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 두산 베어스는 지난 주말 선두 KIA 타이거즈와의 원정 3연전에서 싹쓸이 승리를 거뒀다. 특히 KIA가 자랑하는 원투펀치 헥터 노에시와 양현종이 등판하는 시리즈에서 스윕을 거뒀다는 것은 두산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두산은 아직 4위에 머물러 있지만 선두 KIA와의 승차가 4.5경기에 불과해 상위권 순위 싸움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두산이 KIA를 상대로 3연승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헥터가 등판했던 19일 경기 대역전승이 컸다. 8회까지 2-6으로 뒤져 있던 두산은 KIA의 마무리 임창용을 상대로 9회에만 5점을 거두며 대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앞선 타석까지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던 최주환은 동점 3점 홈런을 터트렸고, 닉 에반스는 결승점이 된 연속 타자홈런을 작렬했다.

사실 이날 두산은 고졸루키 박치국을 선발로 투입하며 쉽지 않은 경기를 했다. 박치국이 4이닝 5실점으로 물러난 후 두산은 5명의 투수를 차례로 투입하는 물량공세를 펼쳤는데 그 중에는 두산팬들에게 매우 반가운 이름도 있었다. 2010년 10월1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 이후 무려 2412일 만에, 정규리그를 기준으로 하면 2010년 6월 9일 KIA전 이후 2536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오른 '민간신앙' 성영훈이다.

프로 입단 2년 만에 자취 감춘 세계청소년대회 MVP 

 두산 베어스 성영훈 투수.

두산 베어스 성영훈 투수. ⓒ 두산베어스


해마다 많은 선수들이 고교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초고교급 투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프로의 문을 두드리지만 성영훈은 그야말로 '격이 다른 유망주'였다. 덕수고 시절에 이미 '2000년대 서울 지역 최고의 고교 투수'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성영훈은 2008년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에이스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까지 휩쓸었다.

당시 한국팀의 선수 명단을 보면 김상수(삼성), 한치홍(KIA), 오지환(LG트윈스), 허경민, 정수빈, 박건우(이상 두산) 등 오늘날 KBO리그의 스타가 된 선수가 즐비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성영훈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특히 미국과의 결승전에서는 심한 감기 몸살에도 선발 등판을 자처해 7피안타 9탈삼진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물론 당시엔 '투혼'으로 포장됐지만 미래를 생각했다면 그 경기에는 등판하지 말았어야 했다).

2009년 두산에 1차 지명을 받은 성영훈은 5억5000만 원의 거액을 받고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다. 이미 덕수고 시절에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던 괴물 투수의 등장에 두산 팬들은 커다란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성영훈은 프로 첫 시즌 9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3.38이라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고교 시절부터 따라 다니던 고질적인 팔꿈치 통증이 원인이었는데 이를 방치한 게 더 큰 화를 부르고 말았다.

2010년 재활과 복귀를 병행하면서 15경기에서 1패 4.96을 기록한 성영훈은 그해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뛰어난 구위를 선보였다. 하지만 2010년 10월 11일 4차전에서 팔꿈치에 심한 통증을 느낀 후 강판됐고 팔꿈치 인대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프로 입단 2년 만에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성영훈은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성영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소년 대표 동기들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2013년 1월 소집 해제된 성영훈은 곧바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지만 이번엔 어깨가 말썽이었다. 어깨 통증으로 다시 2년을 허비한 성영훈은 2015년 6월 어깨 수술을 받았다. 1군은커녕 퓨처스리그에서조차 등판 소식이 없는 성영훈을 두산팬들은 언젠가부터 '민간신앙'이라 불렀다. 수년째 선수 명단에 포함돼 있지만 정작 마운드에서는 보기 힘든 선수라는 의미였다.

팔꿈치와 어깨 수술 후 오랜 재활 끝에 1군 복귀

매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복귀를 위한 재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주던 성영훈은 작년 5월 kt 위즈와의 퓨처스리그 경기를 통해 드디어 마운드로 돌아왔다.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던 성영훈의 실전 등판에 두산팬들은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두 타자를 상대한 성영훈은 볼넷 하나와 삼진 하나를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 왔는데 시속 148km의 공을 뿌릴 정도로 구위가 많이 회복됐다.

하지만 성영훈은 오랜만의 실전 등판으로 재활과 등판을 반복하다가 끝내 1군 무대에 돌아오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시범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한 채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성영훈은 6경기에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7.27을 기록했다. 구위가 좋은 날엔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다가도 난타를 당할 때는 한 경기에 3~4점씩 내주며 허무하게 무너지곤 했다. 다만 6경기에서 사사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제구는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두산은 마이클 보우덴의 대체 선발로 투입했던 홍상삼이 무너진 후 박치국을 다음 대안으로 정했고, 19일 박치국의 자리였던 롱릴리프를 맡기기 위해 성영훈을 1군으로 콜업했다. 정규리그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6년 11개월 만의 1군 나들이였다. 그리고 성영훈은 박치국이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내려 오면서 1군의 향기를 느낄 틈도 없이 19일 경기에서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1-5로 뒤진 5회 박치국을 이어 두산의 2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성영훈은 4명의 타자를 상대해 1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빠른 공이 시속 143km에 머무르는 등 아직 구위가 완벽히 올라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자신이 책임진 한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비록 승리나 세이브, 홀드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팀이 9회에 역전승을 했으니 성영훈도 승리의 작은 디딤돌 하나 정도는 세운 셈이다.

지난 2009년 괴물 투수 성영훈이 베어스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두산팬들은 성영훈의 보직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당시 성영훈의 보직에 대해 궁금해 하던 사람들은 이제 스물 여덟이 된 성영훈이 건강하게 1군 마운드에 올랐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마운드에 오래 서는 것. 성영훈을 '민간신앙'이라 부르며 그의 복귀를 기다리던 두산팬들의 오랜 바람이자 프로 9년 차가 된 성영훈의 목표이기도 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두산 베어스 성영훈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