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new face> 뮤직비디오.

싸이 뮤직비디오. ⓒ YG


싸이가 컴백했다. 컴백과 동시에 국내 음악차트를 싹쓸이하고 5개국 아이튠즈 1위에 올랐다. 음악과 비디오는 여전히 '그답다'. 현아, 가인에 이어 손나은씨가 제 3대 '싸이 걸'로 열연했고 배우 이병헌이 등장해 마임을 한다.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노래 'PPAP'를 부른 '파인애플 가이'도 나온다. 닮은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보도자료를 보니 정말로 실제 주인공인 일본인 코미디언 피코 타로가 맞단다.

'싸이답다'는 점은 약일까 독일까. 싸이는 지난 10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있었던 정규 8집 공식 발표 행사에서 스스로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그리고 코미디와 군무, 쉬운 후렴구와 중독성 있는 안무까지 '강남스타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신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많은 분들이 답습이라 이야기하나, 나는 달라지기보다 업그레이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인가 답습인가

그는 업그레이드됐을까. 먼저 두 곡의 타이틀 중 '뉴 페이스'부터 살펴보자. 우선 '강남스타일', '젠틀맨', '대디'의 비디오까지 꾸준히 지적받았던 성차별적 요소가 줄었다. '싸이 걸'의 등장은 여전하지만, 싸이와 댑 스탭을 같이 추거나 립싱크를 함께하는 등 역할이 크게 늘었다. 남자들의 장난, 이를테면 '젠틀맨' 뮤직비디오에서의 '의자 빼기'나 '커피 잔 치기'같은 유치하고 폭력적인 희롱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같은 비디오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은 수영장에 던져지지만, '뉴 페이스'의 싸이 걸 손나은은 싸이와 함께 수영장에 뛰어든다. 성차별적 요소를 그의 한계로 생각했던 이들에겐 이 정도 변화면 업그레이드라 부르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음악은 어떨까. 싸이는 'I need a new face'라는 가사를 반복하는데, 이것은 new song (새로운 노래) 또는 new inspiration(새로운 영감) 정도로 바꾸어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그리고 이 새로움을 표현할 스태프로 '강남스타일'을 함께 만든 작곡가 유건형과 뮤직비디오 감독 조수현을 그대로 선택했다.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답습이 아닌 '싸이의 스타일'의 분명한 선언처럼 보인다.

케이 팝 전문 해외 블로거와 유튜버들의 평을 보면 "결국엔 강남스타일 그대로"라는 평과, "우리가 싸이를 통해 보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평이 엇갈린다. 평가는 듣는 사람 몫이라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적어도 '싸이다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답습이라는 평도 그의 새 음악과 비디오에서 싸이가 보이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팝 음악의 홍수 속에서 얼핏 보아도 저건 싸이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을 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병헌 활용의 좋은 예

 싸이 신곡 <new face〉뮤직비디오.

싸이 신곡 ⓒ YG


더블 타이틀곡인 'I LUV IT'도 살펴보자.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배우 이병헌의 출연이다. 이병헌이 아낌없이 망가진다는 말을 들어서 그가 말춤이라도 추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대신 간단한 마임과 '씨 발라먹어'같은 언어 유희적 가사를 때 아닌 느와르 연기로 보여주는 정도의 역할을 하는데, 딱 적당한 활용이었다고 본다.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가진 무게감을 훼손해가면서까지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으므로.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글 가사와 유튜브 영어 자막 간 내용 차이다. 이번 비디오엔 해외 팬을 위한 가사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데. 이 영어 자막의 내용이 한국어 가사와 내용이 종종 다르다. '내 나이는 마흔, 불 끄면 스무살'(turn off the lights, I'm twenty babe) 같은 자막은 한국어 가사엔 없는 내용이다. '생선을 먹을 땐 가시 발라먹어'와 같은 말장난은 무리해 영어 번역하는 대신 무난한 의역을 택했다.(play folk, bring a fork) "해외 팬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안 되더라"는 그의 인터뷰를 상기하게 하는 대목이다.

다만 해외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과정에서 호텔 노동자나 마사지사 분장이 등장한 것은 좀 아쉽다. 웃기기 위해 동양인 노동자들을 등장시킨 것은 '셀프 인종차별'이다. 상상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싸이라는 훌륭한 희극인으로 할 수 있는 코미디가 그렇게 없었을까. 물론, 싸이는 원래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해 버리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I LUV IT엔 선비보다 좀비가 좋다는 가사가 나온다)

음악가의 본령

 싸이 <I luv it〉뮤직비디오

싸이 ⓒ YG


강남스타일은 5년 전 노래고 그 사이에 또 한 장의 정규 음반이 나왔지만 여전히 그는 해외 팬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해외 시장만 노리고 국내 시장에는 아예 음원 발표조차 안 했다가 황당하게 실패해 버린 <젠틀맨>의 패착을 반복할 수도 없다. 어느덧 나이 마흔이 된 아티스트에겐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겼지만, 누군가에겐 그 스타일이 과거의 답습으로 읽힐 수도 있다. 콘서트에서 부를 노래는 늘었지만 그렇다고 정규 음반의 목적이 콘서트 주크박스의 확장에 있어서는 곤란하다. 한 마디로 싸이는 지금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 애매하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굳이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그의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진보하려는 노력과 흔들림 없이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겠다는 뚝심이 느껴진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싸이는 알고 있다.

싸이 손나은 이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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