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상 수상한 오세혁 연극 대본을 쓰던 작가였던 그가 연출로 도전하고, 그것도 뮤지컬에 나섰던 것이 인정 받았다. 오세혁 연출이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연출상'을 받았다.

▲ 연출상 수상한 오세혁 연극 대본을 쓰던 작가였던 그가 연출로 도전하고, 그것도 뮤지컬에 나섰던 것이 인정 받았다. 오세혁 연출이 지난 1월 16일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연출상'을 받았다. ⓒ (사)한국뮤지컬협회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연출상 수상자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근'의 오세혁이!"

지난 1월 16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시상식. 연출상 수상자로 오세혁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었다. 순박하게 생긴 얼굴에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뿔테 안경을 쓰고 무대에 오른 그는, 눈을 끔뻑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동시에, 시상자의 실수로 '별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흰 당근 오세혁이'.

"한 관객분께서 말씀해주셔서 알았어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그 '나타샤' 덕분에 별명이 생겨서 전 좋아요. 상은…. 연극을 십몇년 하다가 뮤지컬 딱 1년 했는데 상을 뮤지컬로…. (웃음) 연극으로도 받아야 하는데…. (웃음) 감사드리고요! 덕분에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타협하지 않고 더 할 수 있다는 믿음? 이런 자리를 통해서 그런 얘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시상식 현장에서 봤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면도가 조금 덜 된 얼굴이 약간 피곤해보였지만, 뿔테 안경 뒤의 눈매는 서글서글했다. 기사에 쓸 사진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세상 어색하다는 그. 하지만 정작 인터뷰 때는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질문에도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토해냈다. 징검다리 연휴에 끼인 휴일, 낮 공연 모니터링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한 그는, 마친 후 바로 다른 작품을 보러가야 한다며 들떠 있었다.

시대에 관한 연극을 쓰다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뮤지컬 작가이자 연출 오세혁을 만났다. 그는 연극 <보도지침>의 대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2017년 재연에서 연출까지 도맡게 됐다.

▲ 그의 진짜 표정 휴일에 잡은 인터뷰. 사진 기자 없이 직접 취재 기자가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익숙치 않은 듯, 그는 굉장히 쑥스러워 했다. 쑥스러워 하는 연출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 기자도 쑥스러웠다. 100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대부분의 사진 표정이 'Ctrl+C, Ctrl+V'를 한 것마냥 비슷해 고르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의 진짜 표정은 이처럼 잠깐잠깐의 순간에 드러났다. ⓒ 곽우신


작품 활동을 한 지는 꽤 됐지만, 연출 그리고 작가 오세혁의 이름이 대학로에서 주목받게 된 건 근 몇 년이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연타석 홈런이 가장 주요했을 것이다. 이제 오세혁이라는 이름을 믿고 보는 팬이 생길 정도로, 그는 탄탄하게 대학로에서 신뢰관계를 만들고 있다.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와 정신심리학자 니콜라이 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라흐마니노프>, 시인 백석과 연인 자야의 아픔을 노래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덕분에 그를 서정적이고 섬세한 감수성의 창작자로 여기는 이들이 일부 있다. 하지만 오세혁이 원래 잘하던 건 따로 있다. 그는 극단 '걸판'의 창단 멤버로 12년째 활동하고 있는 마당극 전문가이며, <괴벨스 극장>처럼 정권의 검열에 맞서 사회비판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무대에 쏟아붓는 이이다. 대학로에서 상연 중인 연극 <보도지침>은 그런 오세혁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극이다. 작년에 작가로서 <보도지침>의 대본을 맡은 그는, 올해 연출까지 넘겨받으며 무대를 진두지휘했다.

"작년 여름에 변정주 연출한테 연락이 왔어요. '보도지침 사건을 가지고 공연을 준비 중인데, 대본을 써줄 사람을 생각해보니 오세혁이 제일 잘 쓸 것 같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변정주 연출님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는데…. (웃음) 전화만으로도 좋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 마침 술을 마시고 있었던 터이기도 해서 그 자리에서 '오케이'했죠.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서 찾아보니까 엄청난 사건이더라고요. 약간 두려웠어요. 작년에는 또 워낙 사회 분위기가 극심했고….

'쓸 수 있을까?'는 걱정에, 하루이틀만 더 생각해보겠다고 연출에게 말씀드리고 계속 그 사건을 조사했어요. 그런데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께서 당시 그 사건을 터뜨렸던 게 30대더라고요. 저랑 비슷한 나이. '이런 분이 내 나잇대에 이런 엄청난 행동을 했는데, 나는 이 엄청난 행동을 공연으로 만드는 것도 못한다는 건가? 내가 직접 행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공연으로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래서 쓰기 시작했죠. 부끄러워서."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뮤지컬 작가이자 연출 오세혁을 만났다. 그는 연극 <보도지침>의 대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2017년 재연에서 연출까지 도맡게 됐다.

▲ 연출 겸 작가 "초연 때도 변정주 연출이 워낙 잘 하셨어요. 제가 써서 그런 게 아니라…. (웃음) 저는 작년 버전도 정말 좋았거든요. 제가 올해 연출까지 맡았을 때 '작년 이상으로 잘할 수 있나? 기본은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제일 큰 걱정이었죠." ⓒ 곽우신


연극 <보도지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제5공화국 당시 '보도지침 폭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당시 문화공보부는 각 언론사에 외압을 행사하여 편집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했다. 이건 보도하라, 이건 보도하지 마라, 이 사진은 써라, 이 사진은 쓰지 마라…. 언론자유 암흑의 시기,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는 이 보도지침 사항들을 월간 <말>지를 통해 폭로했다. 연극 속에서 김주언 기자는 김주혁 기자가 되었고, 월간 <말>지는 월간 <독백>이 되었다.

"처음엔 보도지침 사건 자체를 이야기 중심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선생님들의 재판 변론, 최후 진술 등을 찾아보니 거의 강연 수준이더라고요. 보도지침 사건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현대사 전체의 흐름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전 일부러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재판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분명히 재판에 질 걸 알면서도 그 자리를 빌려서 얘기한 거죠.

감동이었어요. '이 분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강연이자, 독백이자, 연설이구나!' 그래서 이분들의 말을 공연에 잘 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현대사의 이야기들을 다 갖고 왔죠. 시대가 다 달라요. 1970년대 이야기도 있고, 1990년대 사건도 있어요. 배경은 1980년대이지만 오히려 어느 시대인지 모르게 뒤섞었어요. 실제로 몇 년도 사건이라는 말이 극에 안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관객들과 배우들과 여러 시대에 관한 이야기, 기록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극 <보도지침>은 한국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수시로 소환한다. 4.19, 5.18 등의 민주화운동 역사, 진보당 조봉암 사형, 전태일 열사의 분신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이외에도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극에서 튄다거나 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치밀하게 설계된 흐름이기에, 그 자체가 실제로 흘러온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 발발한 일이기에, 각 사건의 아귀는 촘촘하게 들어맞는다. 이 연극, 우리가 살아온 시대이자 살고 있는 시대 그 자체의 축소판이다.

연극에 대한, 연극에 대하여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뮤지컬 작가이자 연출 오세혁을 만났다. 그는 연극 <보도지침>의 대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2017년 재연에서 연출까지 도맡게 됐다.

▲ 오세혁의 독백 "법정에서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이 독백이라고 생각되어서 '독백에 관한 얘기를 해봐야겠다! 독백에 관한 얘기를 하려면 연극을 해야지!'하니까 연극부로 설정이 되더라고요. 제가 풍물패 출신인데, 왜 들어왔는지 물어보고, 징에 술 나눠먹고 이런 건 다 제가 겪었던 일들이고요. (웃음)" ⓒ 곽우신


<보도지침>은 같은 대사를 다른 맥락 속에서 자주 등장시키며 변주한다. 그래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대사가, 터져 나오는 순간에 따라 다른 맛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 중 특히 자주 읽히는 문장이 하나 있다.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

연극 <보도지침>은 또한 연극에 관한 연극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만난 변호사와 기자, 검사와 판사는 모두 한국대학교 연극부 출신이다. 같은 꿈을 꾸었던 동기 친구들은 서로 다른 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앉아 있다. 함께 했던 과거와 분리된 현재를 병치하며, 이 연극은 연극의 시대적 소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게 서울연극협회 슬로건이에요. 원래 좋은 말이죠. 좋은 말인데,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시니컬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어요. '연극한다고 세상이 바뀌어?'하고 말하는 분들 있는데…. 그래서 더 그 말을 잘 쓰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부림쳤으면 좋겠거든요. 연극 한 편 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죠. 그래도 극장 안에는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이 있잖아요. 그 관객들이 연극을 보고 나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거나, 자기 일터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 조금씩 모인 것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거든요. 너무 크게 기대하고 너무 크게 좌절한 것 아닌가 싶어요.

분명 무모한 말이죠. 맞아요. 우리는 연극한다고 세상이 쉽게 안 바뀐다는 걸 알아야 해요. 다만, 조금은 바뀌잖아요. 거기서 시작해야죠. 세상을 바꾸기 전에 연극을 바꿔야 하는 거고, 연극을 바꾸기 위해서는 연극의 주변 환경을 바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연극을 만드는 과정부터 민주적으로 바꿔야 하죠. 실제로 우리가 연극을 하면서 얼마나 민주적으로 작업을 하느냐, 개런티는 얼마나 투명하게 하느냐, 관객한테 우리는 얼마나 솔직한가와 같은 고민들…. 이런 걸 하지 않고서 그저 무대에서 멋있는 말만 한다…? 그러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죠."

연극 한 편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연극이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는 믿음은 굳건했다. 그래서 그는, 시대에 대한 연극을 쓰면서, 그 안에 연극에 대한 이야기도 써내려갔다. 작품에는 오세혁의 자문자답이나 다름 없는 대사들이 오고 간다. 왜 연극이 시대의 거울인지, 왜 연극은 위대한지, 빨갛다는 욕을 먹으면서도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연극 <보도지침>의 한 축은, 연극이라는 이 무대를 붙잡고 꿋꿋하게 이 길을 가고 있는 연극인 오세혁의 자부심 그리고 결의로 세워져 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블랙리스트가 됐나 보다. 처음 블랙리스트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을 때, 명단에 오세혁 연출의 이름은 없었다. 당사자도 본인의 이름이 없는 데 약간 실망했단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없다니"라고 했지만, 이후에 후속 보도 등을 통해 전체 아카이빙된 리스트를 보면, 오세혁 연출의 이름이 등장한다. 모르고 있던 오세혁 연출에게 인터뷰 현장에서 그 사실을 전해주니 "다행이네요"라면서 방긋 웃어 보였다.

 지난 4월 27일, 연극 <보도지침>의 프레스콜이 열린 대학로 TOM 2관 무대 위에 오세혁 연출이 마이크를 잡았다.

▲ 함께 만드는 작업 지난 4월 27일, 연극 <보도지침>의 프레스콜이 열린 대학로 TOM 2관 무대 위에서 오세혁 연출이 마이크를 잡았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뭘 하든 좋다고 하는 연출"이라는 배우의 평에 웃음지어 보이기도 했던 그. 정작 인터뷰 때 물어보니 20대 때는 대사가 1초만 빠르게 혹은 늦게 나와도 불같이 화를 냈단다. 하지만 연출이 왕처럼 굴어서는 좋은 작품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래서 그는 배우와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 곽우신


어느새 부패한 대통령은 시민의 손에 의해 내려갔고, 정권은 바뀌었다. 연극 <보도지침>도 톤이 작년과는 조금 다르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오세혁 연출은 작년이 "연극이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하는 엄중한 때"였다면, 올해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겠다는 희망과 기대"로 꿈틀 거리는 때라며 연극의 온도를 조금 낮췄다고 밝혔다. 2016년의 <보도지침>은 불의를 향해 뜨겁게 불타오르던 분노였다. 2017년의 <보도지침>은 우리 가슴 속에 어떤 지침을 품고,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지 고민한다. 따뜻한 상상이다. 연극 속 최후 변론 때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건, 그 따뜻함 때문이 아닐까.

"지금이 진짜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대통령 하나 내려왔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대를 유지해왔던 세력들이 있고, 저들하고 계속 싸워야 하는 문제이죠. 그러니 공연계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죠. 쉽지는 않아요. 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장 저항하는 방법은 연극을 열심히 하면서 관객을 많이 늘리는 것 같아요. 이윤택 선생님이나, 박근형 선생님이 가장 큰 2대 불온(웃음)이신데, 선생님들도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연극을 많이 올리셨어요. 그게 힘이에요. 연극으로서 반항하고 얘기하는 것! 공연을 많이 하는 것! 그래서 저도 요새 더 열심히 공연하려고 노력해요."

동반자인 관객과 함께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뮤지컬 작가이자 연출 오세혁을 만났다. 그는 연극 <보도지침>의 대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2017년 재연에서 연출까지 도맡게 됐다.

▲ 폭력 그리고 반항 "전체 큰 시스템에서 폭력이 작동하는 거나 작은 동아리에서 폭력이 작동하는 거나 똑같다고 봐요. 김주혁이 신문사에서 왜 기사 못 쓰게 하냐고 물어보는 것과 동아리에서 왜 억지로 술을 먹이냐고 반항하는 것도 같다고 생각하고요. 세상과 큰 권력의 폭력에 대해서는 독재라고 하지만, 이에 맞서는 작은 모임이나 집단 안에서 폭력이 작용하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 곽우신


인터뷰를 하면서 오세혁 연출은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다. "관객이 고맙다", "관객이 참 대단하다" 등….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 등의 커뮤니티나 트위터 같은 SNS에 종종 회자되는 오세혁 연출의 미담(?) 일화도 '관객'과 관련된 것이다. 한 관객이 지방 극단의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인터파크에서 유료로 예매했는데, 표를 찾을 때 작품의 연출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음료수도 권하고 공연 끝난 뒤 소개까지 해줬다는 이야기. 그 주인공이 바로 극단 걸판의 오세혁 연출이었다.

"아…. 그 얘기…. (웃음) 다른 관객분이 저에게 얘기해줘서, 그게 화제가 됐었다는 걸 알았어요. 아마 안산 연극제 기획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후배 단원이 '오늘 인터파크 관객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안산인데…?' 깜짝놀라서 그때 음료수도 갖다 드렸던 것 같아요. 끝나고 한 말씀 듣자고 모셨던 것 같고…. (웃음) 정말 고마워요. 쉽지 않거든요. 저도 온라인으로 예매한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관객분들은 정말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인정해줘야 하죠. 티켓을 구매해서 온다는 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행위예요. 관객과 창작자는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런 분들하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거고요.

관계자들이나 지인들이 공연을 보러 올 때는, 피드백이 사실 별로 없어요. '괜찮더라', '고생했네' 정도가 보통이거든요. 하지만 우리 관객들은 진짜 대단한 게, 굉장히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또 공부를 해요. <라흐마니노프> 때는 그 음악가의 교향곡에 대해 공부하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때는 백석 시인의 시 세계를 탐구하고, <보도지침>에 나오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찾아보고…. 그 피드백에서 제가 배우는 것도 있고요. 세상에 이런 관객들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공연에 대해서 관객들과 더 많이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이 작품도…. 이처럼 오랫동안 연극을 사랑해준 관객들이라면 이런 얘기를 해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어요. 또 이처럼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팬들과 신뢰를 쌓은 배우들이라면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얘기라고도 믿었고요. 지금도 생각하는 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최소한 관객을 속이지 말아야겠다. 괜히 있어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지'거든요. (웃음) 담백할수록 더 좋아하고 보지 않나요? 마치 흰밥처럼. 밥은 질리지가 않잖아! 담백하니, 그런 밥 같은 공연 계속 하려고요. 뭐, 저도 사람인지라 항상 잘 되지는 않겠지만…. (웃음)"

연극 <보도지침>은 오는 6월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계속된다. 어쩌면, 연출이자 작가, 연극인이자 뮤지컬 창작자 오세혁의 '아름다운 지침'은 관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공연이 즐겁고 좋아요. 공연의 파급력이 엄청 큰 건 아니지만, 그 힘은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잖아요. 저도 그래서 연극을 하는 것이고, 관객도 그래서 연극 무대를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보도지침>은 '나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극이에요. 자기 위치가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중간이든, 본인이 선택한 것이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본인 것은 본인이 정하는 거죠. 그런데 논쟁을 해야 할 일에 '너는 왜 거기에 있냐'고 따져물으면서 압력을 행사하면 폭력이죠. 연극 안에서도 그런 거 되게 많아요. 마당극을 하다가 대학로에서 연극 올렸을 때도 '너 왜 대학로에서 연극해?' '너는 왜 상업극을 해?'라는 말 들었고요. 뮤지컬하고 나서도 '너는 왜 뮤지컬을 해?'라는 말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왜라는 말, 되게 폭력일 때가 있어요.

궁금하더라고요. 왜 남의 일에 자꾸 왜냐고 물어보는지. 제가 생선 안 먹거든요? 제가 밥 먹다가 생선 안 먹으면 꼭 '너 왜 생선 안 먹냐'고 물어봐요. 난 그 사람이 콩을 먹든 안 먹든 물어본 적 없는데! (웃음) 다른 사람한테 왜냐고 묻지 말고, 자기가 거기 왜 있는지를 얘기해야죠. 자기 삶, 자기 일, 자기 길이 분명 다 있을 거잖아요. 각자의 아름다운 지침을 잘 품고 지키면서 가다가,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폭력을 행사하면 거기에 김주혁처럼 발끈하고 일어나는 용기…. 정의라는 게 확 대단한 게 아니라, 그 작은 발끈,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왜'냐는 물음에 나약해지지 않았으면…!"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연극·뮤지컬 작가이자 연출 오세혁을 만났다. 그는 연극 <보도지침>의 대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2017년 재연에서 연출까지 도맡게 됐다.

▲ 오세혁의, 배우의, 관객의 지침 오세혁은 배우를 그리고 관객을 믿었다. 극 중 최후 진술이 끝나고, 각 인물은 각자의 아름다운 지침을 말하고 흩어진다. 고문을 받은 뒤의 지침은 오세혁이 대본에 쓴 지침들이지만, 법정에서의 지침은 각 배우들이 고민해서 정해온 것이다. 극의 말미를 닫는 각자의 대사 한줄, 한마디가 더 가슴에 맺히는 이유이다. 오세혁의 가슴 속에도 그를 이끄는 아름다운 지침이 작동하고 있었다. ⓒ 곽우신



보도지침 오세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은솔아, 돌잔치 다시 할까?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