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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생활수급자 되는 것, 이토록 어렵습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수행원에게 여행용 가방을 건네는 남다른 방법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얻고 있는 분이 계시죠. 김무성 의원님이신 데요, 지금이야 '코리안 스웨거'로 유명세를 치르고 계시지만 최순실 게이트 직전 대선 유력주자로 언급되던 시절만 해도 트럼프 못잖은 실언으로 악명이 높으셨죠.

대표적인 발언이 있습니다.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이 말을 들은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복지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고 여당의 당 대표란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죠.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은 전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제38회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에 참석해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말했다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은 전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제38회 전국 최고경영자 연찬회에 참석해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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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의 저는 복지 문제에 관심이 있고, 우리나라가 조금 더 복지 선진국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복지를 필요로 하는 위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김 의원의 말은 그저 정치적으로 옳지 않았을 뿐, 불편한 진실에 가깝다"는 식의 반론에 뭐라고 반박을 하기가 어려웠죠.

기초생활수급 받는 과정, 절박함과 두려움의 연속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인생은 제 계획과 다르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민센터에 가기 전, 말끔하게 입었더니 너무 말끔해 보여서, 거절당할까 봐 도로 후줄근한 옷을 꺼내입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다가 옷마저 후줄근하니 제 자존이 마구 짓밟히는 기분이라 다시 각 잡힌 옷으로 갈아입었더랬죠.

열한 개의 서류를 작성하고, 제 가난과 제 경제적 무능을 상세히 설명하고 증빙해야 했습니다. '국방과 납세, 교육의 의무를 다 했으니 내겐 사회권이 있다'고, 이건 내 권리라고 속으로 계속해 되뇌었으나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사전 연락 없이 주거지 확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사전 연락 없이 주거지 확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 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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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예고없이 LH주거복지센터에서 다녀간 겁니다. 곱게 말해 다녀간 거지 거의 들이닥친 수준이었죠. 실제로 거주하는지, 주거환경과 소득수준, 매달 부담하는 월세 등이 제가 주민센터에서 말한 것과 같은 지 등에 대한 확인 절차였습니다. 필요한 절차죠. 그래도 당일 오전 9시에 '지금 갑니다'는 좀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상기 캡처 참조)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불시에 방문해야 사실관계 확인이 좀 더 정확하다는 건데요, 경황이 없던 당시의 제겐 굉장한 혼란이었습니다. 수급 대상이 되는 것이 절박한 상황에서, 조사관의 방문을 놓침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거든요. 고시원의 경우 원장 확인만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설명은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복지는 나를 '나태하게' 만들지 않았다

구청이 고시원 월세를 입금했다.
 구청이 고시원 월세를 입금했다.
ⓒ 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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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제가 생계 구조를 긴급히 요구하는 상황이란 사실은 바로 인정이 됐고, 조사관의 급작스러운 방문이 있은 지 3일 만에 월세가 입금됐습니다. 저에게 직접 입금된 것은 아니고, 구청 이름으로 집주인 분 계좌로 입금이 됐습니다.

말일까지 입금하지 못하면 월세가 체불되는 상태. 고시원 특성상 보증금도 따로 없어 돈이 밀리면 그대로 방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의 구제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다가올 말일 전에 저는 인생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저를 한 번 살렸습니다.

긴급 생계비 요청이 받아들여져 총 435,060원을 입금받았다.
 긴급 생계비 요청이 받아들여져 총 435,060원을 입금받았다.
ⓒ 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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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생계비용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빵 하나를 종일 나누어먹고 우유 한 모금씩을 종일 나누어 마시는 데 지쳐가던 무렵, 입금 문자를 받고 얼마나 마음이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당장 집 밖으로 뛰쳐나가 제육볶음 한 상을 사 먹었습니다. 그렇게 당장의 주거와 식사가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나태해졌을까요?

저는 이번 일을 통해 복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뭐랄까요. 벼랑 끝을 넘어 하염없이 떨어지던 중 누군가 쳐 놓은 안전망에 걸린 기분이었습니다.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몸으로 느낀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은 예전과는 다릅니다. 예전엔 하지 못했던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복지는 나태를 부르지 않습니다."

'건강함 채무감'을 느끼게 하는 복지

일반적인 수준의 도덕과 상식적인 수준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삶과 죽음의 어느 문턱에서 죽지 않도록 쥐여준 돈을 부정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이번 달 월세 입금받았습니다'라는 집주인의 전화, 배를 부여잡고 있던 어느 저녁에 입금된 40만 원의 돈이 제게 준 것은 '건강한 채무감'이었습니다. 제가 쥐게 된 돈이 성실히 일해 세금을 낸 이름 모를 누군가의 돈이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사회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건강을 찾아 열심히 일해, 이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생계 지원금을 받은 지 겨우 일주일 정도가 지났지만, 하루하루 놀라운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식사가 바로잡히면서 건강이 크게 좋아졌고 2~3만 원의 교통비를 들여 여러 군데 면접을 보아 일자리도 얻었습니다. 4대보험 가입이 확인돼 지원이 중단된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세금을 '낼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에 도리어 감사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일주일, 저는 삶을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셔츠를 다려 입고 사무실에 앉아 있습니다. 식권을 잔뜩 끊어 놓았으므로 당분간 굶을 일도 없습니다.

복지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길거리를 걷는 막연한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이 굶고 있던 내게 밥을 먹여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렇게 이 사회에 감동하고 내가 이 사회에 가진 의무감을 상기하게 하는 것, 그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다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나태는커녕, 복지 탓에 몇 배는 바빠진 셈입니다. '나태'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두 세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귀찮은 분에게나 쓸 말입니다.

복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 그리고 그런 분들 중에서도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복지에 대해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국민으로서 제게 부여된 의무를 기쁘게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평생 성실히 납세하고, 민방위 훈련 가서도 덜 졸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그:#기초생활수급, #복지,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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