敵)을 마주한 뒤 용순이 벌이는 마지막 결투(?)는 켜켜이 쌓인 그의 울분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첫사랑의 피날레로서 강렬한 카타르시스마저 자아낸다. 냉랭하게만 대해 온 새엄마가 결정적 순간 두 친구와 함께 유일한 어른으로서 용순의 편에 서는 장면은 퍽 여운이 길다.

덧붙이는 글 감독 신준 / 러닝타임 104분 / 15세 관람가 / 6월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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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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