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2일 오전 축구협회에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대표팀 명단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2일 오전 축구협회에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대표팀 명단 발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호의 러시아행을 좌우할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6월 13일 카타르와 벌일 최종예선 8차전에 참가할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어쩌면 슈틸리케호라는 이름 하에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승부수라는 점에서 팬들의 시선이 모인다.

슈틸리케호는 현재 벼랑 끝에 놓여있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이 가능한 A조 2위 자리를 간신히 지키고 있지만 최종예선들어 거듭된 졸전으로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신뢰는 어느덧 땅바닥까지 추락한 상태다. 최종예선이 불과 3경기만 남겨놓은 가운데 이제부터는 남은 경기가 모두 결승전이나 다름없다. 특히 마지막 2연전이 하필 최대 난적인 이란-우즈벡과의 맞대결인 만큼 A조 최약체인 카타르를 상대로 어떻게든 승점 3점을 챙겨야 그나마 가시밭길을 피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최종예선 들어 몇 차례나 경질 압박에 시달렸다.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일단 축구협회로부터 조건부 유임을 보장받았지만 만일 카타르전마저 놓치거나 내용이 좋지 않다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이란-우즈벡전까지 치르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슈틸리케보다 더 큰 피해는 지난 3년의 시간을 소득 없이 허비하고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조차 좌절될 위기에 몰린 한국축구다.

슈틸리케호의 절박한 처지를 반영하듯 이번 대표팀 명단에는 또다시 지난 3월 중국-시리아와의 2연전 명단과는 다른 변화를 의도한 대목이 엿보인다. 제주의 황일수나 이창민같이 슈틸리케호에 처음 이름을 올리는 새로운 선수들이 승선하는가 하면, 팬들과 언론이 적극적으로 발탁을 지지해왔던 중동파 이명주도 마침내 이름을 올렸다. 풍부한 경험을 자랑하는 이근호, 이청용, 박주호 등의 베테랑들도 오랜만에 가세하여 신구조화를 시도한 부분도 돋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몇몇 선수들의 이름이 바뀌었지만 정작 이들이 실전에서 얼마나 중용될지는 미지수다. 기성용, 손흥민, 지동원, 남태희, 홍정호, 장현수 등 실제 주전급이 유력한 선수들의 면면은 정작 그대로이고 전반적으로 해외파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팀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너무 무리한 변화는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과연 이번에도 최상의 선수구성을 끌어냈는지는 평가가 엇갈린다.

'주관적 선호도+해외파 우대'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발 명단

최종예선에 접어든 이후로 슈틸리케호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문제는 팀이 나아가고자 하는 확실한 지향점이 불분명하다는 '모호함'에서 비롯된다. 월드컵 본선행이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슈틸리케호가 어떤 스타일과 콘셉트로 세계축구와 경쟁할지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 심지어 동일한 선수선발 내에서도 지향점이 상충하거나 어긋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현상은 슈틸리케 감독의 팀운영 방식이 확고한 원칙이나 철학에 기반을 두기보다 그때그때의 '상황 논리'에만 맞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번 선수 선발만 해도 이청용과 박주호의 발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들을 기용하겠다는 슈틸리케호의 원칙에는 맞지 않는 선택이다.

지난 3월 중국-시리아전 당시에도 같은 이유도 명단에서 제외됐던 이들은, 이들의 소속팀 내 상황이 그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음에도 이번에는 버젓이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 원정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베테랑으로서의 '경험'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랬다면 다른 선수들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어야 할 사례들은 무시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받아온 슈틸리케의 '주관적 선호도+해외파 우대'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2일 오전 축구협회에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대표팀 명단 발표 후 물을 마시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2일 오전 축구협회에서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 대표팀 명단 발표 후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카타르전을 앞두고 최전방 공격진을 완전히 물갈이한 것도 불안감을 자아낸다.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A였던 이정협이 부상으로 낙마하며 변화는 불가피했지만 '후반 조커'로 꼽히던 장신 공격수 김신욱까지 제외한 것은 의외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진을 지동원, 이근호, 황희찬으로 구성했다. 지동원은 이정협과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득점력이 떨어진다. 지난 시리아와 이란 원정에서도 원톱으로 기용되었으나 골을 넣지는 못했다. 이근호도 2선이 더 잘 어울리는 선수다. 황희찬이 그나마 원톱에 가장 가깝지만 A대표팀에서 아직 주전으로 검증된 선수는 아니다. 무엇보다 세 선수 모두 조금씩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공간 침투나 연계플레이를 통하여 찬스를 만들어내는 유형의 공격수이고, 문전에서 선 굵은 포스트플레이를 펼쳐줄 수 있는 타깃맨 유형의 최전방 공격수가 없다.

김신욱이 대표팀에서는 단순한 '헤딩 셔틀'로 전락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용될 수 있었던 것은 공중볼 장악에 대한 확실한 희소성 때문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플랜 A라고 할 수 있는 '점유율 축구'가 최종예선에서 사실상 전술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후반 공격의 활로를 풀어준 것이 김신욱을 활용한 공중전이었다.

비록 최종예선을 거듭하며 상대팀에게도 김신욱의 활용 패턴이 노출된 측면은 있지만, 그래도 김신욱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상대에게 주는 위압감의 차이는 크다. 설사 김신욱이 아니라고 해도 타깃맨을 활용할 의지가 있었다면 K리그에서 최근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양동현이나 헝가리 리그에서 조금씩 폼이 올라오고 있는 석현준 카드도 고려해볼 수 있었다. 총력전이 요구되는 카타르전에서 하나라도 더 다양한 필승 카드가 아쉬운 시점에 슈틸리케 감독은 또다시 선택지 하나를 스스로 지우는 자충수를 범한 셈이다.

감독은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소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 문제는 투명한 원칙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감독 개인의 주관적인 잣대로만 밀어붙이는 소신은 독선과 아집으로 전락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다. 슈틸리케 출범 이후 2년 6개월이 넘었는데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한국대표팀이 뚜렷한 컨셉을 잡지 못하고 구성원들이 감독의 축구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감독 본인의 문제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카타르전은 슈틸리케 감독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축구의 운명까지 걸려있는 단두대 매치다. 이번 선수명단을 봤을 때 슈틸리케 감독이 여전히 그 책임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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