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미디어와 함께 발전해왔다. 또한 날이 갈수록 상업화가 심화되고 있다. 축구를 향한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됨과 동시에 21세기부터는 축구계 상업화의 가속도가 붙었다. 때문에 4년마다 열리는 FIFA 월드컵의 가치는 이전보다 하락한 대신 매년 열리는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가치는 증대했다. 매해 세계 최고의 클럽들이 자웅을 겨루는 챔피언스리그 무대는 축구 전술의 장이자 현대 축구 역사의 중심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가치가 올라감에 따라 챔피언을 결정짓는 결승전 한 경기가 가지는 '임팩트'는 대단하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만 쭉 놓고 보면 현대 축구의 흐름을 간단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중요한 경기다. 그만큼 얼마 남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FC의 결승전은 초미의 관심사다. 누가 이길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 우승팀들이 결승전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를 알아보면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가지는 위상과 영광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드림팀'의 시작
▲ 2008-2009 시즌부터 레알을 압도하기 시작한 바르셀로나 ⓒ 위키미디어
8년 전 오늘(5월 26일).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바꿔 놓은 중요한 경기가 펼쳐졌다. 당시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의 대결, 백전노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신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대결 혹은 박지성의 선발 출장 여부가 중요했던 경기. 훗날에는 21세기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 경기. 바로 2008-200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FC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경기였다.
결과부터 말하면 이날 승리는 거둔 팀은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는 대회 '디펜딩 챔피언' 맨유를 시종일관 압도한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같은 시즌 이미 자국 리그와 컵대회(스페인 국왕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거머쥐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1992년 유로피언컵(챔피언스리그 전신) 우승을 차지하며 '드림팀'으로 불렸던 크루이프 감독의 바르셀로나를 뛰어넘는 성적이었다.
경기 시작 전 많은 언론들의 승부 예측은 맨유의 근소한 우위였다. 맨유가 강하기도 했지만 바르셀로나의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먼저 팀 내적으로는 준결승 2차전 퇴장을 당한 에릭 아비달과 경고 누적의 다니엘 알베스가 결승전에 출장할 수 없었다. 양 쪽 주전 측면 수비수가 모두 결장한 채 맨유의 빠르고 힘 있는 윙어를 막아야 할 난관에 부딪친 바르셀로나였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첼시FC와 준결승 2차전 경기가 문제였다. 그날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 덕에 결승전에 올라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바르셀로나가 심판을 매수했다"라는 근거없는 추측은 부당했지만, 다수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은 바르셀로나를 향해 언론과 팬들의 강한 비난이 쏟아졌다. 팀 전체가 흔들릴 만한 거대한 비난 속에 경기를 준비했던 바르셀로나였다.
실력에 운까지 따랐던 바르셀로나
▲ 바르셀로나의 결승전 선발 라인업 ⓒ 봉예근
경기 초반은 예상대로 맨유의 흐름이었다. 맨유는 에이스 호날두를 필두로 바르셀로나를 날카롭게 공략했다. 맨유 선수들의 강한 압박에 당황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공을 쉽게 잃었다. 맨유는 전반 초반 연이어 나온 호날두의 위협적인 장거리 프리킥과 발리슛으로 흐름을 완벽하게 가져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밀리고 있는 흐름을 되찾기 위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반 9분 메시와 사무엘 에투가 자리를 바꿀 것을 지시한다. 변화는 곧장 결과물을 가져온다. 오른쪽 측면에 배치된 에투가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패널티 박스 안에서 받았고, 수비를 위해 덤벼든 비디치를 제치고 득점에 성공한다. 에투의 개인 능력이 빛났던 장면이었다.
선제 득점에 성공한 바르셀로나였지만 메시를 활용한 '제로톱' 전술은 생각만큼 작동하지 않았다. 메시의 영향력은 부족했고 바르셀로나 특유의 '티키타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흐름은 바르셀로나의 것이었다. 맨유는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했고 호날두만이 공격에서 분투했다.
바르셀로나의 선제 골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박진감을 떨어졌다. 그러던 와중 후반 20분 맨유가 동점골을 위해 박지성 대신 베르바토프가 투입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박지성의 부재로 바르셀로나가 미드필드진에서 절대적인 수적 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했고,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게 되면서 바르셀로나는 맨유를 손쉽게 공략했다. 결국 후반 25분 사비의 크로스를 메시가 헤더로 연결해 득점에 성공한다. 다소 운이 따랐던 골이었다. 메시의 유일한 '약점'인 공중볼 능력에 당한 맨유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하고 만다.
결승전 승리는 왕조의 출발
▲ 과르디올라와 함께 시작된 바르셀로나 왕조 ⓒ 위키미디어
이날 승리를 기점으로 바르셀로나는 완벽하게 유럽 축구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술은 향상됐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도 절정에 달했다. 2009년에만 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의 지휘 아래 4년 동안 14개의 트로피를 수집한다. 승리보다 패배가 이슈가 될 정도로 강력했던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였다.
당시 챔피언스리그의 구도가 바르셀로나 vs 반(反) 바르셀로나일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세는 막강했다. 많은 팀들이 다양한 전술로 바르셀로나에게 도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그만큼 바르셀로나는 완벽에 가까웠다. 과르디올라가 떠난 후에는 다소 부침을 겪지만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부임으로 다시 한번 성공을 맛 본 바르셀로나는 최근 아홉 시즌 동안 24번의 우승을 일궈냈다. 바르셀로나 왕조가 2009년 로마에서 열렸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부터 시작됐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반드시 '왕조'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결승에 참가하는 팀에겐 유효하다. 먼저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레알의 왕조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세 시즌 동안 두 번의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레알은 올 시즌 리그에서 우승에 성공해 스페인과 유럽에서 바르셀로나가 차지하고 있던 패권을 완전히 가져왔다. 어떤 팀도 이루지 못한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은 '레알 왕조'의 절정기가 될 전망이다.
반면 유벤투스의 우승은 '유벤투스 왕조'의 시작을 의미한다. 유벤투스는 이탈리아의 최강자로서 올 시즌까지 리그 6연패와 컵 대회 3연패를 달성했음에도 유럽 무대에서는 2인자로 통한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챔피언스리그 우승만 달성한다면 진정한 강자로서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왕조의 절정을 바라보는 레알과 유럽 최정상 등극을 기점으로 패권을 쥐려는 유벤투스의 맞대결이 얼마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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