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선의 새 음반 'She Moves On' 표지

나윤선의 새 음반 'She Moves On' 표지 ⓒ 허브뮤직


나윤선은 국내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은 음악인이다. 독일의 명문 재즈 레이블 ACT와 손잡고 발표했던 < Voyage >, < Same Girl >, < Lento > 등 음반들은 유럽 재즈 팬들의 환영 속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4년 만에 공개한 새 음반 < She Moves On >은 그녀의 또 다른 도전을 담은 역작이다. 오랜 기간 활동했던 유럽 대신 미국을 선택, 순회공연과 여행을 통해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잔잔하지만 묵직한 울림의 음악 속에 녹여냈다.

나윤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과장된 기교가 아닌, 물 흐르듯 흘러가는 화법의 목소리는 이번 작품에선 더욱 진한 향기를 뿌리며 다가온다. 재즈, 팝, 블루스 등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선곡은 그녀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만들어줬다.

< She Moves On >에선 그녀의 자작곡 등 3곡의 신곡을 제외하면 모두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음악계의 전설들을 노래했다. 루 리드, 폴 사이먼, 조니 미첼, 피터 폴 앤 메리 등 이름만큼은 친숙한 거장들이 남긴 원곡이지만 그들의 대표곡이 아닌 요즘의 음악팬들에겐 다소 생소한 숨겨진 곡들을 미국 현지 연주인들과의 협연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게 이채롭다.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가 존 존(John Zorn)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췄던 건반 연주자 제이미 샤프트를 중심으로 노라 존스 밴드의 드러머 댄 리서, 최근 주목받는 연주자들인 브래드 존스(베이스), 마크 리보(기타) 등 미국 현지 음악인들과 손잡으면서 만들어낸 자유분방한 미국적 사운드는 그동안 익히 들어왔던 나윤선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때론 격정적이면서 즉흥적인 소리를 담아내 그간 다소 냉철하면서도 정돈된 유럽의 재즈에 기반을 뒀던 전작들과는 차별화된 나름의 전략(?)으로 봐도 좋을 법하다. 이번 신작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은 동명 머릿곡 "She Moves On"이다. 원래 1990년 폴 사이먼의 걸작 음반 < The Rhythm Of The Saints >에 수록된 곡으로 폴의 전 부인이던 "레아 공주" 영화배우 故 캐리 피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아프리칸 리듬을 기반에 뒀던 현란한 타악기의 울림으로 채웠던 원곡과 달리 나윤선의 버전에선 일렉트릭 피아노+기타 등 기본적인 악기의 뒷받침만으로도 훌륭한 소리를 들려준다. 이 곡을 들으면서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그녀의 삶과 나윤선의 음악 여정이 살짝 닮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공교롭게도 해외 유명 레이블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본작이 ACT와의 계약상 마지막 음반이라는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어떤 의미에선 < She Moves On >은 제목처럼 또 다른 길로 향하는 나윤선의 우직스런 재즈 행보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추천곡] "She Moves On", "No Other Name", "Too Late", "Drifting"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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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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