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소리 안 내고 먹을 수 있는데."

23일 종영된 <귓속말>에서 감옥 안에서 조재현이 갑자기 한 이 대사를 듣고 한참 웃었다. 아마도 <귓속말> 작가의 전작 <펀치>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웃음이 나오지 않았을 장면인지도 모른다. 귓속말 작가의 전작 <펀치>에서는 이태준(조재현 분)과 박정환(김래원 분)이 만나 자장면을 자주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그 장면을 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정말 자장면 먹고 싶다.'

그런데 <귓속말>에서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드라마 <펀치> 속에서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박정환의 자리는 송태곤(김형묵 분)이 대신했지만, 그래도 이태준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니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태준 '자장면 타령'이 깨닫게 해 준 씁쓸함

 <펀치>에서 자장면을 즐겨먹던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분).

<펀치>에서 자장면을 즐겨먹던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 분). ⓒ SBS


"자장면은 소리 내면서 먹어야 맛있어."

이태준이 자장면을 먹으면서 하는 소리에 또다시 웃었다. 그러다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만 등장시켰다고 보기에는 이태준이라는 무게감이 컸다. 이태준이 누구던가? <펀치>에서 권력욕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인물이 아니던가. <펀치>와 <귓속말>이 같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면 커다란 악이었던 이태준이 무너진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또 다른 거대한 악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귓속말>을 보는 동안 내가 너무나 힘들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귓속말>을 보면 재미있지만 한 회를 보고 두 회를 보고 회를 거듭해 보면 볼수록 보고 있는 내가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왜 그랬을까? 극의 마지막에 와서야,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 봤던 이태준의 등장을 통해서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동준(이상윤 분)이라는 주인공에 완전히 감정 이입해서 보고 있었기에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귓속말>은 행복한 결말로 끝나기는 했지만 1회부터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이동준이 그렇게 벌을 주고자 했던 악의 무리는 끝없이 반격을 해오고 살아남으려 한다. 매회, 이제는 정말 악의 무리였던 최일환(김갑수 분), 강정일(권율 분), 최수연(박세영 분)이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겠지, 하던 순간에도 계속해서 반격하고 살아남는 모습을 보면서 싸울 힘이 점차 떨어졌다고나 할까.

그건 마치 아무리 강한 펀치를 날려도 되살아나는 오뚝이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결국 그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최일환과 강정일, 최수연에게 다 수갑을 채웠음에도 마음속 한구석에 남는 찝찝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찝찝함은 <펀치>에서 악의 축으로 활동했던 이태준을 <귓속말>에서 다시 만나면서 가느다란 한숨으로 변하고야 말았다. 이동준이 비록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무리를 벌하기는 했지만 돈에, 권력 등의 욕심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들이라는 토양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그런 세력들은 또다시 무럭무럭 자라나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장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태준이 다음 생애에서는 '시궁창 같은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라고 한 장면이나 <펀치>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었던 최연진 검사(서지혜 분)가 검사의 모습으로 최일환, 강정일, 최수연을 상대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희망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귓속말>이 던진 물음, 당신의 대답은?

 <귓속말>의 이동준와 신영주.

<귓속말>의 이동준와 신영주. ⓒ SBS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희망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내 찝찝함은 가느다란 한숨에서 긴 한숨으로 바뀌고 말았다. <귓속말> 마지막 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주인공들의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감옥 안에서 강정일이 팔굽혀 펴기를 한 후 무언가 나중을 다짐하듯 독한 눈으로 아버지 사진을 쳐다보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귓속말> 초반에 '악은 성실하다'라는 대사가 나왔던 적이 있다. <귓속말> 속 세계는 우리가 더 이상 볼 수 없으나 강정일의 그런 모습을 통해 끝까지 성실한 악의 모습은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이동준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악' 역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계속해서 그 '악'과 이동준처럼 싸워주어야 한다는 점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이동준에 앞서 그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신창호(강신일 분) 기자나 그의 동료 기자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처럼 그건 악보다 훨씬 더 성실해야 하고 훨씬 더 힘든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를 재미있는 드라마로 남겨 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 드라마가 우리에게 깨우쳐 준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귓속말>을 재미있는 드라마로 남겨 놓는다면 현실은 <펀치>와 <귓속말>이라는 드라마가 끊임없이 나오듯 부당함이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이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택한다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안다.

모두가 신창호, 이동준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끝났고, 현실은 물론 드라마에서도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악과 싸워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악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협력하는 쪽을 택할지, 아니면 그 악에 반대하는 쪽을 택할지는 이제 오롯이 시청자의 몫이다. <귓속말>이 던져주고 간 그 무거운 물음에 당신은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귓속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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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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