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그리스 신화에는 '시시포스의 형벌'에 대한 구절이 있다. 제우스에게 밉보여 저승에 끌려간 시시포스가 얕은꾀로 지상에 돌아가 장수를 누린 뒤 받은 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산 아래에 있는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려야 했고, 정상까지 올린 바위가 이내 아래로 굴러 내려가면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다. 죽지 않는 대신 영원한 노동의 굴레 속에 갇히게 된 셈이다.

영화 <7번째 내가 죽던 날>의 주인공 샘(조이 도이치 분)이 처하는 상황 또한 '시시포스의 형벌'과 궤를 같이한다. 졸업을 앞둔 평범한 고등학생인 샘의 굴레는 특별할 것 없는 어느 금요일 하루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친구 린제이(할스톤 세이지 분)와 함께 등교하고, 잘나가는 남자친구 롭(키안 롤리 분)에게 장미꽃을 선물 받는다. 저녁에는 롭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기대에 부푼 채 홈 파티를 향한다. 하지만 파티에서 롭은 만취해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같은 반 왕따 줄리엣(엘레나 캠푸리스 분)이 나타나 분위기를 망친다. 상심한 샘은 친구들과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돌연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눈을 뜬 그 앞에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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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내가 죽던 날>에는 '내일'이 없다. 2월 12일이란 날짜도, 샘을 대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태도도 판에 박힌 듯 똑같이 반복된다.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하루 속에서 샘이 무슨 수를 써도 내일은 오지 않는다. 그가 교통사고를 겪든, 아무 일 없이 잠들든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새로운 내일을 맞을 수 있을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심지어는 애초에 무슨 조화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건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다만 영화가 조명하는 건 반복의 굴레 속에 갇힌 샘 개인의 서사다. 이는 시행착오 속에서 이루어지는 샘의 새로운 발견과 성장, 그리고 타인에게 미치는 변화에 대한 것이다.

다분히 SF적인 설정을 틴에이저 드라마 화법으로 풀어낸 영화의 서사는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일이 없는 샘의 삶이 바로 그 반복성 때문에 더없이 소중한 시간으로 다뤄진다는 점에서다. 샘은 무심하게 대해 온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마주하고 보듬으며 화해를 건넨다. 사춘기를 지나며 멀어진 엄마 아빠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하고, 귀찮게만 여겨 온 여동생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를 웃게 한다. 학교에서는 짐짓 무시하고 놀려온 같은 왕따와 레즈비언을 비롯해 무관심했던 친구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자신을 반성하기에 이른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아 가는 샘의 고군분투, 그리고 영화 말미 '일곱 번째' 날 그의 마지막 선택은 퍽 긴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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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루프'란 소재를 스크린 위에 풀어낸 영화의 만듦새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특히 극 중 수차례 반복되는 주요 시퀀스들이 앵글과 컷의 변화 속에서 각각 다른 분위기로 다가오는 점은 인상적이다. 여기에 틴에이저 무비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음악, 인물들의 격양된 대사와 행동들은 주인공 샘을 중심으로 교차하는 감정의 파동을 효과적으로 조명한다. 라이징 스타 위주로 구성된 배우들의 얼굴은 낯설지만, 샘 역을 맡은 조이 도이치의 연기는 원톱 여배우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샘의 친구 린제이를 연기한 할스톤 세이지는 겉으론 강하지만 내면의 상처를 지닌 캐릭터로 남다른 존재감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라이 루소 영 감독 / 러닝타임 99분 / 15세 관람가 / 2017년 5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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