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은 매년 TV 시리즈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1월 개봉한 브래드 피트와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영화 <얼라이드>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톰 하디가 주연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은 영·미 신작 드라마 <타부>도 1800년 런던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또 지난 18일 개봉한 <이터너티>도 19세기부터 100년에 걸친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다.

시대극이 사랑받는 이유는 현재의 직설적이다 못해 노골적인 표현들과 총천연색의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아해 보이고 은유적이며 톤 다운된 화면에 끌리기 때문이 아닐까? 시대극 중 특히 로맨스 작품들은 전 세계의 여성들을 수십 년 넘게 설레게 했다. 어쩌면 현대와는 다른 따뜻하고 숨 막히게 다정한 표현들이 현대의 로맨스 작품들보다 오랜 시간 가슴속에 남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각종 영화화 혹은 TV 드라마로 각색된 시대극 작품들을 소개해보겠다.

[하나] <오만과 편견> (1995·2005)

 영화 <오만과 편견> 포스터

영화 <오만과 편견> 포스터 ⓒ UIP코리아


소설 <오만과 편견>은 <신부와 편견>, <오스틴랜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 <브리짓 존슨의 일기> 등 각종 오마주 영화와 TV 시리즈들이 제작됐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 작품이다. 자상하고 배려심 넘치는 아버지와, 딸들을 시집보내기 위해 모든 삶의 초점이 맞춰진 어머니, 무려 다섯이나 되는 너무나도 각기 다른 베넷가의 딸들이 본 작품의 주인공이다. 특히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한 엘리자베스와, 부유하고 명망 있지만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다아시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만', 그리고 다수의 여자들이 가진 '편견'. <오만과 편견>은 서로 강하게 끌리지만 서로의 고집에 휩싸여 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연인 사이에 흔히 발생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풀었다.

1995년 BBC에서 6부작 시리즈로 방영됐는데, 60년대와 80년대에 방영됐던 TV 시리즈에 이어 세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피츠윌리엄 다아시로 콜린 퍼스가 열연했는데, <브리짓 존슨의 일기>에 또다시 다아시로 캐스팅된 이유도 본 작품 덕분이라고 한다. 영원한 다아시로 불릴 세상에서 수트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 콜린 퍼스의 <오만과 편견>에 빠져보는건 어떨까?

조 라이트 감독이 처음으로 키이라 나이틀리와 함께한 작품으로, 후에 <어톤먼트>,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함께 합을 맞추었다. TV시리즈가 고전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본 영화는 좀더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구현됐다.

[둘] <센스 앤 센서빌리티> (1995·2008)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 ⓒ Columbia Pictures


작가 제인 오스틴의 또 다른 베스트 셀러로 손꼽히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 본 작품에는 분별력 있고 감정을 삭힐 줄 아는 언니 엘리노어와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며 충동적이기까지 한 여동생 마리엔이 눈앞에 닥친 현실적 고난에 부딪치며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얽히고 설킨 각종 인간관계와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사회적 관념들을 두 자매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본 작품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선보였고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1995년 <색,계> <브로크백 마운틴><와호장룡>의 이안 감독이 연출하고, 여주인공인 엠마 톰슨이 각색을 맡아 먼저 만들어진 영화가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미국작가 조합상등에서 각색상을 모조리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모두 수상했다. 또한 화려한 배우진들이 주연으로 포진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이 마리안 대쉬우드 역에, <해리포터>의 '스네이프' 캐릭터로 한국 관객에게 잘 알려진 앨런 릭먼이 브랜든 대령 역에, <노팅 힐>의 휴 그랜트가 에드워드 페라스 역에 캐스팅됐다. 1천6백만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된 본 영화는 전미 4천318만2776달러, 월드와이드 1억3458만2776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대중성까지도 움켜쥐는 성공을 이루었다.

영화로서의 큰 성공을 뒤로하고 2008년 BBC에서 3부작 미니 TV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오만과 편견>, <리틀도릿>, <브리짓 존슨의 일기>의 각본가 앤드류 데이비스가 각색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분별력 있는 맏언니 엘리노어 역에 헤이티 모라핸이,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동생 마리엔 역에 채러티 웨이크필드가 열연했다. 완벽히 상반되는 두 자매의 사랑 방법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셋] <설득>

 드라마 <설득> 포스터

드라마 <설득> 포스터 ⓒ ITV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설득>도 1995년과 2007년에 각기 영화화, 드라마화됐다. 가세가 기울어진 엘리엇 가문의 주인이자 자존심과 허영만 남은 남작 엘리엇의 둘째 딸 앤 엘리엇이 본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앤은 청년 프레드릭 웬트워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안정되지 못한 생활과 조건 등의 이유로 말리는 주변인의 설득으로 파혼한다. 빅토리아 시대 때 혼기가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던 그녀가 명성과 지위를 드높이고 돌아온 프레드릭 대령과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본격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설득에 휘말려 진정한 사랑을 잃어버린 앤과, 믿었던 사랑에 배신당해 괴로워 하는 남주인공 프레드릭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과연 그녀는 어떤 결단과 선택을 내리게 될까?

1995년에 개봉한 영화 <설득>은 <노팅 힐>의 감독 로저 밋첼이 연출하였고, <타임>, <뉴욕 포스트> 등에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인공 앤으로는 아만다 루트가, 프레드릭에는 <고스트 라이더>의 시아란 힌즈가 열연했다. 또 2007년 ITV 에서 방영된 드라마 <설득>은 영국에서 540만이라는 높은 시청자수를 기록하였다. 평단으로부터는 안타깝게도 엇갈린 평을 받으나, 분명 자꾸 반복해서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넷] <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 (Lost in Austen 2008)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 포스터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 포스터 ⓒ ITV


영국 ITV network에서 방영된 4부작 미니 TV시리즈로, 제목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오만과 편견을 오마주해 만들어진 드라마다. 특출나게 예쁘지도 성공하지도 못한 21세기 여성 아만다가 본 작품의 주인공. 그녀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주인공 마크 다아시와 같은 연애 상대를 꿈꾸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평볌한 런던의 싱글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오만과 편견>의 세계로 떨어지게 되고 꿈에 그리던 다아시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모든 여성이 한번쯤은 상상했을 법한 환상 같은 이야기가 현실처럼 느껴질 수 있었던 건, 드라마의 배경으로 실제 <오만과 편견> 속 지역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고풍스러운 배경, 소품, 의상들과 주인공들의 억양까지 잘 구현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유쾌한 21세기 여성의 톡톡 터지는 입담과 함께 즐거운 대비가 이루어지는 드라마.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꼭 보기를 바란다.

[다섯] <남과북> (2004)

 드라마 <남과 북>

드라마 <남과 북> ⓒ BBC


BBC에서 방영된 4부작 TV 시리즈로 빅토리안 시대의 엘리자베스 개스켈(1810~1865)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 영국 산업 혁명 당시 기술 혁신과 이로 인해 사회·경제 등의 큰 변혁이 일어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부의 목사 가족이 신념에 따르기 위해 북부로 이사 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부의 여성 마가렛 헤일(다니엘라 덴비-애쉬분)과 북부의 남성 존 손튼(리처드 아미티지) 사이의 상이한 가치관과 그로 인한 갈등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감독은 부유한 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국의 남쪽과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황폐해져 가고 있는 북쪽의 느낌을 화면의 색감과 조명등을 통해 상반되게 표현했다. 사람들의 태도, 어투 등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연출해, 아직까지도 상이한 남쪽과 북쪽의 이미지 및 당시의 현실을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황폐해진 환경과는 대비되는 따뜻하고 애틋한 둘의 사랑 이야기를 함께해보자.

[여섯] <제인 에어>

 영화 <제인에어> 포스터

영화 <제인에어> 포스터 ⓒ (주)시너지하우스


잔혹한 세상 속에 내팽겨져 상처받은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만큼이나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외모에 총명한 고아 소녀 제인에어가 명문가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어 마스터와 사랑에 빠지고, 저택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소설이다. 당대에 베스트셀러 였지만 보수층에 의해 금지목록에 오르기도 했었던 화제작으로, 무려 10편(1914, 1921, 1934, 1944, 1970, 1983, 1996, 1997, 2006, 2011) 이 넘는 관련 영화와 드라마가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06년 BBC에서 방영된 4부작 드라마다. 사자 같은 외모와 거칠고 상처받은 남주인공 에드워드 페어팩스 로체스터로 유명 영국 배우 토비 스티븐스가 열연하여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고, <디 어페어><스몰 아일랜드>의 루스 윌슨이 제인 에어로 캐스팅돼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완벽하게 그려냈으며, 각종 TV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각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려진 제인과 에드워드를 보는 재미를 주는 작품인 <제인 에어>를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일곱] <다운튼 애비>

 드라마 <다운튼 애비> 포스터

드라마 <다운튼 애비> 포스터 ⓒ ITV


비록 유명한 원작을 배경으로 두고 있지는 않지만, 영국 시대극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영국 ITV에서 방영 당시 1000만명의 시청자 수를 넘어섰고, 2시즌부터는 국민드라마로 불린 <다운튼 애비>. PBS에서 방영되면서 미국에서도 엄청난 반항을 일으켰다. 또 매년 1000만명의 뷰어를 돌파하며 정점에 섰다. 영국드라마가 미국에서 이와 같은 열화와 같은 인기를 끈 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abc, NBC, FOX와 같은 메이저 방송사가 아님에도 이와 같은 인기는 화제가 됐다.

드라마는 20세기 다운튼 애비의 주인인 그랜섬 백작 부부와 변화하는 시대상황, 고용인들의 암투와 비밀들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화려한 배경과 의상들에 비해 다소 우울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고, 등장인물이 바뀌기도 했지만, 시즌이 지나가면서 스토리는 더더욱 탄탄해 졌고 분위기도 안정적으로 바뀌었으며 해피엔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도 했다. 이런 장기 시리즈의, 로맨스와 스릴이 가득할 뿐더러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시대극은 <다운튼 애비>가 처음이었기에 수많은 폐인을 생산하기도 했다. 시대극을 좋아한다면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여덟] <브루클린>(2015)

 영화 <브루클린> 포스터

영화 <브루클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50년대의 우아함과 세련됨을 뛰어난 영상미로 풀어내고 작품성을 인정받아 각종 시상식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캐롤>의 제작진이 선보여 주목받은 작품 <브루클린>. 본 영화는 아일랜드 대표 작가 톰 코이빈의 동명소설 <브루클린>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1950년의 아일랜드와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똑똑하지만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없어 목사님의 도움으로 브루클린으로 오게 된 주인공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분)는 낯선 타국에서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비행기로 전세계를 빠르게 이동 할 수 있는 현재와는 달리, 고가의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배로 이동해야 했던 50년대는 해외 노동자가 되는 건 정말 어려운 결심이었다. 그랬기에 고향과 가족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던 그녀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야간 대학에 진학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등 브루클린을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세상은 토니(에모리 코헨 분)를 만나면서 완벽해 진다. 하지만 언니의 부고 소식으로 잠시 아일랜드에 돌아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아일랜드 신사 짐 패럴(도널 글리슨 분)과 만나면서 흔들리게 된다.

영화 <어톤먼트>를 통해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연소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시얼샤 로넌은 이번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고 흔들리고 다시 중심을 잡아가는 한 여성의 복잡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섬세하고 서정적이게 표현했다. 그런 그녀와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복고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거기다 더해진 주인공들의 위트와 재치는 영화를 더욱더 흥미롭게 만든다. 1천1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되었지만, 전미 3천832만2743달러, 월드와이드 6천207만6141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 시얼샤 로넌은 런던 비평가 협회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각종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 본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임현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13suj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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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문화생활을 즐기고픈 부산 여자 1인의 이야기 입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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