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일 충남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전 한국 대 포르투갈 경기. 1-3으로 패한 한국 신태용 감독이 이승우를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허망한 패배가 있었던가.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그 흔한 위로의 문구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한 패배였다. 내심 우승까지 바라봤던 U-20 대표팀의 도전은 16강에서 끝났다.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던 만큼 사령탑 신태용과 '에이스' 이승우도 은연 중에 우승을 향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실패했다. 포르투갈이란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지난 30일 오후 8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16강전 대한민국 대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한국이 1대3의 완패를 당했다. 충격적인 패배였다.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국민들을 열광시켰던 한국 대표팀은 시종일관 포르투갈의 공격에 휘둘렸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수비 장면이 이어지면서 3골을 내리 내줬다. 세 번째 실점을 허용한 후반 중반부터는 사실상 패배가 확정됐을 정도로 포르투갈에게 강하게 밀렸던 한국이었다.
신태용 감독의 실수조별예선에서 1승 1무 1패로 가까스로 16강에 진출한 포르투갈 정도는 한국이 어렵지 않게 넘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포르투갈은 한국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집요하게 약점을 공략해 너무나도 쉽게 한국을 침몰시켰다. 감독의 전술부터 선수들의 개인 전술과 집중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포르투갈이 한국에 한 발짝 앞서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술가'인 신태용 감독은 패배는 곧 탈락인 16강전에서도 과감한 전술을 들고 나왔다. 조별예선을 통해 위력을 떨친 스리톱 대신 하승운-조영욱으로 이뤄진 투톱 카드를 꺼냈다. 중원 지역도 세 명이 아닌 두 명의 선수를 배치했다. 4-4-2 전술로 나선 신태용 감독의 선발 라인업은 매우 공격적인 라인업이었다.
결과적으로 4-4-2 전술은 대실패였다. 먼저 측면이 너무 빈약했다. 양 쪽 측면 미드필더로 나선 이승우와 백승호는 수비적으로 전혀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수비 지역으로 깊게 내려와 풀백들을 도와주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전방 압박의 강도 또한 약했다.
이승우와 백승호를 비판할 수는 없다. 두 선수는 기본적으로 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선수들이다. 공격수로 나서서 수비를 '지원'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측면 미드필더로서 수비적인 '역할'을 맡기기엔 수비력이 부족하다.
두 선수의 수비력을 감안하면 양 쪽 측면 수비수들은 수비적으로 경기를 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풀백들은 이전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과감하게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측면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뻥' 뚫린 측면 수비에서 결국 문제가 발생했고 모든 실점 장면에서 빌미를 제공했다.
중원에 배치된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의 라인도 아쉬웠다. 4-1-4-1 포메이션으로 나선 포르투갈은 기본적으로 중원에서 3(포르투갈)vs2(한국) 장면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중원에서의 숫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선 강한 압박이 필요했지만 선수들의 발은 무거웠다.
강한 압박이 없다면 중원에 배치된 선수들은 공격적인 측면 미드필더들의 특성을 감안해 수비적으로 경기에 임해야 했지만 라인은 너무 높았다. 포르투갈의 크로스가 골대 앞이 아닌 패널티 박스 라인 근처에서 문제를 발생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측면은 너무 허술했고 측면에서 나오는 크로스를 방어하기엔 중앙 미드필더들의 수비 복귀가 너무 늦었다. 선수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 선수에게 명확한 전술 지시와 경기 중에 선수들을 일깨워야 할 감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태용에겐 칭찬이 필요하다이날 경기에선 상대 감독에게 완패했지만 신태용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신태용 감독은 세계 무대에서 공격적인 전술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여전히 '축구 약소국'인 한국의 세계 대회에서의 그동안 컨셉은 선수비-후역습이지만 신태용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나 내려 앉은 채 주도권을 상대에게 줄 수 없다는 신념 아래 공격적인 축구로 거함 아르헨티나를 궤멸시켰다.
통통 튀는 이승우를 대표팀에 녹아 들도록 만든 것도 신태용의 능력이었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한국 정서상 개성이 강한 이승우는 논란의 중심이었다. 월등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언론은 그의 행동과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는 명분 아래 이승우가 희생될 가능성도 있었지만(실제로 신태용 이전의 감독들은 이승우를 희생 시켰다), 신태용 감독은 이승우에게 희생 대신 책임감을 부여했다. 대범한 이승우에게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은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책임감으로 중무장한 이승우는 대회 내내 에이스이자 '리더' 역할을 다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신태용 감독의 희생 또한 칭찬 받아야 한다. 신태용 감독은 대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대타'로서 사령탑에 앉았다. 절대적인 시간 부족과 함께 16강은 기본이고 4강 이상의 성과를 내야하는 부담도 있었지만 신태용 감독은 흔쾌히 감독직을 수락했다.
신태용 감독에게만 세 번째로 빚을 진 축구협회다. 성인대표팀의 수장이 공석일 때는 감독 대행으로서, 올림픽 대표팀의 감독 자리에 문제가 생기면 올림픽 감독으로서 헌신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비난이 쏟아지는 대표팀 수장 자리를 준비 기간이 부족했음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포르투갈전 패배에서의 신태용 감독의 실책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신태용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의 신성들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그 밑바탕에는 그의 전술적인 능력과 희생이 있었다. 신태용 감독을 향한 격려와 칭찬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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