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기만 하던 일본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이타테(飯舘村) 촌이 암흑으로 바뀐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방사능 누출 피해를 입으면서였다. 일본 정부는 사고 초기 후쿠시마 제1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에만 대피명령을 내렸다. 부실한 대처였다. 방사능 물질은 바람을 타고 사고 4일 만에 이타테 촌을 뒤덮었다. 약 한 달이 지나고서야 이타테 촌은 계획적 피난 지구로 지정됐다. 이미 주민들은 방사능에 피폭당한 뒤였다.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토요다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스틸컷.

▲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토요다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스틸컷. ⓒ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영화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5년이 지난 이타테 촌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개봉했다. 사고 발생 후 이타테 지역의 낙농가의 모습을 <유언>(2014)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담았던 토요타 나오미 감독의 후속 작품이다. 토요타 감독은 2015년 3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주민들과 함께 이타테 촌을 찾아 마을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고 발생 5년이 지났지만 이타테 촌은 쓸쓸함 그 자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숯을 만들던 가마엔 방사능 때문에 더 이상 이 지역의 나무를 사용할 수 없다.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던 넓은 고사리 밭은 추억일 뿐이다. 산에서 채취해서 먹었던 나물들은 이제 기억에만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한평생 살았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자녀들은 후쿠시마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렇게 5년 전 대가족이었던 이들은 이젠 뿔뿔이 흩어져 산다. 이타테 촌을 재건해도 마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원전의 피해가 불러온 비극이다.

그럼에도 센다이(川內) 원전을 재가동한다는 소식은, 대재앙을 겪었음에도 경각심을 망각한 정부의 무시무시한 안전불감증을 보여준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 숲의 세슘(방사능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대학교수의 한 마디는 원전 때문에 피해를 입은 자연이 외치는 절규이자, 감당해야 할 사람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제염 작업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흙이 담겨 산더미처럼 쌓인 검은 포대 더미는 공포 그 자체다. 이렇게 원전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 뿐 아니라, 긴 시간동안 일궈온 마을의 유산과 전통문화, 먹거리, 미래까지 통째로 앗아갔다는 것을 영화는 여과없이 보여준다.

원전이 전체 전력 생산의 약 30%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에게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경주 지진으로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커졌다. 자연스럽게 탈 원전에 관한 목소리도 높아졌고 대선후보들의 공약에도 포함됐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원전 단계적 감축 ▲월성 1호기 폐쇄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등 탈 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력 생산의 비중이 높은 만큼, 공약을 실현해가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과 여러 가치들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타테 촌이 감수한 이 비극을 봤다면 말이다.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토요다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스틸컷.

▲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토요다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스틸컷. ⓒ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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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고향 후쿠시마 서울환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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