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와 아영이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나와 아영이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 비아신픽처스


<컴, 투게더>는 '함께 가자'는 의미의 제목과 가족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도 쉽게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는 해고자, 엄마는 카드사 영업사원, 딸은 스무 살 재수생 캐릭터라는 것도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신동일 감독은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끄집어내 관객에게 내보인다. 새롭지 않은 것에서 출발해 개성 있고 세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이번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신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컴, 투게더>도 장면마다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영화는 엄마 미영(이혜은)의 카드영업 일을 세세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그녀가 일상에서 겪는 곤란과 어려움을 관객에게 이입시킨다. 관객은 그녀의 일상을 보면서 공감을 느끼고 동일시하게 된다. 이것은 감독과 영화 관련자들이 그만큼 사전 취재를 꼼꼼히 하고 그렇게 취한 정보와 사실을 이야기 안으로 풍부하게 끌어들였음을 느끼게 해준다.

아빠 범구(임형국)와 딸 한나(채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각 장면은 단 한 컷, 한 신(Scene)도 대충 찍히거나 만들어진 것이 없다. 호준(김재록 분·신동일의 전작 <방문자>의 주인공 대학강사 호준이 이 작품에도 등장한다)이 범구에게 총장에게 따지러 같이 가달라고 하는 장면이나 범구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호준을 찾아다니는 모습, 범구와 낯선 남자들이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우스꽝스러운 장면, 한나가 "내 앞에 한 명만 죽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장면, 미영이 자기를 물 먹이는 커플과 갈등을 겪는 모습 등은 엇비슷한 소재와 주제의 한국 영화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틀 안에서 감독 자신이 잘 알고, 잘 조율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창조해내 성실하고 힘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미영이 고객에게 카드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영이 고객에게 카드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비아신픽처스


처음엔 각각의 가족 구성원이 사회적인 관계에서 맞닥뜨리는 좌절과 불안, 어려움이 가족관계를 좀먹고 상처를 준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모든 것에서 실패한다고 해도 돌아갈 곳은 가족뿐임에도 서로에게 소홀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미영이 다부진 워킹맘인 것에 비해, 범구와 한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전작 <반두비>(2009)의 주인공 민서(백진희)가 발랄하고 똑똑하고 자기표현에 스스럼이 없는 여고생이었다면 한나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모범생이다. 범구도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되면서 억눌리고 좌절한 가장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이들에게 사건이 절정에 치닫을수록 셋을 추동하는 힘은 뜻밖에도 '죄책감'이다. 엔딩에 다다를수록 인물들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각 장면이 짧게 끊기면서 세 사람의 한때가 교차편집돼 그려진다. '개미들의 무한경쟁'으로 지옥이 돼버린 한국사회에서 죄책감은 보기 드문 귀한 감정이다. 남이야 어찌되건 나부터 살고 보자는 판이 된지 오래된 염치없는 공동체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은 많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토도로프의 말처럼 "죄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죄라고 생각하고 무고한 자들만이 죄를 느낀다". 영화를 보며 주인공들은, 또 나는 어느 쪽일까, 라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줌의 위로를 건네다

영화 예술은 타 장르에 비해 비교적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고 공동작업이라는 특성상 한편 한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세계 어디서나 한두 편 만들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흔히 있다. 영화산업은 이런 이들의 열정을 빨아먹고 성장한 괴물이다. 그런 만만치 않은 환경에서 신동일 감독은 벌써 장편만 네 번째 영화를 만들어냈다.

유산계급에 대한 '빈자의 복수'라는 독특한 은유를 담고 있는 첫 작품 <나의 친구, 그의 아내>로부터 시작해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논쟁적 소재를 처음 스크린에 담아낸 <방문자>를 거쳐, 여고생과 이주 노동자의 우정을 통해 한국사회의 편견과 폭력을 드러낸 <반두비>까지 어느 것 하나 예외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높은 완성도를 지닌 사회파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다시 '디렉터스 체어'에 앉기까지 7년이 걸렸다. 평범한 일상과 흔한 캐릭터에서 예외적인 설정과 사건을 끌어내는 솜씨는 여전하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 비아신픽처스


그의 작품에선 권력자와 약자가 늘 등장한다. 전자가 후자를 착취하고 억압하지만 모두가 갇혀 있는 개미지옥 안에선 똑같이 약자이고 노예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적을 식별하기 어렵고 진실은 단순함에도 알아보기 힘들며 거대한 권력의 작동자를 알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전 작품은 우울한 비전 대신 언제나 희망을 슬그머니 꺼내놨다. 그리고 그가 꺼낸 희망은 싸구려가 아니다.

<컴, 투게더>에서도 역시 담담하게 희망을 말한다. 미영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범구를 격려하고, 범구도 "7년간 열심히 일했으니 쉬어도 된다"고 미영에게 말한다. 이 가족에게 보장된 장밋빛 미래는 없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우리의 모습 같아 더 마음을 파고들며 한 줌의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닐까.

컴투게더 독립영화 신동일 이혜은 신용불량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