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칠레에서 열린 U-17 월드컵은 큰 교훈을 남겼다. 2017 U-20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는 '캡틴' 이상민과 '에이스' 이승우 등이 중심이었던 당시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최고의 성적을 일궈냈다. 브라질과 잉글랜드, 기니와 한 조에 속하면서 조별리그 통과도 장담하지 못했지만, 우리 대표팀은 당당히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첫 경기부터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잡아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브라질은 남미 예선 9경기 출전 8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함께 우승을 이끈 레안드로를 앞세워 승리를 자신했지만, 우리나라 U-17 대표팀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표팀의 기세는 2차전에서도 이어졌다. '미지의 팀' 기니를 맞이해 힘겨운 경기를 이어나갔지만, 후반 막판 오세훈의 극장골에 힘입어 또다시 승리를 따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잉글랜드전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 신경 쓰는 여유를 보이며 0-0 무승부를 거뒀다. 역사상 처음으로 FIFA가 주관하는 국제 대회(남자)에서 브라질을 무너뜨렸고, 조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맛봤다.

우리의 16강전 상대는 벨기에였다. 벨기에는 말리와 에콰도르에 밀리며 조 3위(와일드카드)로 힘겹게 16강 진출에 성공한 팀이었다. 어느 누구도 우리 대표팀이 8강 진출에 실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승리를 당연시하는 자만이 불러온 결과는 뼈아팠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무실점이었던 우리 대표팀은 전반 11분 만에 반 캄프에게 선제골을 내줬고, 후반 22분 베레트에게 추가골까지 내주며 0-2로 무너졌다.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허무했다.   

신태용 감독의 아픔

 20일 전주에서 개막하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지난 16일 팀 훈련을 위해 전주 월드컵보조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

20일 전주에서 개막하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지난 16일 팀 훈련을 위해 전주 월드컵보조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 ⓒ 연합뉴스


U-20 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 감독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첫 번째 아픔은 지난해 1월 카타르에서 열린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이었다. 우리나라는 조별리그 무패(2승 1무)로 가볍게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요르단에 이어 개최국 카타르까지 잡아내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었다. 이미 올림픽 출전 티켓은 거머쥔 상태였지만, 물러설 수 없는 경기였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 때문인지 경기는 손쉽게 풀려나갔다. 우리나라는 전반 20분 만에 권창훈의 선제골로 앞서나갔고, 후반 2분 진성욱의 추가골이 터지며 우승컵이 눈앞으로 다가온 듯 보였다.

그런데 신태용 감독이 욕심을 냈다. 2-0에 만족하지 않았고, 더 많은 득점을 노렸다. 무리하게 라인을 끌어올렸고, 더 공격적인 축구를 주문했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공격이 상당히 느려졌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러자 일본은 허술해진 우리나라 수비를 공략하며, 후반 22분과 23분 연속골을 뽑아냈다. 순식간에 경기는 원점이 됐고, 분위기까지 넘어갔다. 결국, 후반 36분 통한의 역전골까지 내주면서 우리 대표팀은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였다.

두 번째 아픔은 2016 리우 올림픽 본선 무대였다. 전력 차이가 워낙 컸던 탓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신태용호는 피지를 8-0으로 대파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강력한 '우승 후보' 독일과 경기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와 맞대결에서는 권창훈의 왼발이 빛을 발하며 1-0 승리와 조 1위의 기쁨까지 맛봤다.

우리의 8강 상대는 온두라스였다. 온두라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3위로 밀어내며 8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전력이 막강한 팀은 아니었다. 알제리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3-2로 승리를 따낸 이후에는 승리도 없었다. 포르투갈전에서는 선제골을 넣었지만, 집중력에 아쉬운 모습을 드러내며 1-2로 역전패했다. 아르헨티나전 역시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경기 막판 허무하게 동점골을 내주며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우리나라는 2012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메달 획득 가능성이 커 보였다. '기록의 사나이' 손흥민과 황희찬, 권창훈이 이끄는 공격은 국가대표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온두라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우리의 4강 진출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태용호는 온두라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압도적인 점유율과 경기 내용에도 불구하고, 0-1로 패했다. 여러 차례의 결정적인 득점 기회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12골을 넣었던 결정력은 온두라스의 밀집된 수비와 심리전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시아 대회에 이어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도 과정은 훌륭했지만, 결과는 허무했고, 뼈아팠다.

신태용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실패의 경험'

목표 달성을 눈앞에 두고 허무하게 무너진 실패의 경험들이 U-20 대표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대표팀은 환상적인 경기력과 결과를 만들어내며 U-20 월드컵 개막전을 승리로 가져갔지만, 들뜨지 않았다. 승리의 기쁨은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신나는 음악과 흥으로 짧게 나눴고, 곧바로 두 번째 경기인 아르헨티나전에만 집중했다.

아르헨티나는 U-20 월드컵 최다 우승국(6회)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열린 2007 U-20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후에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 열린 지난 대회(2015)에서는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 성적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부진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남미 예선에서 4위를 기록하며 힘겹게 본선 진출에 성공한 데 이어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EPL 유망주를 앞세운 잉글랜드를 맞아 압도적인 점유율과 경기 내용을 보였지만, 0-3으로 완패했다. 운도 따르지 않고 있다.

'에이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가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면서 한국전 출전이 무산됐다. 부상으로 인해 후반전 교체 투입된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골 결정력이 가장 좋은 선수다. 그날 경기에서 드러났다시피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문제는 결정력이기 때문에 마르티네스의 결장은 전력에 큰 손실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아르헨티나는 물러설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와 경기에서도 패한다면,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올 것이 확실하고, 원정이지만 공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잉글랜드전에서 결정력은 아쉬웠지만, 경기력은 상대를 압도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반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 대표팀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신태용 감독은 기니전 승리 이후 "오늘(20일) 승리는 오늘로서 끝난다. 자고 일어나면 아르헨티나전을 준비하기 위해 팀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 것이다. 한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라고 밝혔고, 아르헨티나전을 하루 앞둔 22일 오후 마무리 훈련 이후에는 "첫 경기를 잘해서 아르헨티나전 때는 더 잘할 것이다.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은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것인 만큼, 무조건 승리한다는 가정 하에 경기에 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기니의 경기. 한국 조영욱이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 골은 VAR 시스템을 통한 비디오판독 결과 취소됐다.

지난 20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별리그 A조 대한민국과 기니의 경기. 한국 조영욱이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 골은 VAR 시스템을 통한 비디오판독 결과 취소됐다. ⓒ 연합뉴스


안정적인 모습으로 수비에 대한 불안감을 지워낸 '캡틴' 이상민은 "이제 첫 경기가 끝났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목표로 한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기에서 승리해야 한다. 개막전이었던 기니전 완승은 빨리 잊어버리고, 남은 경기들을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상민은 "2015 U-17 월드컵에서 범했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며 방심과 자만을 경계했다. "당시에는 실력이 아닌 마음가짐이 부족했기에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였다"라면서 "조별리그 통과가 아닌 더 높은 목표를 향한다면, 첫 경기 승리의 기쁨을 자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방심과 자만은 없다. 역대 최고의 재능들이 모인 대표팀이란 평가와 개막전 완승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팀을 상대해야 하고, 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신태용호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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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신태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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