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1 <까칠남녀>의 김민지 PD와 이대경 PD

ⓒ 이정민


"E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 본다"는 반응은 아마 <까칠남녀>가 가장 많이 듣는 반응일 것이다. 기존의 다소 지루한 성교육의 틀을 깨고 패널들 간의 직설적인 대화로 매회 색다른 성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EBS <까칠남녀>. <까칠남녀>와 EBS라는 이 기발한 조합에는 여러 우연이 맞물렸다. "미디어가 많아지면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EBS)과 지난해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논쟁 중 하나는 성차별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의 맞물림은 결국 EBS가 가장 뜨거운 주제를 가장 의미 있는 시기에 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EBS 편성기획부에 따르면 EBS 개편 당시 기획안 공모에서 <까칠남녀>는 거의 이견 없이 통과가 돼 편성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창용 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까칠남녀>를 두고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나 이슈를 공영방송 EBS가 현황도 살피고 대안을 모색하면서 사람들에게 알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각자 의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활발하게 교류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알렸다.

<까칠남녀>를 제작하는 김민지 피디는 "<까칠남녀>가 EBS 이미지를 많이 바꿔준 것 같다"고 자평하면서 "EBS 토크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유쾌하게 성이나 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가장 뜨거운 이슈들 위에 우뚝 선 김민지·이대경 피디를 만났다.

"교육으로 우리는 변할 수 있다"

 EBS1 <까칠남녀>의 김민지 PD와 이대경 PD

ⓒ 이정민


- 남녀문제는 최근 가장 뜨거운 사회적 화두다. <까칠남녀>를 만들고 나서 목격한 주변의 변화가 있다면?
김민지 "출연자 분들이 특히 많이 변했다. (웃음) 봉만대 감독을 얼마 전 따로 만났는데 본인이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스스로 생각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있고 성장할 수 있어 재밌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중년의 40대 남성으로서 자기가 몰랐던 부분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아가는 것 같다고. 사실 남녀 간의 갈등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편견과 오해를 가지는 부분에서 생기는 측면도 있지 않나."

- 그렇다면 제대로 교육을 하면 생각이 변화한다고 믿고 있나? 
김민지 "다 큰 성인의 가치관을 완전하게 바꾸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젠더 교육이 어린아이 때부터 시작된다면 미래 세대들은 지금보다 갈등이나 혐오 정서가 덜한 상황에서 커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나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성이나 젠더 교육이 필수 교과도 아니고 굉장히 등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교과자료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이대경 "우연히 SNS에서 본 어떤 여성 분께서 자위가 문란하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자위에 대해 다룬 <까칠남녀> 방송분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을 때 뿌듯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받아들여주신 것에 감사했다.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나 '말해지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자위도 마찬가지고 <까칠남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런 지점이 있겠지. 남녀 문제는 다들 술자리나 수면 아래서 말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지 않나. 물론 명쾌한 논리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지만 평소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해 접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민지 "그리고 4050대 여성분들 중에 쿠퍼액(남성 요도에서 사정하기 전에 나오는 액체)에 대해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아마 그분들이 어렸을 때는 성교육이 지금보다 더 제대로 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체외 사정으로도 임신이 될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한국 콘돔사용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낮지 않나. 미개하고 야만적인 나라라 그런 게 아니라 교육이 안 돼 있기에 막연하게 임신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섹스를 하는 거다. 또 '김치녀'나 '맘충'도 나이가 많은 시청자들은 단어 자체를 낯설어하는 반면 젊은 세대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나. 이를 좁혀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 남녀의 문제는 '당사자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김민지 "그렇게 나눠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까칠남녀>에서 다룬 소재들은 당사자가 아닌 누구라도 겪을 수 있지 않나. <까칠남녀>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젠더 문제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다. 나의 일이 될 수 있고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같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안을 당사자 문제로 치환해버리면 우리 사회는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여성학자 손희정 선생님도 2회 '피임전쟁' 편에서 당사자에게만 해결하라고 할 게 아니라 모두가 나서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을 때 그 사람이 용기를 내고 두려움 없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 공감 능력 자체를 키워주는 게 프로그램의 중요한 역할이라 본다.

이대경 "교육은 꼭 '이게 맞아' '이건 아니야'라는 식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만이 아니다. 다양한 논쟁과 시각이 있고 그 문제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것도 경험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소통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뀔 필요는 없다.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더라도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는 것 정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실 좀 슬프다. 너무 그렇게 당사자성으로 닫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분들에게 <까칠남녀>로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 그렇다면 주변이 아닌 피디들 개인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낀 생각의 변화는 있나?
김민지 "사실 좀 냉소적으로 변했다. (웃음) 거창하게 시작하진 않았지만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기대가 있지 않나. 방송이 나가면 다들 재밌게 봐줄 거고 공감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젠더 이슈가 왜 '뜨거운 감자'인지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악성 댓글로 시청자 게시판이 도배되는 걸 보면서 하루 아침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이건 정말 길게 봐야겠구나' '단번에 뭔가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까칠남녀>가 자리를 잡고 익숙해지려면 시청자들에게 시간이 많이 걸리겠구나. 그리고 피디들이 시청자 반응을 다 확인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댓글도 다 챙겨본다."

이대경 "내부에서 시청자 반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 패널들도 피디들만큼 많은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대경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몸을 사리거나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하니까. 지금은 패널들이랑 서로 응원을 하면서 방송을 해나가고 있다. (웃음) 그런데 섭외 과정에서 다들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다. 봉만대 감독님은 전화한지 30분도 안 돼 바로 하겠다고 하셨다."

김민지 "전화를 받고 이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토크가 좀 파격적이지 않나. 패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검열도 거의 안 하고. 방송계 쪽에서 이런 패널은 많지 않다. 다들 잃을 것 없는 사람들처럼 몸 사리지 않고 토크를 하니까."

- 패널들 간에 합이 잘 맞는 것 같다.
김민지 "그래서 신기하다. 그건 박미선 MC의 힘이 큰 것 같다. 워낙 안정적으로 토크를 이끌어가다 보니까. 다들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 어떤 시청자들이 <까칠남녀>를 봐주었으면 하나?
이대경 "처음부터 생각했던 건 아닌데 재밌었던 피드백이 있다. 엄마와 아빠, 딸이 <까칠남녀>를 같이 본다는 거다. 그런 경우가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여기서 다루는 소재로 아버지랑 딸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들. 이런 피드백은 뿌듯하기도 하고 이 구도로 프로그램을 보면 보다 재밌을 것 같다."

김민지 "기억에 남는 반응 중 하나가 있는데... (웃음) '<까칠남녀> 한다! 아빠 깨워서 같이 보고 끝나고 싸워야지'란 반응. 그 딸도 자기와 다른 세대랑 프로그램을 보고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 프로그램은 남녀의 갈등도 있지만 그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맘충'도 거리에서 나이 많은 분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젊은 엄마들 다 그렇지 뭐 우리 때는 손으로 얼음물에 빨래하고 냉장고 없던 시절에도 살았어. 배가 불렀어' 하신다. 그렇기에 '맘충'은 같은 여자 세대 안에서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다. 나 역시도 가족끼리 같이 봤으면 좋겠다. 자위도 피임도 낯 뜨겁지만 TV 켜놓고 다 같이 볼 수 있었으면. 교육방송이니까."

"정치도 진보·보수가 아닌 젠더 감수성으로 나뉠 것"

 EBS1 <까칠남녀>의 김민지 PD와 이대경 PD

ⓒ 이정민


- 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젠더 정책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을 법한데 어떤가?
김민지 "우리는 보통 정치적 진영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지 않나. 하지만 소위 진보로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 중에도 젠더 감수성이 없다시피 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정치도 소위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젠더 감수성이 있는지 없는지로 나뉠 것 같다. 군형법에 관한 논란도 진보 진영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지 않나. 동성애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군대를 다녀왔거나 군대에 가지 않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든지 이런 문제가 특히 젠더 이슈에서 많은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젠더 정책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까칠남녀>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젠더 정책을 몇 가지 제안해본다면?
이대경 "얼마 전 녹화를 하면서 '생리휴가제'에 대한 논쟁이 격하게 붙었다. 아직 미방송 분량이라 방송에 나가봐야 알겠지만 전체적인 결론은 이를 남녀로 편가르기 할 게 아니라 국민 전체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쪽으로 났다. 애초에 휴가나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지면 남녀가 생리휴가제로 성대결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김민지 "일단 강간범 형량이 현실화돼야 한다. 몇 년 후면 조두순이 출소하는데 솔직히 많이 무섭다. 신안 교사 성폭행 사건도 마찬가지고. 한국에서 강간이나 성폭행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처벌이 솜방망이식이라 그렇다. 성범죄율을 떨어트리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간도 무고죄로 풀려난 경우가 되게 많지 않나. 피해자 여성에게 짧은 치마를 입었는지를 물어보면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준다든지 하는 문제도 아직 남아있다.

'성격차지수' 116위가 아닌 23위라고요?
"이 인터뷰를 빌려 해명하고 싶은 이슈가 있나"는 질문에 김민지 피디는 "오해를 풀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건 '성격차 지수'였다.

"WEF(세계경제포럼)에서는 한국 성격차지수가 116위로 나오고 UNDP(유엔개발계획)에서는 23위로 나온다. 방송에서는 WEF 자료를 언급했다고 항의를 받았다. 사실 WEF에서도 성격차지수가 일정 부분 한계가 있는 통계라 말했고 국내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116위라는 자료가 공식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자료나 수치를 임의로 변경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

 EBS1 <까칠남녀>의 김민지 PD와 이대경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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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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