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의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 <옥자>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 ⓒ 넷플릭스


분명 화제작이다. 전 세계 관객들에게 공개되기 전부터 작품 외적으론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제작했다는 이른 바 '넷플릭스 논란', 내적으론 <괴물> <살인의 추억> 등으로 이미 해외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19일 첫 공개 직후 다양한 평이 나오고 있고, 양분되는 양상이다. 거대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탄생시킨 유전자 조작 동물 옥자와 그를 아낀 소녀 미자의 이야기. 봉준호 감독은 일찌감치 "두 존재의 사랑이야기로 생각했다"며 일말의 힌트를 줬지만 여태껏 그의 전작이 품은 함의를 생각하면 어불성설이다.

생태주의 영화인가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로만 보면 <옥자>는 유전자 조작(GM, gene manipulation)의 위험성과 그걸 이용하는 인류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십 수 년 간 옥자를 키워온 미자의 정서와 대비시켜 비극을 극대화 하는데 그렇게 해서 이 영화를 그냥 가족주의로 치부하기엔 찜찜하다.

옥자, 미자와 함께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이들의 면모를 보자. 미란다의 CEO 루시(틸다 스윈튼)와 그의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동물해방전선(A.L.F) 팀원들은 하나같이 뭔가 부족해 보이고 결핍된 인물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능력은 있지만 치밀하지 않으며 하다못해 웃기기까지 한다. 현실성을 다소 떨어뜨려 관객에겐 일종의 거리감이 들게 하는데 이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 속 캐릭터들과도 정서적으로 이어진다. <괴물>에서도 유괴당한 조카를 찾기 위해 뭉친 이들의 면면을 보자.

퇴물 국가대표 출신 양궁 선수와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 백수. 주류에서 철저히 배제된 이들의 활약이 구멍 난 국가 시스템과 맞물리며 영화의 주제가 훨씬 강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영화 <옥자>의 한 장면.

영화 <옥자>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괴물>이 한국적이었다면 <옥자>는 그 규모를 그대로 키워 국제적이 됐다. 비주류 캐릭터는 동물사랑 국제단체가 됐고, 국가시스템의 민낯은 무한 이익을 추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치환됐다. 단순히 <옥자>를 생태주의 영화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천민자본주의와 여기에서 발버둥 치는 비주류 바라보는 감독 특유의 애정이 담겨있다.

도전이 아닌 발버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동물해방전선을 비롯해 영화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힘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힘을 지닌 남성들이 아닌 어리고 작은 여성, 허약한 채식주의자들을 함께 제시한 것 역시 <괴물>에서 묘사한 캐릭터들과 닮아 있는 지점이다.

이상하게도 평면적인  

 19일 제70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옥자> 출연 배우들이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

19일 제70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옥자> 출연 배우들이 공식 상영에 앞서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 ⓒ Cannes Film Festival


전작 <설국열차>까지 봉준호 감독은 보이지 않는 주류 시스템에 천착해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걸 교란시키고 찌르는 걸 즐겼다. 성별, 사회적 지위, 나이를 적절히 변주하며 영화 안에 다양한 상징을 심어놓는 게 봉준호 감독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이런 면에서 <옥자>를 다시 보면 일말의 아쉬움이 분명 있다. 글로벌 기업 미란도 인원들과 동물해방전선 요원들, 미자는 개별적으론 충분히 재밌고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이들이 서로 연합하고 대립할 때의 갈등 구조는 다소 평면적이다. 이익 추구에 철저한 기업, 빼앗긴 옥자를 찾으려는 미자, 동물해방이 지상과제인 해방전선 요원들 간에 보다 긴밀한 고리가 아쉽다.

다만 이에 대해 20일 한국 기자단과 만난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서 약자끼리 연대를 다뤘고 약한 이가 더 약한 이를 구하는 구조가 기본이었는데 <옥자>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구축한 건 아니었다"며 "옥자라는 동물을 둘러싼 세 그룹, 그들 관점에 대한 이야기라는 간단한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이 말대로라면 <옥자>는 '연대'보다는 '차이'에 방점을 찍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옥자라는 독특한 동물, 그들을 둘러싼 세 그룹이 있는데 미자는 옥자의 가족과 같다면, 옥자를 제품으로 보는 기업 미란도의 관점, 그리고 옥자 구출을 이상의 실현으로 보는 동물해방전선의 관점이 있다.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 세 집단의 충돌을 다루려고 했다. 그 배경엔 미란도가 있는 거고. 우리 (현대인) 모두 거대한 회사들 틈에서 살고 있지 않나." - 한국 기자단 간담회 당시 봉준호 감독 발언 중 

캐릭터 묘사에선 좀 더 분명한 아쉬움이 있다. 가장 걸리는 게 옥자의 정체성에 대한 균형감이다. 영화 초반 주요 위기에 대처하는 옥자가 적극적이고 사고할 줄 아는 동물이었다면, 후반부엔 소극적으로 그려진다. 그 간극에 의문이 들었다.

몇 가지를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봉준호 영화의 세계를 사랑하는 이들 입장에서 <옥자>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간 이기심의 산물인 '괴물'이 적대 세력(영화 <괴물>)이었다가 이젠 인간의 친구가 됐다(<옥자>). 우린 더욱 거대해진 괴물과 싸우게 됐고, 봉준호는 그것을 향해 나아갔다. 이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천박한 자본에 대처하는 봉준호식 저항기로 읽어불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봉준호 월드는 유효하다.

평점 : ★★★(3.5/5)

옥자 칸영화제 봉준호 틸다 스윈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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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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