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JTBC <뉴스룸> '문화 초대석'에 출연한 송강호.

지난 25일, JTBC <뉴스룸> '문화 초대석'에 출연한 송강호. ⓒ JTBC


"제가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각본을 읽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아, 이 작품은 또 정부에서 싫어할 내용 같다…."

영화계 분위기가 그렇다. 시나리오만으로도 (권위적인) 정권이 민감해하고 싫어할 내용일지, 개봉 이후 어느 정도의 논란을 감수해야 할 내용인지 아닌지 대부분의 영화인이 먼저 감지하기 마련이다. 한국영화계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배우 송강호라고 크게 달랐겠는가.

25일 방송된 JTBC <뉴스룸> '대중문화인터뷰'에 출연한 송강호의 인터뷰는 그러한 예민한 속내를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 있는 솔직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나 송강호는 영화 <변호인>, <관상> 등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선봉에 서야 했지 않았는가. 그런 만큼 그가 직접 들려주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견해는 예민함과 적확함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좀 당황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하고요. 뭐 주변에서도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았나 걱정해 주시는 분도 많이 계시는데. 물론 변호인을 제작한 제작자나 투자하신 투자사 분들이 조금 곤란을 겪고 어느 정도 불이익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고요.

저는 그런 소문들이 있었습니다만, 뭐 이렇게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원래 은밀하게 작동이 되는 거니까 겉으로 드러난 어떤 증거나 확실한 어떤 증인이 있는 게 아니니까 공식적으로 단정을 지을 수는 없지만, 문제는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게 그런 소문만으로도 어느 정도 블랙리스트의 어떤 효력이 발생된다라는 점이죠."

송강호가 말하는 블랙리스트와 자기검열

 영화 <택시운전사>의 티저 포스터.

영화 <택시운전사>의 티저 포스터. ⓒ 쇼박스


이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자기 검열'의 문제였다. 손석희 앵커는 정확히 "흔히 얘기하는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는 거죠"라고 짚었고, 여기에 수긍한 송강호는 자기 검열에 뒤이어 오는 심리적인 위축감을 부연했다. 군사독재 시절에서나 문화예술인들 스스로가 작동시켜 왔던, 민주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사라진 것 같았던 바로 그 자기 검열 말이다. 송강호의 설명을 더 들어 보자.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심리적인 위축감이 들 수밖에 없는 거고요. 저뿐만이 아니라 그 리스트에 오르신 수많은 예술가분이 어떤 가장 순수하게 예술적인 판단만을 해야만 될 때 이런 우려가 끼어든다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 참고로 조금 한 두어 달 후에 제가 출연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개봉하는데.

(5.18과 관련된) 네,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죠.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아예 책도 읽기도 전에 손사래를 쳤던 그런 기억이 나는데, 결국은 보게 되죠. 보게 되고, 그 감동과 어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뜨거움이 많은 분에게 이 뜨거움을 좀 전해 드리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열망들이 아마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케이스인데 그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올여름 개봉하는 송강호·유해진 주연, 장훈 감독 연출의 <택시운전사> 역시 <변호인> 못지않게 한국 현대사의 복판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작품이다. <택시 운전사>는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우연히 광주로 향하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이 겪는 '80년 5월 광주' 이야기다. '푸른 눈의 목격자'로 유명한 독일 공영방송 기자였던 고 위르겐 힌츠패터와 택시 기자 김사복씨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변호인> 이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투자상의 어려움으로 작품 선택에서 곤란함을 겪었던 송강호란 배우의 행보는 그래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감동을 전해 준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부림사건'과 엮어 완성한 <변호인> 이후 '현대사'에 있어 '친일파'의 의미를 묻는 <밀정>에 출연했고, 차기작으로는 5.18 광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택했다.

사극인 <사도>를 제외하고, 그야말로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건드리는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한 셈이다. 영화계 선배로서 '책임감'을 강조하는 송강호. 영화계 관계자들은 종종 그가 <변호인> 이후 영화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선택하는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기검열'과 '투자의 어려움'을 이겨낸 한 중견 영화인의, 한국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의 남다른 행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27년 전, 연극배우와 노조 교육부장으로 만났던 송강호와 손석희

이날 인터뷰는 이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 외에도 흥미로운 순간들이 적잖았다. 27년 전, MBC 파업 시절 연극배우와 MBC 노동조합 교육부장으로 만났다는 송강호와 손석희 앵커와의 인연은 이날 처음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30~40대의 송강호와 손석희가 MBC 노조 파업 당시 만났고, 뒤풀이 자리에서 '섞어찌개'를 함께 먹은 인연, 흥미롭지 아니한가.

이밖에도 이날 송강호는 '유머', '귀여움' 등의 키워드와 관련해 연기 철학을 설파하기도 했고, 손석희가 틀린 '팩트'를 말하면 수정해 주는 등 예의 그 소탈하면서도 예민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 줬다. '송강호 단독 인터뷰'는 그렇게 <뉴스룸>이 최초 방송 단독인터뷰라는 수식어로 홍보에 열을 올릴 만큼 꽤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들.

"이 시간에 제 얘기를 하는 시간은 아니지만 제가 그거를 보면서 느낀 점이 한 가지가 있는데, 이거 어떻게 보면 공통점일 수도 있겠다는 게 저도 방송 생활 오래 하다 보니까 후배들이 가끔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급박한 어떤 상황에 들어가야 될 때는 어떤 생각으로 들어가느냐, 제가 뭐라고 대답하냐면 나는 그냥 '에라, 모르겠다' 그러고 들어간다고 얘기하거든요. 비슷할 수도 있죠?" (손석희)
"저는 '에라 모르겠다'는 아닙니다. '에라 모르겠다'는 아닌데. 약간 그런 게 좀, 너무 심각하게…." (송강호)
"사람 참 무안하게 만드시네요, 아무튼(웃음)." (손석희)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대신 진지하되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아라, 이런 뜻으로 얘기 드린 겁니다." (송강호)

웃음과 진중함이 교차했던 이 날 인터뷰에서 송강호는 영화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나름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날 가장 진중하면서도 가장 거시적인 비전을 송강호가 내비친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 한 편 한 편의 소중함을 광화문에 모였던 촛불들로 비유했던 송강호. 이날 인터뷰는 <택시운전사>로 돌아올 그의 영화들에 왜 대한민국 관객들이, 아니 세계 관객들이 열광하는지를 스스로 입증한 자리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저희들이 광화문에서 작은 어떤 촛불들이 모여서 큰마음을 이루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참여도 하고이랬지만. 그러니까 영화 한 편은 어떻게 보면 보잘것없는 것 같아도 그런 영화들이 모이고 모이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얘기하는 세상에 대한 희망, 원했던, 원하는, 꿈꾸던 삶의 어떤 희망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뜻에서 제가 말씀드린 거고요.

그러니까 촛불 하나하나가 어떻게 보면 되게 작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것이 모였을 때는 어마어마한 힘이 되고 상징되고 발원이 되는 것처럼 영화도 어떤 작품에서 감동을 받은 관객들이 비록 숫자가 적더라도 그분들 또 그 효과가 불과 몇 시간밖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저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강호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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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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