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붉은 고래>의 한장면

<나의 붉은 고래>의 한장면ⓒ (주)영화사 빅


인간 세계의 바다 아래에 맞닿은 또 다른 신비의 세계. 이곳에 사는 열여섯 소녀 춘은 성년식을 맞아 돌고래로 변해 하늘 위 인간들의 세상을 향한다. 며칠간 바다 곳곳을 여행하던 그는 인간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고, 우연히 이를 발견한 인간 소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용돌이에 휩쓸린 소년은 목숨을 잃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춘은 그를 되살리기 위해 '영혼 관리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결국 목숨의 절반을 내놓는 대가로 소년의 영혼이 깃든 새끼 고래를 맡아 키우게 된 춘. 그는 고래가 된 소년에게 '곤'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곤이 인간 세계에 돌아갈 때까지 남몰래 돌보던 중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영화 <나의 붉은 고래>는 한 소녀의 시선으로 우주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 춘의 여정은 삶과 죽음, 윤회에 이르기까지 동양적 세계관을 스크린 위에 절묘하게 재현한다. 실제로 영화는 중국 철학자 장자의 사상에 등장하는 '붕정만리'(鵬程萬里, 붕새를 타고 만리를 나는 것, 먼 길 또는 먼 장래를 이르는 말)를 모티브로 했다.

 <나의 붉은 고래>의 한장면

<나의 붉은 고래>의 한장면ⓒ (주)영화사 빅


춘이 마을의 금기를 어긴 채 곤을 보살피며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서사의 굵직한 줄기다. 곤의 영혼을 들인 탓에 춘의 세계가 이런저런 어려움에 빠지고 홍수까지 겪게 되는 전개는 특히 뼈아프다. 곤을 지키고자 하는 춘의 선의가 주변의 다른 이들을 위협하고 나아가 자신의 세계 전부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일어나는 재난은 춘에게 있어 일종의 업보로 여겨지고, 덕분에 춘이 치러내는 고통은 그만큼 절실한 바람이 되어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인간과 고래, 바다와 하늘을 절묘하게 연결하는 영화의 연출은 특히 인상적이다. 인간 세계의 바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물기둥이 되어 두 세계를 잇는 관문이 된다거나 비 오는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들의 모습 등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신선과 요괴의 면모가 한꺼번에 엿보이는 극 중 캐릭터들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그것과도 닮았다. 여기에 윤회와 환생을 주요 모티브로 한 영화의 설정은 고래나 새, 고양이, 쥐 등 동물을 다루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인상적으로 각인된다.

 <나의 붉은 고래>의 한장면

<나의 붉은 고래>의 한장면ⓒ (주)영화사 빅


곤에게 구해진 춘이 다시 곤을 구원하는 영화는 전개는 소녀의 성장 서사로서도 의미심장하다. 춘은 남성에 의지하는 여성을 뛰어넘어 주체적으로 남성을 구원하는 여성성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여기에 춘의 유일한 조력자로 등장하는 소년 '추' 또한 그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깊은 신뢰와 헌신을 보여준다. 극 중 춘이 전통과 보수를 대변하는 엄마를 거역하고, 대신 할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신념을 지지받는 지점에서는 '여성'이란 굴레를 넘어선 영웅상이 엿보인다. 영화 말미 스스로 자초한 재난을 해결하는 춘의 태도는 "하늘이 우리에게 삶을 준 건 우리보고 기적을 만들라는 뜻"이라는 대사와 맞물려 울림이 깊다. 

12년에 걸친 대장정을 거쳐 완성된 <나의 붉은 고래>의 작화에는 CG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의 비앤티(B&T) 스튜디오와 한국의 스튜디오미르가 힘을 모아 완성한 영화의 만듦새에서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일종의 장인 정신마저 느껴질 정도다.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음악감독 요시다 키요시가 맡은 OST 넘버들 또한 감동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하다. 아직 익숙치 않은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의 붉은 고래>가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감독 양선, 장춘 / 러닝타임 101분 / 전체관람가 / 6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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