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대립군>의 포스터.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대립군>의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조선의 왕위계승사(史)는 피와 살점이 튀고 뼈가 부러지는 골육상쟁사(史)라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과장이 아니고 의도적 폄훼도 아니다.

왕국이 세워진 초기.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는 데 걸림돌이 될 이복동생을 도륙했다. 역사에 관심이 크지 않은 이들도 숙부인 세조가 조카 단종의 살해 명령을 내렸다는 것 정도는 안다.

왕조국가에서 정승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면, 왕은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이다. 해서 '부끄러울 일'도 '경계해야 할 일'도 원칙적으론 없다. 다만, 왕조의 건국이념이 된 경전의 가르침을 형식적으로 섬겼을 뿐.

조선의 14대 왕 선조(재위 1567∼1608)는 26대 왕 고종(재위 1863∼1907)과 함께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무능하고 무기력했던 왕'으로 불린다.

당쟁을 일삼던 신하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고, 임진왜란 때는 나라와 백성을 통째로 버려두고 중국으로 도망쳤다. 자신의 책임인 '국가방위'는 후궁에게서 낳은 아들 광해군(조선의 15대 왕·재위 1608~1623)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임진왜란의 참상과 고통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해가는 광해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영화 <대립군>. 그러나, 그 바람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한 것 같다.

임진왜란의 참상과 고통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해가는 광해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영화 <대립군>. 그러나, 그 바람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한 것 같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한숨이 절로 나오는 역사, 영화또한...

정윤철 감독이 연출해 최근 개봉된 영화 <대립군>은 바로 '전쟁을 피해 도망친 왕'과 '허울뿐인 통치권을 억지로 나눠가진 왕자'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만 영화는 다 누렸지만, 책임은 방기했던 왕들의 '한심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뭐 앞서 말한 것들은 영화와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니 이쯤에서 그만하고. 그렇다면 <대립군>의 영화적 완성도는 어떤가?

정 감독은 분명 '소년 광해군(여진구 분)'이 임진왜란이라는 극단의 비극적 상황을 통해 '인간적 성장'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광해군 역시 왕이 되는 과정에서 이복동생 영창대군은 물론, 친형 임해군까지 죽인 사람이다. 그러나, 국방과 외교 분야에선 능력을 보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대립군>은 광해군의 국방과 외교 관련 소양(素養)이 임진왜란의 참상과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걸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감독이 던지고자 한 '메시지'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영화의 구성과 흐름을 통해 관객의 자연스런 고개 끄덕임을 얻어내야 한다.

그러나, <대립군>에선 설득의 바탕이 되는 이해와 감동을 끌어낼 코드가 보이지 않는다.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치밀한 구성과 내용을 갖추지 못한 '엉성한 역사교과서' 같다.

살인과 약탈이 벌어지는 장면이 갑작스럽게 툭 끊어져 전혀 연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화면으로 뜬금없이 전환되고, 불화를 일으키던 '대립군'과 '양반', '백성'과 '왕실관리'의 갑작스런 화해에는 계기와 연결고리가 없거나 약하다.

 이정재는 <관상>에 이어 <대립군>에서도 호연한다. 사극에 잘 어울리는 배우다.

이정재는 <관상>에 이어 <대립군>에서도 호연한다. 사극에 잘 어울리는 배우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이정재와 '대립군'의 연기만은 비난하기 어려워

영화의 제목인 된 '대립군'은 궁핍과 신분적 한계 탓에 남의 군역(軍役)을 대신해주고 밥을 벌던 사람들을 뜻한다. 최하층 백성이란 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구하고자 스스로 칼과 낫을 들고 일어났던 건 왕도 정승과 판서도 아닌 바로 이 최하층 백성들이었다. 나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으면서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던 사람들.

묘하게도 조선의 역사와 비슷하게 영화 <대립군>을 구하는 것도 바로 그들이다. '대립군'으로 분한 배우 이정재와 박원상, 박해준, 한재영 등의 호연은 중심을 못 잡고 휘청대는 정윤철 감독의 연출력을 무너지지 않게 끙끙대며 지탱했다. 백척간두의 조국을 구한 조선의 민초들처럼.

특히 <대립군>에서 보여준 이정재의 연기는 몇 번을 거듭 칭찬해도 넘치지 않는다. <관상>에선 수양대군 역할을 맡아 야욕과 동정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는 '사극에 썩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곧 가질 것 같다. 잘생긴 얼굴에 연기력까지 갖춰가고 있으니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다.

대립군 선조 광해군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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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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