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세계 축구계의 변방이다. 그중에서도 동남아시아 지역은 최약체로 손꼽힌다. 하지만 축구 열기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 남자들은 주말 밤이면 술집에 모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지켜본다.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유럽 인기 구단의 유니폼을 접하기도 어렵지가 않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세계적인 구단들이 비시즌마다 동남아시아를 찾는 것도 이러한 관심과 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국 리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도 아니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 클럽은 매 경기 만원 관중이 자리한다. 실력도 뛰어나다.

전북 첫 골 순간  지난 2016년 3월 1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AFC 챔피언스 리그. 전북 로페즈가 베트남 빈즈엉에 강력한 슛으로 첫 골을 넣고 있다.

▲ 전북 첫 골 순간 지난 2016년 3월 1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AFC 챔피언스 리그. 전북 로페즈가 베트남 빈즈엉에 강력한 슛으로 첫 골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전북 현대는 조별리그에서 베트남의 빈즈엉에 2-3으로 패했었다. 그 때문에 전북은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었고, 힘겹게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올 시즌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의 강호' 울산 현대는 태국의 무앙통 유나이티드와 두 차례 맞대결에서 1무 1패를 기록했다. 홈에서는 비겼고, 원정에서는 0-1로 패했다.

이렇듯 동남아시아 축구는 조금씩 아시아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다. 특히, 태국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진출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축구의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축구는 '감동'임을 증명한 베트남의 첫 월드컵 본선 도전기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2017 U-20 월드컵에서 눈길이 가는 팀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지난해 10월 바레인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사상 처음으로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관하는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을 확정 지었다. 첫 경기에서 북한을 2-1로 잡아내며 돌풍의 시작을 알렸고, UAE, 이라크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는 개최국인 바레인을 잡아내며 준결승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베트남 U-20 대표팀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는 베트남판 '축구굴기'의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와 자국 대기업이 손잡고 꾸준히 키워온 황금 세대가 U-20 월드컵 출전을 일궈냈다. 베트남은 2000년대 후반부터 해외 명문 구단(대표적으로 아스널)과 연계해 유소년 교육에 많은 힘을 들였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가며 축구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20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막식에서 대회 슬로건인 '열정을 깨워라(Trigger the Fever)'를 주제로 축하공연을 열리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개막식에서 대회 슬로건인 '열정을 깨워라(Trigger the Fever)'를 주제로 축하공연을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막대한 지원 속에 결실을 본 대표적인 1세대가 베트남 최고의 스타이자 K리그 클래식 강원 FC에서 활약하고 있는 르엉 쑤언 쯔엉이다. 그다음 세대가 2017 U-20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는 베트남 대표팀이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 베트남 팬들이 이번 대회에 큰 기대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2017 U-20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 자국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평가전은 베트남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보여줬다. 한국 입성을 앞둔 지난 10일, 베트남 U-20 대표팀은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과 출정식 겸 평가전을 치렀다. 2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호찌민 통낫 경기장은 만석이었다. 1대 4로 패했지만, '황금 세대'를 응원하는 함성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줄어들지 않았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베트남은 22일 오후 8시 천안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E조 조별리그 1차전 뉴질랜드와 맞대결을 벌였다. 천안 종합운동장은 베트남을 응원하는 관중들로 가득 찼다. 베트남 대사관 차원에서 3000여 명의 대규모 응원단이 경기장을 찾았고, 국내에 체류하는 유학생과 노동자들도 함께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베트남 선수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그라운드를 누볐다. FIFA가 주관하는 국제무대가 처음이었고, 체격 조건에서 뉴질랜드에 완전히 밀렸지만, 문제가 되질 않았다. 한 박자 빠른 패스와 스피드를 앞세워 뉴질랜드 진영을 휘저었고, 과감한 슈팅으로 득점까지 노렸다.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압박을 멈추지 않았고, 공수 전환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 결과 뉴질랜드의 전반전 유효 슈팅 숫자는 0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했지만, 득점과 거리가 멀었다. 특히, 후반 40분의 공격 장면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득칭이 페널티박스 좌측 부근에서 올려준 낮고 빠른 크로스를 달려 들어오던 응유엔 호앙 덕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볼은 골문을 벗어났다. 골문 바로 앞에서 잡아낸 기회였기에 아쉬움이 컸다.

이날 베트남은 뉴질랜드보다 2개 더 많은 17개의 슈팅을 시도했다. 유효 슈팅도 7개나 기록했다. 점유율도 54%를 기록하며, 롱볼 축구를 시도한 뉴질랜드에 앞섰다. 비록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역사적인 첫 승리의 기쁨은 맛보지 못했지만, 첫 월드컵 무대에서 승점을 따내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

베트남은 팀 내 최장신 선수가 182cm에 불과했지만, 뉴질랜드는 185cm가 넘는 선수만 5명이었다. 신체 조건에서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베트남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의 강한 몸싸움에 나가 떨어지더라도 강하게 부딪혔다. 협력 수비를 통해 상대의 슈팅 기회를 차단했고, 공중볼 싸움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해 실점을 막았다.

특히, 골키퍼치고는 매우 단신이라 할 수 있는 168cm의 부이 티엔 중의 활약은 놀라웠다. 뉴질랜드의 주공격 전술이었던 높은 크로스를 수차례 막아냈고, 쳐냈다. 페널티박스 안쪽에서의 강력한 슈팅을 몸을 날려 막아냈고, 자신보다 20cm 이상 큰 선수와 몸싸움도 피하지 않았다.

베트남이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승점을 따내는 과정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다른 경기들과 비교해 훌륭한 경기력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박수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같은 조의 프랑스와 온두라스는 뉴질랜드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지만, 이날과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면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도전은 완벽하지 않은 자들의 희망이다. 베트남은 그 희망의 꽃을 피우기 위해 감동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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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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