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광주 KIA 타이거즈의 경기. SK 선발투수 김태훈이 역투하고 있다.

SK 김태훈이 9년 만에 프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사진은 지난 14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K 와이번스와 광주 KIA 타이거즈 경기에서의 모습. ⓒ 연합뉴스


부산에서 스윕패를 당한 SK가 안방에서 LG를 제물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이끄는 SK 와이번스는 26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홈런 2방을 포함해 8안타를 때려내며 6-1로 승리했다. SK의 7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정진기는 3회 결승 솔로 홈런을 비롯해 2안타 3타점을 기록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앞선 두 번의 등판에서 2패 평균자책점 7.20을 기록했던 LG선발 데이비드 허프는 이날 7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호투하고도 패전의 멍에를 썼다. 정진기와 한동민, 두 좌타자에게 맞은 홈런 두 방이 치명적이었다. LG타선은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하는 허프에게 한 점 밖에 지원을 해주지 못했는데 이는 SK의 선발 김태훈에게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김태훈은 시즌 4번째, 통산 6번째 선발 등판 경기에서 9년 만에 감격적인 프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고교 시절 퍼펙트 게임 후 프로 8년 동안 무승

경기도 구리에서 태어난 김태훈은 사실 인창고 시절까지도 또래에서 그리 돋보이는 투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역 내 이렇다 할 유망주가 없던 SK에서는 김태훈과 부천고의 장영석, 인천고의 강지광(이상 넥센 히어로즈)을 두고 저울질하다가 좌완 김태훈을 1차 지명으로 선택했다. 1차 지명 선수임에도 1억 원에 불과(?)했던 계약금이 당시 김태훈의 낮은 기대치를 알려준다.

하지만 김태훈은 2008년 8월1일 부경고와의 미추홀기 16강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면서 단숨에 유명세를 탔다. 김태훈은 하루 아침에 '퍼팩트맨', '미스터 퍼펙트'라는 별명이 생겼고 SK팬들은 김광현과 김태훈으로 구성될 젊은 원투펀치의 탄생을 상상하며 더욱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SK팬들에게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던 김광현과 김태훈의 원투펀치는 끝내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김태훈은 프로 입단 후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다가 바로 수술을 받으며 루키 시즌을 날렸고 2010년에도 확대 엔트리에 1군에 올라와 단 한 경기에만 등판했다. 2011년 16경기에 등판해 1홀드 4.00을 기록한 김태훈은 2012년 시범경기에서 13.2이닝을 던지며 1승 1홀드 3.29를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혔다. 하지만 정작 정규리그에서는 제구난조에 시달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2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대한 김태훈은 어깨 부상으로 퓨처스리그에서도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이제 '퍼팩트맨'이라는 김태훈의 별명은 SK팬들 사이에서만 떠도는 구전동화가 됐다. 프로 입단 후 4년 동안 1군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상무에서조차 등판 기록이 없는 투수가 어느 날 갑자기 부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김태훈은 복귀 첫해 1경기에서 27.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5 시즌이 끝나고 마무리 투수 정우람(한화 이글스)이 팀을 떠나면서 불펜투수로서 좌완 김태훈의 비중은 다시 커지는 듯했다. 하지만 김태훈은 작년 시즌에도 15경기에 등판해 1패 4.30의 성적에 그쳤다. 통산 42경기 3패 1홀드 5.40의 평균자책점. 프로에서 8년을 보낸 1차 지명 출신 유망주 투수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외국인 선수 부상으로 얻은 기회, 4경기 만에 프로 데뷔 첫 승

김태훈의 드래프트 동기 김상수(삼성 라이온즈)는 삼성의 캡틴이 되며 올해 3억 10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LG의 대체 불가 유격수가 된 오지환의 연봉은 3억 5000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 시즌 김태훈의 연봉은 KBO리그 최저 연봉(2700만 원)을 갓 넘는 2800만 원에 불과하다. 프로 입단 후 실적이 전혀 없으니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아직 방출을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정도다.

올 시즌에도 김태훈은 트레이 힐만 감독의 마운드 구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힐만 감독은 오히려 지금은 김택형과의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한 김성민을 5선발 후보로 기대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김태훈이 노릴 수 있는 자리는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등판하는 롱릴리프 혹은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SK의 외국인 투수 스캇 다이아몬드가 아내의 출산과 종아리 근육 경련, 어깨 부상 등으로 단 3경기 만에 이탈하면서 김태훈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김태훈은 3번의 선발 등판 기회에서 한 번도 5이닝을 넘기지 못했지만 2.19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4번째 기회였던 26일 LG전에서 5.1이닝 5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9년 만에 감격적인 첫 승을 거뒀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4회까지 안타 2개로 LG타선을 묶던 김태훈은 5회 채은성에게 안타, 오지환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루이스 히메네스의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정면으로 향하며 자신감을 되찾았고 유강남을 삼진, 손주인을 2루 땅볼로 처리하며 실점 위기를 넘겼다.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볼넷이 하나 밖에 없었을 정도로 공격적인 투구가 돋보였다.

현재 SK는 메릴 켈리와 윤희상, 박종훈, 문승원까지 4명의 투수가 붙박이로 로테이션을 돌고 있다. 현재 퓨처스리그에서 재활등판을 하며 복귀 준비를 하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합류하면 다시 5명의 선발 로테이션이 완성된다. 어쩌면 김태훈은 프로 데뷔 첫 승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선발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 첫 승을 거뒀을 때의 투구 감각을 유지한다면 올해 김태훈이 마운드에 서는 날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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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SK 와이번스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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