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홍보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나라는 지난 9년간의 보수 정권 하에서 물거품이 될 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 한 번 그런 나라를 꿈꿀 기회가 생겼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홍보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었던 나라는 지난 9년간의 보수 정권 하에서 물거품이 될 뻔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다시 한 번 그런 나라를 꿈꿀 기회가 생겼다. ⓒ 영화사 풀


노무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특유의 소탈한 걸음걸이와 카랑카랑하고 전달력 좋은 목소리입니다. 주위의 지적에도 '수십 년 동안 걸어온 걸 어떻게 바꾸느냐'며 굳이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음걸이와 언제 어디서 들어도 명쾌하고 흔들림 없는 음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입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을 중심에 놓고, 그 당시 함께 했던 여러 인물의 증언과 다양한 자료 화면을 통해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스크린에 비친 노무현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부산의 인권 변호사 노무현을 감시했던 중앙정보부 요원 이화춘씨의 인터뷰. 영화에서 가장 신선했던 부분 중 하나로, 적도 너그러이 품어 주는 노무현 대통령의 속 깊은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한 장면. 부산의 인권 변호사 노무현을 감시했던 중앙정보부 요원 이화춘씨의 인터뷰. 영화에서 가장 신선했던 부분 중 하나로, 적도 너그러이 품어 주는 노무현 대통령의 속 깊은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영화사 풀


스크린에 비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여전히 감동을 줍니다. 반칙과 불의에 대한 정직한 분노, 올바른 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열정,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인간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지요.

특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하고도 소탈하게 인간적 교류를 나누었음을 알려 주는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만든 원동력이,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따뜻한 모습 안에 있음을 잘 간파해 낸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 운동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말단 요원 이화춘씨, 변호사 시절의 운전기사 노수현씨처럼 세상에 잘 알려진 명사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됨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진솔한 회고는 이 영화의 진정성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연출과 편집입니다.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벅찬 기분을 전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 것,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하여 증언자들이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 일부를 굳이 편집하지 않고 넣은 것, 3분의 2가 넘는 인터뷰 장면에서 인물의 얼굴이 크게 잡히는 클로즈 샷(close shot)을 선택하여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에 관객이 쉽게 영향받도록 한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영화에서 전해지는 진정성, 그럼에도

 영화 <노무현입니다>이 포스터. 노무현 대통령의 기억을 극장 스크린에 불러 올리는 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좀 아쉽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이 포스터. 노무현 대통령의 기억을 극장 스크린에 불러 올리는 데는 큰 역할을 했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좀 아쉽다. ⓒ 영화사 풀


어쩌면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봉 후 첫 3일 만에 손익분기점인 30만을 넘겼고 첫 주말까지 6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흥행세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자체나 인터뷰 내용 대신, 그의 지지자들과 인터뷰에 응한 사람에게 관심이 더 쏠리게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관객들로부터 인터뷰 내용이 좋았다는 반응이 나온 경우는 중정 요원이나 운전기사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거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 중에서도 비교적 끝까지 감정이 격해지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우일지는 몰라도, 이런 감정적인 접근이 2002년의 환희와 2009년의 슬픔 사이에 있었던 날들을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그 7년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 정부가 기득권 질서와 싸워야 했던 악전고투, 이명박 정부의 악의적인 수사, 그를 지지했음에도 외면할 때가 많았던 우리의 잘못 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야 9년 만에 다시 맞이한 민주 정부가 딛고 설 발판이 든든해지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도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다소 아쉬운 점은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정면으로 다룬 극장용 다큐멘터리로서 그에 대한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릴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할리우드에서 케네디나 링컨 같은 유명 대통령의 삶을 소재로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어 온 것처럼요.

다만, 앞으로 나올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이 영화처럼 감정에만 호소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정신이 남긴 정치 사회적 의미를 우리 사회가 늘 잊지 않고 곱씹어 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이창재 2002 대선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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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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