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공연장에서 열린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집들이 파티 공연 사진. 래퍼 화나, 다이노티, 허클베리피 등이 참여했으며 오픈 마이크 행사 역시 가졌다.

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공연장에서 열린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집들이 파티 공연 사진. 래퍼 화나, 다이노티, 허클베리피 등이 참여했으며 오픈 마이크 행사가 이어졌다. ⓒ UGLY The Ugly Junction


지난 26일 금요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UGLY'는 'Underground Lives in You'의 약자로, 창작자와 향유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지향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 모두의 행사 시작은 오후 7시였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전부터 공연장 밖은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손에 두루마리 휴지부터 케이크, 마포구 종량제 쓰레기봉투까지 집들이 선물로 보이는 무언가를 한 아름씩 들고 있었다.

단순히 공연 전 설렘으로만 보기에는 그 표정들이 조금씩 더 빛나 보였다. 과한 해석일까. 하지만 그 눈빛들에서는 이 문화와 공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오후 7시, 드디어 입장이 시작됐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팬들이라면 '어글리 정션'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날 행사는 그 '어글리 정션'이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화려한 오픈을 축하하는 '집들이 파티'를 위해 150명 가량의 팬들이 모였다.

<쇼미더머니>의 빛과 그림자

 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공연장에서 열린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집들이 파티 공연 사진. 래퍼 화나, 다이노티, 허클베리피 등이 참여했으며 오픈 마이크 행사 역시 가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래퍼 화나는 마이크를 쥐었다. 약간의 취기가 오른 채, 그는 이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진정성 있게 무대를 소화했다. ⓒ Heigraphy/@heidiijin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의 전신인 '어글리 정션'은 래퍼 화나(Fana)가 만든 복합문화브랜드이자 그가 운영해온 공연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2015년에 문을 연 공연장 어글리 정션은 래퍼들이 자기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길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로 시작된 대안적인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쇼미더머니>는 분명 힙합의 대중화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을 사장한 주역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힙합 무대들은 <쇼미더머니> 출연으로 유명해진 래퍼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어서 CJ E&M 음악사업부는 하이라이트 레코즈와 AOMG라는 두 거대 레이블을 인수(혹은 전략적 제휴)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은 CJ E&M을 비롯한 문화 자본에 점차 종속되어가며 그 힘을 잃어갔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파이의 크기는 커졌지만 정작 아티스트들에게 떨어지는 파이의 몫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셈이다.

2015년 시작된 어글리 정션은 그렇게 설 자리를 잃은 신인 래퍼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무대들을 제공해왔다. 지난 3년간 던말릭, 자메즈, 넉살 등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당시에는 아마추어였던 많은 래퍼가 이 무대를 발판삼아 자신의 이름을 알려갔다. 그러나 2017년 5월, 재정상의 위기로 어글리 정션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참조: 페이스북 페이지 UGLY by the Ugly Junction의 카드뉴스)


이 소식을 들은 한 팬은 어글리 정션을 살릴 방법을 고민한다. 그녀가 생각해낸 방법은 공간쉐어링, 즉 여러 명의 사용자가 함께 공간을 사용하는 협업모델이었다. 한 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운영하면 공간 운영비용을 분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힙합 콘텐츠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힙합 음악 콘텐츠 기획사 'Move The Crowd', 크루 'A. Tino', 크루 'BlackMusic x B&M', 그리고 이들을 맨 처음에 하나로 묶은 닥터 자비에, '천재미소녀'가 모여 어글리 정션은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26일 집들이 파티는 자칫 무너질 뻔했던 언더 힙합 신의 대안 공간을 지켜냈음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동시에 뮤지션과 리스너들이 함께 이 공간을 오래도록 간직하자는 결의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의 축제, 진짜 '파티'가 열리다

 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공연장에서 열린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집들이 파티 공연 사진. 래퍼 화나, 다이노티, 허클베리피 등이 참여했으며 오픈 마이크 행사 역시 가졌다.

무대 시작 전, 래퍼 다이노티는 관객에게 공언했다. 무대가 끝난 후,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그가 일산 출신 래퍼임을 모르는 관객은 최소한 이날 집들이에 함께한 이들 중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 Heigraphy/@heidiijin


오후 7시부터 8시 30분까지는 '밍글링' 타임(mingle+ing, 파티 중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 타임)이었다. 가져온 집들이 선물들을 교환하고, 오랜만에 만난 아티스트와 팬들은 서로의 작업물에 대한 이야기, 최근 힙합 행사들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아티스트들과 팬의 구별이 모호하고, 팬들도 이 문화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주체라는 자긍심이 공유되어 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8시 반부터 래퍼 다이노티(Dino.T), 화나(Fana), 허클베리피(Huckleberry P)의 순서로 꾸며진 스페셜 공연이 시작되었다. 다이노티는 'Survibe', '너와나 둘', 'I Own It' 등의 곡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무대의 흥을 한껏 올려주었다. 무대 시작 전, 그는 화나와 허클베리피에 비해 인지도는 다소 부족할지라도, 실력만큼은 동급임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다. 확실히 그 말에 부합하는 무대였다. 이날 온 관객들에게 '래퍼 다이노티'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어글리 정션의 전 주인, 화나가 무대에 올랐다. 저혈당 쇼크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만 잡으면 '고블린'으로 변하는 모습. 그가 한국 힙합 신에서 오랫동안 '리스펙(Respect)'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었다. 안 좋은 컨디션을 무마하기 위해 보드카를 조금 마시고 올라왔다는 그는 다소 취한 채로 공연을 시작했다. 덕분에 오히려 더 솔직하고, 화나 특유의 매력이 살아있는 무대가 펼쳐졌다. 어느 곡을 할지 정하지 않은 채 무대에 올랐기에 무대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그리고 자기가 끌리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곡을 정해 무대를 진행했다.

그는 이날 총 다섯 곡을 불렀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의 정체성을 지켜갈 힘을 원한다는 'POWER', 누가 뭐라건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하자는 메시지의 'Que Sera Sera'와 'Do Ya Thang', 외로운 여정을 걸어가지만, 빈자리 곁을 나란히 걸어주는 듬직한 길벗에 대한 곡 '길잡이별' 그리고 세트리스트에 없었던 가면무도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무대에 올랐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무엇보다도 오늘 자리의 취지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들로 무대가 꾸며진 셈이었다.

 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공연장에서 열린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집들이 파티 공연 사진. 래퍼 화나, 다이노티, 허클베리피 등이 참여했으며 오픈 마이크 행사 역시 가졌다.

래퍼 허클베리피가 본 무대의 마지막 MC로 올라왔다. 그는 총 네 곡을 부르며 관객을 열광케 했다. ⓒ Heigraphy/@heidiijin


마지막으로 허클베리피가 무대에 올랐다. 분신이라는 그의 단독 공연브랜드 이름이 보여주듯 안 그래도 더웠던 공연장의 열기를 더 뜨겁게 달구었다. '에베레스트', '작두', 'Rap Badr Hari', '아름다워' 총 4곡으로 한결같은 '떼창'을 끌어낸 뒤 내려갔다.

무대는 '함께' 만드는 곳

 26일,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공연장에서 열린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UGLY by The Ugly Junction)' 집들이 파티 공연 사진. 래퍼 화나, 다이노티, 허클베리피 등이 참여했으며 오픈 마이크 행사 역시 가졌다.

본 공연이 끝난 뒤 오픈 마이크 시간. 래퍼 한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 Heigraphy/@heidiijin


이로써 무대가 마무리될 줄 알았건만, 다이노티와 화나가 랩을 더 하고 싶다며 다시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다시 잡은 화나는 어글리 정션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이곳에 대한 자신의 애정, 그리고 이곳을 다시 이어나가겠다고 나서준 기획팀들에 감사를 표했다.

"더 많은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낼 무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무대 올라오고 싶은 분들, 진짜로 올라오세요."

화나의 이 말 한마디에 관객으로 그 자리를 찾은 아마추어 래퍼들의 즉석 무대, 오픈 마이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9시 30분에 끝났어야 할 공연은 오후 11시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비록 파티에서 가장 환호성을 많이 받은 이들은 무대 위 래퍼들이었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앞으로 '어글리 바이 더 어글리 정션'을 꾸려나갈 새 주인, 네 개의 기획팀들이었다. 화나가 'POWER'에서 뱉었듯, 올바른 길을 선택해온 당신들을 응원하며 당신들이 치러내고 있을 고난의 가치를 지탱할 힘이 되어주고 싶다. <쇼미더머니>가 힙합 신의 유일한 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된 이 무대의 앞날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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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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