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연출의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 포스터.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다뤘다.

리들리 스콧 연출의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 포스터.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다뤘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인간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군가의 피조물일까, 그게 아니면 수만 년에 걸친 생물학적 변화의 산물일까? '존재'와 '실존'에 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한 명 예외 없이 떠올렸을 의문이다.

인간이 창조된 존재인지, 진화의 과정에 있는 고등한 생물인지를 놓고 벌어진 설왕설래는 인류역사상 가장 뜨겁고 주요한 논쟁 중 하나였다. 이른바 '창조론-진화론 논쟁'. 수많은 신학자가 이 논쟁에 끼어들어 창조론을 옹호했고, 자연 과학자인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1882)과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1744~1829)는 탁월한 연구 성과로 진화론에 힘을 실었다.

수 세기에 걸친 인간 세상 화두였으니, 문학과 영화에서도 이 두 가지 학설이 갈등하고 충돌했던 것은 불문가지.

학구적 정열을 간직한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영화감독은 자기 뜻을 문학·영상적으로 정리해 독자와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이런 '문제적 작품들'은 한쪽의 찬사와 동시에 다른 한쪽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리들리 스콧은 '진화론'을 경멸한다?

 인간과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AI 월터. 리들리 스콧 감독은 AI를 '창조론 옹호'의 영화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인간과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AI 월터. 리들리 스콧 감독은 AI를 '창조론 옹호'의 영화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미 35년 전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디스토피아가 된 미래사회와 인간의 형상으로 제작된 레플리칸(Replicants·복제인간)이 겪는 혼란과 갈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리들리 스콧. 올해 여든 살이 된 그의 최근작이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다.

이 작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여러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어찌 보면 후속편으로도 읽힌다. 영화의 도입부. 인간과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AI인 월터(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당신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요?"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이에 관한 답변을 생략한 채 전개된다.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시오"라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팔순 노장의 '철학적 질문'에 당신은 뭐라 답할까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 장면. 이 팔순의 노장이 메가폰을 잡은 이유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한 장면. 이 팔순의 노장이 메가폰을 잡은 이유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프로메테우스>는 아주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DNA가 지구의 단세포생물을 만들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는 진화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며 창조론의 손을 들어주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논쟁을 부를 소지가 다분한 영화적 설정이다.

리들리 스콧의 창조론 옹호와 지지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도 연속해 드러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을 외부적 환경변화에 한없이 무기력한 동물로 묘사하고, 우리가 통상 '인간의 특질'로 이해하고 있는 동정심과 합리적 결단력을 AI에게 부여하는 장면 등을 통해서다. 여기엔 "진화의 결과가 이 정도라면 참혹하지 않은가?"라는 환멸의 질문이 깔렸다.

사실 리들리 스콧 정도의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면 갑자기 튀어나온 우주 괴물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유치한 권선징악의 결말이 아닐 것이란 정도는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에 이은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그 예상을 뛰어넘어 무겁고 난해하기 짝이 없다.

팔순의 영화감독, 아니 이제는 '철학자'로 불러도 좋을 리들리 스콧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클래식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결말을 통해 자신이 '변하지 않을 창조론자'라는 걸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게 어떤 장면이냐고? 영화관에서 확인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 한 가지. 합리와 과학을 신뢰하는 유럽에서 태어나 생활해온 리들리 스콧이 합리와 과학에 더욱 근접한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에 경도된 이유는 뭘까? 그가 독실한 종교인이라서? 그게 아니면,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나이이니 곧 만날 신(神)과의 우호적 관계설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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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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