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는 힘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폭력으로, '가해자-피해자-방관자'의 도식을 지니고 있다. 방관자는 크게 네 부류로 구분 할 수 있는데, 가해 활동에 참여하는 '가해 조력자', 웃어주는 등 가해 행동에 긍정적 피드백을 주는 '가해 강화자', 거리 두기와 침묵을 통해 암묵적으로 왕따 승인에 참여하게 되는 '순수 방관자', 그리고 피해자 편에 서서 그들을 위로해 주고 또래들이 가해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피해 방어자'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같이 비난하고 조롱하지는 않았지만 '거리두기와 침묵' 또한 왕따를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공모행위가 된다는 점이다. 나에게 있어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사람 냄새'에 대한 향수도 있겠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부채감'이 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MB정권의 과도한 수사로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나는 뉴스와 신문을 외면했고,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을 침묵으로 표출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을 공모한 셈이 되었다.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의 죽음은 과거이지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진행형이다. 큰 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우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오래 전 부터 꿈꿔왔던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무현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꿈꿔왔던 세상이란 반칙 없고 상식이 통하는, 그리고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승리하는 세상이며, 그게 '정의'이기도 하다. 그 꿈이 현재진행형이 듯 노무현 또한 현재진행형이기에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단순한 추억팔이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 영화사 풀


이 영화는 인권변호사, 국회의원, 전직 대통령 노무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노무현'에 관한 이야기이다. 승리가 확실한 선거구를 떠나 지역구도 타파라는 대의를 위해, 편하고 쉬운 길 대신 고되고 불투명한 길을 개척해 나갔던 어느 '우직한 바보'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200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도입된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 과정과 그와 동행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 노무현'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그 흔적을 모아 인간 노무현의 몽타주를 만드는 것은 관객의 몫이며, 메시지를 발견해 내는 것도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둔 듯 하다.

국민참여 경선 당시, 노무현의 라이벌 후보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지만 승리에만 눈이 멀어 오직 같은 당의 경쟁자를 이기기 위하여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색깔론(빨갱이)이라는 더티플레이(dirty play)를 마다않던, 더구나 올초 뜬금없이 박사모 집회에 나타나 모두를 경악시키고 실망시켰던 한 원로 정치인(이인제)의 말로(末路)가 교차되면서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곧 그 사람의 '사람됨'이자 '삶'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치인 노무현은 실패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 노무현은 승리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우상화하는 것은 우리들의 꿈을 박제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비겁한 방관자로 머무른 채로는, 소중한 것을 지켜 낼 수 없음을 뼈아픈 체험을 통해 우리는 깨달았다. 깨어있는 시민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으며,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며,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노무현 지지자들의 품격을 높이는 것이, 노무현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금계국(golden-wave) 핀 5월 말의 자전거 길

금계국(golden-wave) 핀 5월 말의 자전거 길 ⓒ 김주희


금계국(golden-wave)은 길가에 많이 심는 꽃으로 그 이름만 몰랐을 뿐 5·6월이 되면 주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꽃이다. 장미처럼 가시를 돋으며 저 혼자 뽐내기 보다는 여럿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을 때 그 빛깔은 아름다움을 발한다. 5월이면 유난히 더 그리워지는 사람 노무현은 금계국 같은 감동을 곳곳에 남겨 놓고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정신은 촛불 시민들의 물결을 만들어 냈다. 강물이 물결 쳐 마침내 바다에 다다르듯, 깨어있는 시민들의 물결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면 언젠간 정의로운 세상에 가닿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땐 좀 더 떳떳한 마음으로 노짱을 그리워 할 수 있겠지…. 지켜주지 못해 더 애틋한 친구, 우리들의 바보, 노무현을 스크린에서나마 다시 만나고 와서 반갑고, 슬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느리게 걷는 여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입니다 촛불정신 금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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