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포스터.

<7일의 왕비> 포스터. ⓒ KBS


KBS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는 단경왕후 신씨(박민영 분)와 연산군(이동건 분) 및 중종(연우진 분)의 삼각관계가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씨와 중종 부부의 러브라인에 연산군까지 가세하는 것이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물관계도에는 연산군이 신씨에 대해 연정을 품는다는 설정의 표시로 하트가 찍혀 있다.

그런데 신씨(1487년 생)는 연산군(1476년 생)의 처조카였다. 연산군의 부인이 신씨의 고모였다. 그래서 연산군은 신씨의 고모부였다. 동시에 연산군은 신씨의 시아주버니였다.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훗날의 중종, 1488년 생)이 신씨의 남편이었다. 그래서 신씨한테 연산군은 고모부이자 시아주버니였다.

역사왜곡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정섭 감독은 29일 제작발표회에서
"조선시대 왕족들의 혼례나 혈연관계의 문제는 저희가 생각하는 상식으로 판단하기에는 힘든, 왕이 누리는 도덕과 세상에 대한 상식에서 벗어나는 시절이었다"라며 "역사 왜곡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7일의 왕비> 인물관계도

<7일의 왕비> 인물관계도 ⓒ KBS


연산군과 중종 부부의 삼각관계?

연산군은 성적 패륜을 많이 범했다. 민간 여성들을 함부로 폭행했을 뿐 아니라 큰어머니한테까지 그런 짓을 했다. 이 때문에 큰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연산군이었으니, 열한 살 연하의 처조카 겸 제수한테도 연정을 품었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상을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산군이 신씨한테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사건·사고가 다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기록에 없는 사건·사고가 훨씬 많다. 하지만, 신씨와 연산군 사이에는 그런 일이 있었을 가능성마저 거의 없다. 이 점을 완벽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입증할 만한 자료들이 있다.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제7권에 인용된 <국조기사>라는 책에 따르면, 신씨와 진성대군(훗날의 중종)은 남다른 부부애로 유명했다. <국조기사>에서는 두 사람이 "어려서부터 애정이 매우 두터웠다"고 했다.

신씨는 귀족이고 진성대군은 왕족이다. 이런 사람들이 결혼하면 서로 예의를 지키기 바빴다. 그래서 형식적인 부부로 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신씨와 진성대군은 상당히 친밀한 부부로 일찍부터 유명했다.

두 사람은 연산군 정권이 무너지기 7년 전인 1499년 결혼했다. 신씨는 열세 살이고 진성대군은 열두 살이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각별한 부부애로 유명했다. 연산군이 쫓겨나기 전까지 그랬다. 만약 이 관계에 연산군이 개입했다면, 두 사람이 애틋한 부부애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이 신씨한테 애정 표현을 했다면, 신씨와 진성대군은 연산군을 불편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은, 연산군을 몰아낸 쿠데타인 중종반정 당일의 상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중종이 연산군과 자신을 운명공동체로 생각했다는 점과, 신씨가 자기 부부와 연산군을 둘러싼 상황을 아주 냉정하게 판단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연산군과 중종 부부의 실제 역사

 <연려실기술> 표지.

<연려실기술> 표지.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중종반정이 개시된 직후 쿠데타군 일부가 신씨와 중종의 집을 포위했다. 말 탄 병사들이 그 집을 에워쌌다. 그러자 진성대군은 불안에 떨었다. 겁에 질린 나머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쿠데타군이 연산군뿐 아니라 자기까지도 해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급박한 순간에 진성군은 자신과 연산군을 운명공동체로 파악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자결을 결심한 것이다. 만약 연산군과 삼각관계로 엮여 있었다면, 심리 저변의 불쾌한 감정 때문에라도 자신과 연산군을 운명공동체로 묶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감정이 존재했다면, 연산군의 위기를 내심 반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과 연산군을 분리해서 살아날 방도를 찾으려 하려 했을 것이다.

남편이 목숨을 끊으려 하자, 신씨는 황급히 뜯어말렸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할 것을 주문했다. 꼭 불리하지만은 않으니 차분하게 행동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군사들의 말 머리가 우리 집을 향해 있으면, 우리 부부는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말 꼬리가 우리 집을 향해 있고 말 머리가 반대편을 향해 있다면, 이는 공자님(진성대군)을 호위하겠다는 의도인 겁니다. 이걸 확인한 뒤에 죽으셔도 늦지 않습니다."

신씨는 기마병들의 말 머리가 대문을 향해 있으면 자기 부부와 연산군이 동일한 운명에 빠지고, 정반대 상황이면 연산군은 죽고 자기 남편은 왕이 될 거라고 냉정하게 예측했다. 혹시라도 말 머리가 대문과 반대 방향이면 반군이 자기 집을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부부가 살아날 가망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벌써부터 자결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그는 남편을 뜯어말렸다.

만약 연산군의 애정 공세 때문에 신씨의 심리 저변에 불편한 정서가 깔려 있었다면,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 부부와 연산군이 동일한 운명에 빠질 가능성을 그렇게 쉽게 상정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불편한 감정이 있었다면, 자신들과 연산군이 공동 운명에 빠질 가능성보다는, 자신들이 연산군과 한편이 아니라는 걸 반군 수뇌부에 적극 어필하는 쪽으로 더 많이 머리를 회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부부와 연산군을 둘러싼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한 뒤, 연산군과 공동운명에 빠질 가능성을 50%로 예측했다. 숨 막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했다는 것은, 연산군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될 수도 있다.  

불안에 떨던 진성대군은 신씨 말을 듣고 마음을 좀 놓았던 듯하다. 처음에는 죽을 가능성을 100%로 봤다가, 부인 말을 듣고 50%로 낮춰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바깥 상황을 다시 확인하도록 했다.

진성대군이 받은 보고는, 말 머리가 집 대문이 아닌 반대편을 향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쿠데타군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자기를 왕으로 추대할 계획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신씨가 정확한 상황 예측을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진성대군은 반군의 의중도 모른 채 세상을 하직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쿠데타군은 새로운 왕족을 찾느라 분주해졌을 것이다.

신씨 부부의 애정은 세상이 알 정도로 유명했다. 또 진성대군은 급박한 상황에서 연산군과 자신을 공동운명체로 파악했다. 신씨 역시 자기 부부와 연산군이 동일한 운명에 빠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상황을 냉정하게 예측했다.

이런 것들은 신씨 부부가 연산군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품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신씨와 연산군 사이에 묘한 일이 있었을 거라는 <7일의 왕비>의 상상력은 설득력이 좀 낮은 게 아닐까.

7일의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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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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