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한장면

<네루다>의 한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네루다(1904~1973)는 칠레를 대표하는 민중 시인이자 공산주의자다. 파시즘에 반대하던 그는 1945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공산당에 입당했다. 예술가이자 정치인으로서 하층민의 삶을 대변했고,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에게 밉보인 네루다는 범죄자로 전락해 은둔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이후 그는 프랑스와 폴란드, 헝가리,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을 떠돌았다. 그리고 20여 년 뒤인 1971년,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화 <네루다>는 실존 인물인 시인 네루다의 삶 중 극히 일부분, 그러니까 자신을 체포하려는 정부를 피해 도피 행각을 벌이던 20여 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쫓기는 네루다(루이스 그네코 분)와 그를 쫓는 가공의 인물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가 있다. 영화는 당시 네루다가 겪은 일들을 사실적으로 고증하는 대신, 각각 현실과 픽션을 넘나드는 두 캐릭터 간의 관계를 통해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 냈다.

 <네루다>의 한장면

<네루다>의 한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극 중 서사의 대부분이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추격전에 할애되지만, 영화는 빠른 템포의 긴박감이나 피말리는 긴장감을 연출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신 말미에 이르기까지 서로 만나는 법이 없는 네루다와 오스카 각자를 깊숙이 들여다보며 둘을 연결짓는 데에 집중할 따름이다. 정부에 의해 자유를 침해당한 네루다, 하층민 출신으로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비밀 경찰 오스카의 대결 구도가 흥미로운 건 그런 맥락에서다. 공존할 수 없는 라이벌이면서도 서로 닮은 듯한 이들의 서사는 영화의 굵직한 줄기로서 손색이 없다.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오스카에게 있어 네루다는 자신의 존재 의미이자 성공을 위한 발판, 나아가 부정하고 타도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그런가 하면 네루다에 있어 오스카란 자신이 '계몽'해야할 민중이자 고독을 잊게 해 줄 친구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경찰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난 그를 쫓고 그는 글을 쓴다"라고 되뇌이는 오스카의 독백, 그리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만들어진 인물"이란 극 중 표현은 각각 네루다와 오스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대사다.

 <네루다>의 한장면

<네루다>의 한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두 인물 관계에 내재된 모호성이다. 영화는 오스카를 네루다가 만들어낸 허상이자 '조연'이라고 역설하고, 한편으로는 오스카의 입을 빌려 네루다의 행보를 '중계'한다. 네루다의 행동 하나하나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오스카의 냉소어린 코멘트를 교차시킨다. 쓰여진 이야기를 읽는 대신 네루다의 일거수일투족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오스카의 내레이션은 되레 네루다를 대상화시킨다. 여기에 네루다를 막연하게 증오하면서도 점점 연민과 존경을 느끼는 오스카의 태도는 일견 감독의 자아를 투영한 것으로도 읽힌다. 말하자면 <네루다>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자 '실재에 대한 판타지'다.

네루다를 다분히 세속적인 인물로 표현한 점은 연출 측면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는 시인으로서 네루다의 업적을 굳이 찬양하는 대신, 빈칸으로 남겨진 인간 네루다의 삶을 나름대로 해석해 채워 넣는다. 잡히면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그가 편안한 태도로 도피 생활을 즐기는(?) 모습들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아내를 둔 채 다른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향락에 빠지거나 종종 제멋대로인 태도로 동지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모습까지. 영화가 그리는 네루다의 면면은 통제 불가능한 예술가이자 다분히 권위주의적인 중년 정치인의 민낯을 사실적으로 대변한다. 이는 그 시절 네루다 개인과 칠레라는 국가 사이의 애증 어린 기억의 단면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파블로 라라인 감독 / 107분 / 청소년 관람불가 / 5월 25일 개봉
제 28회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 남자배우상 및 씨네 라티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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