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다이애나(갤 가돗 분)는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섬 데미스키라 왕국의 공주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돌아올 날을 대비해 자신을 단련하던 그는 어느 날 난생처음 남자와 맞닥뜨린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정보부 스파이로 일하던 트레버(크리스 파인 분)가 독일군에 쫓기던 중 아마존 섬에 불시착한 것. 트레버로부터 전 세계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들은 다이애나는 인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싸우기로 하고,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트레버를 따라 영국을 향한다. 두 사람은 독일군 루덴도로프 장군이 개발 중인 치명적 독가스의 살포를 막고자 폭파 계획을 세우고, 휴전 협정을 앞두고 소극적인 연합군을 대신해 동료들을 모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벨기에로 향한다.

영화 <원더 우먼>의 시작은 흔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거나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도 아니고, 커다란 불의를 맞닥뜨리거나 대단한 상처를 입은 적도 없다. 지상 낙원인 아마존 섬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오며 책을 읽고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순수한 태도로 선(善)을 갈망하고 전쟁으로 대변되는 악을 배척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그래서 마치 아이 같다. 다이애나는 경험과 직관에 따른 판단의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당연하고도 분명한 진리로서 정의를 추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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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다이애나가 트레버를 통해 비로소 맞닥뜨리는 인간 세계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강렬하게 조명한다. 전쟁의 신 아레스만 죽이면 세상에 전쟁은 사라질 거란 그의 신념은 '혼자 힘으로' 또는 '누구 하나 죽인다고'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여기에 '아레스'를 향했던 확고한 분노의 화살은 인간 본성에 자리한 폭력성을 발견하면서 갈피를 잃고 혼란에 빠진다. 그렇게 영화는 반신반인으로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대하는 다이애나의 실망과 그 와중에 '인간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고뇌하는 그의 속내를 포착한다. 이는 그 자체로 '다이애나'가 '원더우먼'이 되기까지 일종의 성장통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보이는 몇몇 장면들은 다이애나의 정체성과 맞물려 인상적으로 남는다. 다이애나가 말한 '싸움'이란 단어를 두고 "투표권 획득을 위한 투쟁"으로 해석하는 트레버의 비서 에타(루시 데이비스 분), 여성인 다이애나가 회의장에 들어서자 기겁하는 영국 각료들의 모습 등은 페미니즘이 막 태동하던 당대 사회상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여기에 미국 원주민 인디언 출신 치프(유진 브레이브 록 분), 뒷골목 인생으로 전락한 퇴역군인 사미어(세이드 타그마오우이 분)와 찰리(이완 브렘너 분) 등 조력자들의 면면 또한 개척과 승리라는 미명 하에 내팽개쳐지는 약자의 상처를 아릿하게 들춘다. 독일군 루덴도로프 장군과 이자벨 마루 박사의 대량파괴 무기 사용을 막고자 일선에 선 이들의 사투는 꽤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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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아마존 섬 데미스키라 왕국의 비주얼은 압도적이다. 엄마와 이모의 보살핌 속에 소녀에서 전사로 성장하는 다이애나의 서사는 영화 초반부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오롯이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그 세계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여기에 아마존 전사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시퀀스, 인간 침략자들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 등은 웬만한 남성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무게감이 상당하다. 다부진 어깨와 탄탄한 근육질의 팔다리, 탄력 넘치고 유연한 그들의 몸놀림은 차라리 곡예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실제 복싱과 피트니스, 크로스핏 등 각종 무대에서 활약 중인 프로 스포츠 선수들을 기용한 영화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라고 할 만하다.

덧붙이는 글 패티 젠킨스 감독 / 러닝타임 141분 / 12세 이상 관람가 / 5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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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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