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신 대로 날 죽게 하소서. 당신 주신 이 독잔이 핏물 되어 날 적시고. 찢고 쳐서 죽이소서. 지금 내 맘 변하기 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메인 넘버인 '겟세마네' 노래 가사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고통스러운 심정을 하나님께 땀이 피가 되도록 토로했다. 제자들은 잠들어있었고,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의 입맞춤으로 예수는 로마군에게 체포된다.

충남 당진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작년 9월 런던에서 열린 한 오디션에 참가했다. 거기서 그는 '겟세마네'를 불렀다. 심사위원들은 '15초'만에 그의 노래를 끊었다. 6개월 뒤, 그에게 한 통의 영문 메일이 왔다.

"영국의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하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투이' 역으로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 청년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배우의 길에 들어선 박영주(33)씨다. 그는 왜 '경영학도'의 길을 접고 무명배우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지난 1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노래를 좋아했던 시골아이

 "제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관객들과 오래 소통하고 싶어요."

"제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관객들과 오래 소통하고 싶어요." ⓒ 강영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그는 배우답게 다양한 손짓을 섞어가며 해맑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집 주변이 전부 논하고 밭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시내가 나오는 그런 동네였거든요. 그때는 피시방이나 오락실이 없어서 친구들하고 주로 공차기, 술래잡기하면서 놀았죠."

그는 어릴 때부터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만화 속 캐릭터들의 영어 가사를 전부 외워서 따라 부를 정도였다.

"가사 뜻은 잘 몰랐지만, 어린 나이에 그런 멜로디가 참 아름답게 들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어 발음을 들리는 대로 한국어로 옮겨 적어서 무작정 외웠어요. 그걸 또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부모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정말 많이 불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고등학생이 되자 더는 좋아했던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입시 분위기에 휩쓸려 노래 대신 영어를 듣고, 가사 대신 교과서를 외워야 했다.

"고등학교를 충남 공주에 있는 한 기숙 고등학교로 들어갔어요. 학교 운영이 거의 군대식이었는데, 학생들 전부 새벽 6시에 기상해서 자정까지 계속 공부만 했어요. 그때 저도 알아서 분위기 파악을 한 거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미친 듯이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라고요."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를 아직도 '독종'으로 기억한다. 점심 후 모두가 초토화되는 국사 시간에도 혼자 맨 앞줄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자기 전에는 항상 영어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합덕읍에서 작은 농약 가게를 운영하세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버지께서 동네 사람들에게 '박 사장, 아들이 이번에 서울대 갔다며? 축하해'라는 말을 들으시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매일 상상했어요. 그 모습을 이루어 드리고 싶어서 3년 동안 독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집요하게 노력한 끝에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도 기뻐하셨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그의 대학 생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대학 가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어요.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서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시험 잘 보기 위해서 문제 외우고 답 외우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어요. 고등학교 때와 별다를 게 없더라고요. 거기다 서울에서 공부한 친구들과 실력이나 배경에서 차이도 났고요.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인생을 바꾼 메시지

 군 복무를 하면서 그는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

군 복무를 하면서 그는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 ⓒ 박영주


그는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군대에 들어갔다. 거기서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다. 말년 병장 때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다양한 삶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그는 한 강연장에서 인생을 뒤바꿀 질문과 마주한다.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씨의 강연이었어요. 그때 한비야씨가 '지금까지 어려운 구호활동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일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비야씨가 '여러분은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묻더라고요. 그 말이 저에게 불화살처럼 꽂혔어요. 어릴 때 모습을 뒤돌아보니 제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성당에서 성극을 하면서 즐거워했던 장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혹시 이건가 싶었죠."

그 후 그는 서울대 경영대학 연극동아리 '경영극회'에 들어가 07학번 후배들과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그가 처음 맡은 작품은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소외 문제를 다룬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였다.

"지금 다시 보면 제대로 된 연기라고 할 수 없어요. (웃음) 연기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무대에 올랐거든요. 그런데 무대에 설 때마다 아! 내가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할까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노래했던 것처럼 그는 런던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배우의 길을 가기로 선택한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우연히 런던에 가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게 됐어요. 이란 출신 배우 라만 카림루가 유령 연기를 했는데 거기에 완전 매료 돼버렸어요. 앞으로 연기를 안 하면 정말 못 견딜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죠. 앞으로 나 배우 할 거라고요."

차가운 시선들

 서울대경영극회 <배꼽춤을추는 허수아비>에서 조만득 역을 소화한 박영주.

서울대경영극회 <배꼽춤을추는 허수아비>에서 조만득 역을 소화한 박영주. ⓒ 박영주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쓴소리까지 하면서 말렸다. 부모님 입가엔 주름과 한숨이 늘어났다. 

"친구들이 너희 부모님 농약 먹고 돌아가신다고 정신 차리라고 하더라고요. 부모님께서도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반대하셨고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이제야 가슴 뛰는 일을 찾았는데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설득 끝에 부모님께서 그럼 너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2년의 시간을 주셨어요.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하시면서요."

그 후 그는 매일 고시원과 연습실을 오가며 연습생 생활을 했다. 낮에는 연습실에서 노래와 연기 연습을 하고 밤엔 고시원에서 음성학 책을 보며 발성법을 연구하며 유튜브에서 유명 배우들의 노래를 분석했다. 이동하는 시간도 아까워 길 걸으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정말 입시 공부하듯 뮤지컬 공부를 했어요. 아침에 노래 생각을 하면서 눈을 뜨고, 노래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어요. 입시 공부할 때는 화장실에서도 영어단어를 외웠는데, 그때는 화장실에서 음성학책을 봤죠. (웃음)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공부의 재미를 뒤늦게 발견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주변 시선은 그를 온전히 봐주지 않았다. 편견과 텃세가 그를 힘들게 했다. 때론 서울대 경영학과라는 타이틀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아직도 첫 오디션을 잊지 못해요. 제가 노래는 어느 정도 연습을 해서 자신이 있었지만, 춤은 잘 못 췄거든요. 덜덜 떨면서 춤을 추는데 앞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재 그냥 가서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배우 말고 기획팀에 들어올 생각 없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상처가 됐죠. 그런데 제가 그때 뮤지컬에 정말 미쳐있어서 그런 비아냥거림도 나보고 더 열심히 하라는 소리로 들리더라고요."

또 한 번의 도전

 대학로 무대에서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박민석 역을 소화 중인 박영주.

대학로 무대에서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박민석 역을 소화 중인 박영주. ⓒ 박영주


숱한 인고의 나날을 거치면서 그는 점점 배우의 얼굴로 변해갔다. 2009년 1월. 드디어 그는 그토록 바라던 연극 무대에 서게 된다. 그 후 7년 동안 '무명 배우'로 여러 무대에 서면서 자신만의 연기 색깔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2016년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 왔다.  

"작년에 런던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 투이 역 오디션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또다시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조건이 유럽에 사는 사람 중에서 비자가 있는 아시아인이었는데, 그냥 앞뒤 생각 안 하고 일단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그는 1차 오디션 곡으로 <오페라의 유령> 중 '밤의 음악'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겟세마네'를 선곡했다. 하지만 오디션 당일 그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겟세마네'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그의 노래를 끊었다.

"그때 힘이 쫙 빠지면서 이렇게 탈락이구나 싶었죠.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저보고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재빨리 할 줄 안다고 했죠. (웃음) 저보고 노래를 너무 잘해서 중간에 끊었다며, 2차 오디션을 준비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기분은 정말 어떻게 표현 못 하겠어요. 너무 좋아서 한동안 밤에 잠을 못 잤던 거 같아요."

2차 오디션은 심사위원이 정해주는 춤과 노래 세 곡이었다. 하지만 그는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도 포함해서 <미스 사이공>에 나오는 한 장면 전체를 다 준비해 갔다.

"'오버'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냥 그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기까지 준비해서 오디션장에 갔죠. 제가 준비해간 장면 중간에 제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 있는데, 심사위원이 보내준 악보에는 죽는 장면이 나오기 한참 전에 노래가 끝이 나요. 다행히 심사위원들이 제 연기를 보더니 안 끊고 계속 보더라고요. 문제는 거기서 누가 총을 탕하고 쏴줘야 제가 죽는 연기를 하는데, 저에게 총을 쏴줄 사람이 없는 거 에요. (웃음) 그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탕' 하고 저에게 총을 쐈어요. 정말 기적이죠. 그래서 저는 죽는 연기까지 다 보여줄 수 있었어요."

관객들과 오래 소통하고 싶어

 뮤지컬 미스 사이공 UK 투어 연습 첫날. 그가 받은 대본 사진.

뮤지컬 미스 사이공 UK 투어 연습 첫날. 그가 받은 대본 사진. ⓒ 박영주


준비한 연기가 끝나고 그의 윗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의 연기를 본 심사위원들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도 스스로 만족했다. 합격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발표가 너무 안 나는 거예요. 석 달이 지났는데도 발표가 안 나서 캐스팅이 안 된 줄 알았어요. 매우 아쉬웠는데, 그래도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속은 후련했어요."

그는 모든 미련을 버렸다. 평소처럼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을 했다. 올해 3월. 그는 영국에서 한 통의 영문 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영국의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하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투이' 역으로 함께해 주실 수 있나요?"

그는 여전히 자신을 무명배우라고 소개한다.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오래도록 무대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게 그의 꿈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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