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가 김성근(75)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한화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리는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75)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한화는 2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리는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두고 김 감독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 연합뉴스


'야신'이라 불리던 김성근 감독조차 독수리 군단을 끝까지 이끌지 못했다.

한화 이글스 구단은 23일 공식 누리집을 통해 한화의 10대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2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 종료 후 구단과 코칭스태프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한화는 새 감독이 정해질 때까지 이상군 투수코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고 밝혔다. 이로써 김성근 감독은 152승 3무 176패의 성적을 남기고 한화를 떠나게 됐다.

한화는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99년 이후 총 7명의 감독이 거쳐 갔다. 하지만 이중에서 가을 야구(포스트시즌)를 경험했던 감독은 단 3명뿐이다. 과거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감독 자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한화 감독직은 야구인들에게 '독이 든 성배'가 됐다.

'신바람 야구' 이광환도, '국민감독' 김인식도 버티지 못한 자리

한화는 1998년 7월 강병철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하차하자 이희수 수석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팀을 이끌게 된 이희수 감독대행은 그럭저럭 시즌을 잘 마무리했고 1998 시즌이 끝난 후 정식 감독으로 계약했다. 그리고 1999년 한화는 정민철,송진우, 구대성으로 구성된 에이스 트리오와 댄 로마이어, 제이 데이비스로 이어지는 외국인 듀오가 맹활약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한화는 2000년 .391의 승률로 매직리그 3위로 추락했다. 리그 최하위가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신생팀 SK와이번스였음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최하위나 다름 없었다. 결국 이희수 감독은 2000년을 마지막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1990년대 중반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이광환 감독은 2001년 한화를 준플레이오프로 진출시켰지만 두산 베어스에게 2연패를 당하며 조기 탈락했다.

2002년 팀이 7위로 추락하자 한화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 강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유승안 감독(현 경찰 야구단)에게 팀을 맡겼다. 유승안 감독은 은퇴 후 1994년부터 한화에서 배터리 코치와 타격코치, 수석코치, 2군 감독을 차례로 역임한 준비된 지도자였다. 하지만 유승안 감독 역시 2003년 5위, 2004년 7위로 팀을 한 번도 가을 야구로 이끌지 못하고 2년 만에 물러났다.

2005년 한화의 일곱 번째 선택은 베어스를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문동환(은퇴), 최영필(KIA 타이거즈)처럼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은 노장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류현진(LA 다저스) 같은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쓰면서 한화를 3년 연속 가을 야구로 이끌었다. 김인식 감독 부임 후 첫 3년(2005~2007년)은 한화의 마지막 중흥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온전히 한화를 위해서만 쓰지 못했다. 제 1,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으로 선임된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늘어났고 2009년에는 급기야 최하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화가 최하위까지 밀려난 것은 1군 참가 첫 시즌이었던 1986년 이후 23년 만이었다. 결국 '김인식 시대'도 5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시즌을 포기하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기, 한화의 다음 선택은?

 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23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홈팀 더그아웃에 김성근 감독의 책상과 의자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김성근 한화이글스 감독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23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홈팀 더그아웃에 김성근 감독의 책상과 의자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김인식 감독이 물러난 후 한화는 신선하면서도 경험을 갖춘 인물을 원했다. 거기에 지역 출신이라면 금상첨화였다. 그렇게 선택 받은 인물이 바로 현역 시절 '해결사'로 이름을 떨쳤고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장기간 활약했던 대전 출신의 한대화 감독이었다. 한대화 감독은 부임 첫 해 꼴찌에 머물렀지만 2011년 팀을 공동 6위까지 끌어올렸다. 한대화 감독에게 '야왕'이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한 시점이다.

하지만 한대화 감독은 2012년 다시 팀의 추락을 막지 못했고 시즌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채 중도 사임됐다. 한용덕 감독대행으로 2012 시즌을 끝낸 한화는 2013 시즌을 앞두고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나는 '코끼리' 김응용 감독을 영입했다. 여기에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이용규와 정근우를 차례로 영입하며 김응용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2년 연속 최하위였다.

3년 연속 꼴찌로 부진이 이어지자 보살로 유명하던 한화의 팬들도 행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김성근 감독 영입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 구단은 팬들의 바람에 따라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고 시즌 초반 경기력이 부쩍 상승하면서 한화는 KBO리그에 '마리한화' 열풍을 주도했했다. 하지만 주력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과 김성근 감독의 무리한 선수기용 등으로 2년 연속 가을 야구 문턱에서 좌절했다.

사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다섯 번이나 꼴찌에 머물렀던 한화의 현실을 고려하면 6위, 7위의 순위와 4할대 후반의 승률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화가 김성근 감독에게 기대한 성적은 '최소 가을 야구'였고 올시즌 최하위 삼성에게 스윕패를 당하자마자 경질(물론 공식발표는 사퇴로 나왔지만)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화가 시즌 중에 새 감독을 영입할지 이상군 감독 체제로 시즌을 끝까지 치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직 정규리그는 101경기나 남아있고 1위와의 승차는 10경기도 채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지난 2014년에도 LG가 양상문 감독 부임 후 꼴찌에서 4위까지 올라갔던 기적을 연출하기도 있다). 감독 퇴진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꺼내든 한화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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