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남녀 주인공이 나란히 남녀주연상을 타는, 없을 것만 같은 행운이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일어났다. 배우 구교환과 이민지, 두 사람은 영화 <꿈의 제인>으로 각각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니었고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배우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한 속도로 차근차근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배우들이었다. 이 두 사람을 한 카메라 앞에 세운 조현훈 감독은 두 배우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한 세계를 만들어냈다. <꿈의 제인>의 남녀주연상 수상은 두 배우의 '대체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첫 장편 데뷔를 마친 감독의 역량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상 사실은 그저 <꿈의 제인>이라는 규모가 작은 영화를 소개할 하나의 좋은 구실이 될 뿐이다. 남우주연상 수상을 두고 배우 구교환은 "노출될 수 있는 기회"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의 말처럼 '노출' 그 이후는 영화의 몫이다.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늘 실패하고 외로움에 몸을 떠는 가출 청소년 소현(이민지)과 그런 소현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민 제인(구교환)의 꿈인지 사실인지 모를 만남을 담은 영화 <꿈의 제인>. 볕이 좋은 지난달 26일 오전 주연 배우 구교환과 이민지, 그리고 조현훈 감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영화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 배우 이민지,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 배우 이민지,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 배우 이민지,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제인을 존경한다"

'가출팸', 가출과 가족을 뜻하는 '패밀리'의 합성어로 가출한 청소년들이 서로 모여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뜻의 신조어다. <꿈의 제인>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가출팸이 등장한다. 트랜스젠더인 제인의 집 역시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로 하나의 '가출팸'이다. 소현이 제인의 가출팸 안에 들어가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조현훈 감독은 <꿈의 제인>이 택한 가출 청소년이라는 소재에 대해 "이방인의 정서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애정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현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말할 기회가 없는 인물들에게 입을 빌려줘야 겠다 싶어 작업을 시작했다. 이런 인물들을 보면서 위로나 연대의 감정을 느끼셨으면 한다. 모든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 세상 도처에 널린 행복과 불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고 가셨으면 좋겠다."

영화의 주인공 제인은 트랜스젠더다. 그는 이태원에 있는 클럽 '뉴월드'라는 곳에서 노래를 한다. 제인은 소현에게 위로이며 이상향이다. 그리고 뉴월드는 마치 소현의 은신처 같은 기능을 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인을 보며 '내게도 제인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꿈의 제인>의 각본을 직접 쓴 감독은 스스로 만든 제인이라는 인물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제인은 개인적으로 제가 존경하는 주변의 친구들의 모습을 투영시킨 인물이다. 영화 전반을 제인에게 의지하고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실제로 제인이 영화를 이끌어줬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조현훈 감독에게 있어 구교환은 이상적인 제인을 나타내기에 알맞은 배우였다. 조현훈 감독은 구교환을 "웃는 얼굴에도 슬픈 감정이 보이는 인상이 기억에 남았다"고 기억한다.

"구교환은 쉽게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 얼굴이다. 그의 그런 점들이 처음 구상했던 제인의 모습과 맞다고 생각했다. 제인이 현장에 나타나면 언제나 그의 세계로 빠지는 느낌이 있었다. 제인이 있는 곳은 모두 뉴월드처럼 느껴졌다."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반면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구교환은 <꿈의 제인> 촬영 현장을 "제인으로서 있을 수 있던 현장"으로 회고한다.

"시나리오 안에 있는 제인의 행동이나 표정에서 욕심이 많이 났다. 내가 제인을 만난만큼 그를 채워서 관객들에게도 제인을 소개시켜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제인을 가감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역할을 준비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와서 보셨으면"

이민지와 구교환에게 '왜 상을 받은 것 같냐'고 물었다. 곰곰 생각하던 이민지는 "스스로 이야기하는 건 자화자찬 같으니 서로가 왜 상을 받았는지를 말해보는 게 어떤지"를 제안했다. 그러자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배우 이민지는 평소 구교환이라는 배우의 팬이었기에 제인 역할을 구교환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제인을 맡으면서 '전형적인 인물'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연기하는 스타일도 독특하고 매력과 유기적인 호흡이 독보적인 배우라서 제인의 이상적인 모습, 위로해주는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연기도 물론 좋지만 '이런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어'라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캐릭터이고 마치 꿈에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현실에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이민지가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구교환이라는 배우의 팬"이라는 말을 듣자 구교환은 민망한지 옆에서 웃다가 "나도 이민지라는 배우를 오랫동안 지켜본 팬, 내가 '더더' 팬이다"라고 말했다. "이민지에게는 제인이라는 인물을 소현을 통해서 알게 될 정도의 에너지가 있다. 그런 사람이 있지 않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그 신을 진짜처럼 만들어주는, 상대 배우로서 정말 훌륭한 파트너다." 이민지는 이 말을 듣자 이를 살짝 보이며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배우 이민지는 <꿈의 제인>을 두고 "되게 울타리가 낮은 담장이라 쉽게 넘을 수 있는데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비유했다. "혼자 영화를 보고 가시면 어떨까. 영화관이라는 게 같이 와도 결국 영화가 시작하면 개인적인 공간이 되는 느낌이 있다. 누군가 옆에서 토닥이는 위로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이 와서 보셨으면 좋겠다."

<꿈의 제인> 속 대사 코멘터리
(1) "안녕 돌아왔구나" : 제인과 소현의 첫 만남. 손목을 칼로 그어 자해를 시도하는 소현에게 처음 모습을 보인 제인은 마치 원래 소현을 알던 사람처럼 인사를 건넨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인사라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제인의 인사를 좋아한다." (구교환)

(2) "우리 모두의 시시한 행복을 위하여" : <꿈의 제인> V LIVE에서 조현훈 감독은 생방송이 끝나기 전 배우들에게 '우리 모두의 시시한 행복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치자고 한다. <꿈의 제인> 속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시시한 행복'을 갈구하고 다른 이들처럼 때때로 이를 손에 넣기도 하지만 잃기도 한다. 배우들과 감독은 최근 어떤 '시시한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네일아트. 난 손톱이 별로 안 예쁘다고 생각하던 사람인데 누구에게 꾸밈을 받고 나니 못난 손톱도 예뻐 보이는 효과가 있더라. 여기서 오는 소소한 행복이 있다. '못났지만 잠깐은 예뻐보이는구나" 여기에 왜 돈을 쓰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악수하거나 손을 잡는 것 외에 손을 남이 터치해주는 일이 잘 없지 않나. 너무 세세하게 만져주고 '내 손을 이렇게까지 관리해주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이민지)

"위닝일레븐. 시시한 행복은 굉장히 산재되어 있지 않나. 나에게는 축구게임 위닝 일레븐이 있다. 하루에 두 판 행복한 습관처럼 하고 잠이 든다. 이런 것들은 결국 시시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는 '대학 합격' 같은 거대한 행복들만 보고 살아가면 못 버틸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돼야지' 하는 거대한 목표 같은 것들도. 잽이 쌓이면 상대방을 K.O. 시키듯이 결국 사람을 쓰러트리는 건 잽이다. 그런 시시한 행복들이 큰 행복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구교환)

"조그만 수조에 우파루파(동물)를 키운다. 최근에 우파루파가 피부병에 걸려 좀 아팠다. 너무 놀라서 물도 다 갈고 조치를 취했다. 자고 일어나니 하루만에 나은 거다. 너무 행복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온도가 바뀌면서 수온도 변하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있더라. 신경을 쓴다고 쓰는 데도 매년 이 시기마다 문제가 있다. 정말 많이 아프면 어항을 들고 뛰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라 약을 타서 응급조치를 하는 편이다. 요즘은 다행히 다시 좋아져서 되게 행복하다." (조현훈 감독)

(3)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 제인과 소현은 해변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제인이 소현에게 하는 말. "이건 내 생각인데 난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쭈욱 이어지는 기분? 그런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이런 개같이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배우들에게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이 말에 동의한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우리가 비록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옆에서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으니 '안주'하고 있는데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혼자 있게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같이 버티면서 살 수 있다." (이민지)

 영화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 신을 주목!
(1) 뉴월드에서의 마지막 신 : "<꿈의 제인>에서 영화 음악을 맡은 '플플달(플래시 플러드 달링스)'님께서 직접 마지막 뉴월드 신에서 음악을 틀어주셨다. 우리는 각자 엑스트라가 아닌 지인을 초대해 정말 클럽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 되게 느낌이 묘했다. 그때 지인들이 제인을 처음 봤는데 제인의 모습에 대해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즐거웠다. 그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진짜 뉴월드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민지)

(2) 야구부가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는 신 : "연출자 입장에서는 모든 신이 긴장된다. 특히 제인이 등장하는 신들은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거의 모든 신이 쉽지 않았는데 야구부가 나오는 신만큼은 마음을 놓고 구경을 하게 됐다. 운동장에 갔는데 실제 야구부가 훈련하는 걸 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꽤 됐는데 실제 그 모습을 보니 어떤 어마어마한 에너지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날씨도 좋아 콘티도 안 들여다보고 멍하니 있었다. 그 에너지가 영화에 잘 담긴 것처럼 느껴져 가장 좋아하는 신 중에 하나다." (조현훈)

(3) 소현이 달려가는 신 : "영화 초반 소현이 달리는 신이 있는데 울컥했다. 이민지는 (관객들에게) 어떤 분위기를 줄 수 있는 배우다. 분위기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배우다." (구교환)

 영화 <꿈의 제인>의 배우 이민지, 조현훈 감독, 배우 구교환이 26일 오후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꿈의 제인>이 관객 1만 명을 돌파했다. 이들은 이날 관객이 1만 명 돌파하면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한 장면을 재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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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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