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뺑소니 사고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메이저리거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18일 오후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음주뺑소니 사고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메이저리거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지난 18일 오후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음주 뺑소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야구선수 강정호가 2심에서도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강정호 개인으로서는 이번 판결로 야구선수로서의 재기 여부가 미궁속으로 빠지게 됐고, 사회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음주 관련 범죄에 본보기를 보인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재판장 김종문)는 18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음주운전·뺑소니)로 재판에 넘겨진 강정호의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측에 원심과 같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변경할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았다."며 피고측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정호는 지난해 12월 혈중 알코올농도 0.085% 상태로 운전을 하다가 서울 삼성역 사거리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사고를 낸 뒤 도주한 혐의로 입건됐다. 이후 과거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실이 추가로 알려지며 팬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재판부는 지난 3월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았고 강정호는 이에 불복하여 2심에 항소했다.

읍소한 강정호, 단호한 재판부

강정호가 곱지않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결정한 이유는 바로 메이저리그 선수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소속인 강정호는 미국에서 선수로 활동하기 위하여 취업비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지난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1심 판결에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대사관으로부터 비자 갱신 신청을 거부당했다.

강정호 측은 항소에서 "징역형이 유지될 경우 비자 발급이 불가능해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없다"면서 "이는 사실상 야구를 접으라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으며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라고 주장하며 벌금형을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강정호의 사건을 수사한 검찰 측도 이례적으로 1, 2심에서 모두 벌금형을 구형하며 오히려 강정호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당초 검찰이 약식기소로 적당히 넘어가려던 강정호 사건을 재판에 회부한 것이나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징역형을 선고한 것도 사법부의 전례로 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만큼 재판부도 강정호의 죄질이 엄중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이해할수 있는 대목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면서 야구의 '합의 판정'을 비유로 든 것도 흥미롭다. 재판부는 "야구의 비디오 판독도 불분명하다면 원칙적으로 1심의 판정을 존중하는 걸로 안다"면서 "이 사건도 여러 양형 조건 등을 종합할때 원심의 판단이 재량의 합리적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본질적으로 살펴봤을때 사건의 내용이 달라지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게 없는만큼 원심의 판결을 뒤집을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야구에 비유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 것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에 재판부는 그간 강정호가 저지른 일련의 행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지적했다. 강정호는 2009년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만 원, 2011년 벌금 300만 원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음주운전을 했다. 특히 세 번째 적발 당시에는 동승자인 중학교 동창이 사고를 낸 것으로 진술했지만 블랙박스 분석 결과가 나온 뒤에 진술을 번복했다. 강정호 본인의 운전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반대 차선까지 파편이 튀면서 택시와 다른 차량까지 파손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꼬집었다.

강정호 측은 충분히 반성하고 자숙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강정호 측이 감형의 명분으로 내세운 '기부'나 '피해자 합의' 등의 요소는 "이미 1심 선고에서 반영된 것으로 항소심에서 새로 감안해야할 양형 조건이 될 수 없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명 야구선수이자 메이저리거라는 특수성을 앞세워 감정에 호소하려던 강정호 측에게 재판부가 단호하게 반박한 셈이다.

이번 판결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단 강정호 개인으로서는 메이저리거로서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진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수단으로 세 번째 대법원 상고라는 카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1, 2심 판결이 뒤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비자를 발급받지 못할 경우 최소한 메이저리거로서의 활동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번 사태로 실질적인 가장 큰 피해자가 된 피츠버그 구단이 강정호의 거취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관건이다. 피츠버그는 현재 강정호를 제한선수 명단(Restricted list)에 올려두어 급료를 지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 유력해진만큼 이제는 출같은 최후의 수단을 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만일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경력이 중단된다면 한국으로 복귀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이마저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는 메이저리거 신분이라 한국야구위원회(KBO) 측에서 강정호의 음주운전에 별도의 징계를 내리지는 못했지만 만일 국내 선수 신분으로 돌아온다면 먼저 상벌위원회가 논의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 강정호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가 가히 최악이라고 할만큼 추락한 상황이라 설사 KBO로 돌아올 길이 열린다고 해도 정상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명인에게 관대한 시대는 지났다

강정호 개인의 거취를 떠나서 이번 사태와 판결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역시 유명인의 사회적 물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유명 스포츠스타들의 그라운드밖 일탈이나 음주관련 사건사고가 해마다 끊이지않고 있음에도 그동안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으로 오히려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강정호가 경찰수사 이후 "야구로 속죄하겠다"는 발언이나 재판에서 언급된 "메이저리거로서의 국위선양"같은 주장들은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들의 시대착오적인 사회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하지만 이번 강정호 사건을 통해 더 이상 '유명인'이라는 신분이나, "OO만 잘하면 대중이 다 봐주겠지"라는 낡은 인식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대다수 팬들은 강정호에게 야구를 잘하는 것보다는 진심 어린 속죄와 반성을 원했다.

만일 강정호가 이번 항소심을 통하여 형량을 감형받고 비자를 발급받아 다시 메이저리거로 뛸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팬들은 그것을 국위선양이 아니라 '국제망신'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국내 스포츠계의 무분별한 도덕적 해이에 제동을 거는 작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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