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하는 영화마다 몸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연기를 선보이는 설경구도 자책을 한단다. 지난 2일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아래 <불한당>) 언론 시사가 끝난 뒤 이어지는 기자회견 사이, 설경구는 잠시 얼이 빠져있었다. '나 왜 저렇게 연기했지?' 편집까지 완료된 완성품으로서 <불한당>을 처음 본 순간 그가 느낀 감정은 그토록 솔직했다.

"언론시사 당일 <불한당> 완성본을 처음 봤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처음 보면 (스크린 속의) 내 모습만 보게 된다. 왜 좀 더 '갖고 놀지 못했을까?' 하는 잠깐의 자책이 있었다."

스스로 "속을 갉아먹는 스타일"이라고 밝힌 그는 언론시사 당시 호평을 받고 곧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서 상영될 영화 <불한당>을 두고도 "칸에 갈 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칸이 살렸다'"고 평했다. 부담감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친 겸손일까? 아마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이 대신 알려주지 않을까.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근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영화 <불한당>의 배우 설경구가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관심을 받고 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배우 설경구는 "17년만에 칸에 가본다"면서 "그래서인지 잘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 CJ엔터테인먼트


"감독과 밀당했다"

<불한당>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범죄 액션물'이다. 그렇다. 최근 한국에 범람하고 있는 그 '흔한' 범죄 액션물말이다. 설경구도 그런 이유에서 <불한당>의 출연을 망설였다. 그가 출연을 결정한 배경에는 <불한당> 변성현 감독의 자신감이 있었다.

"설정 자체가 워낙 비슷한 영화들이 많지 않았나. 근래 교도소 설정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나왔고. 그리고 또 남자 이야기. 너무 막 쏟아져 묻히지 않을까 했다. 장르도 흔하고. 그래서 우리가 왜 칸에 가? 했다. 사실 정말 의외였다. 감독의 확신이 뚜렷했다. 본인은 다른 영화 만들 거고 느와르보다 좀 더 감정에 집중하겠다고. 그 감독은 자기 확신이 없으면 정확하게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믿음이 갔다. '자기 것이 있구나' 하고. 그래서 나도 모험을 한 거다. 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믿었기 때문에 그건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설경구는 스스로 "감독과 밀당을 잘했다"고 자평했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썼으니 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작가기 때문에 각본을 쓴 사람을 믿어야 한다. 그렇게 믿는듯 안 믿는듯 하면서 찍었다." (웃음)

"변성현 감독이랑 두 번째 만난 날에 술을 마시면서 죽이 맞으니까 '말을 놓자'고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으로 '죽여버리겠다'고까지 했다. 계속 확신이 있다고 하니까 '당신 말과 달리 차별점이 없는 영화가 안 나오면 정말 죽여버릴 거'라고. (웃음) 만들고 나서 감독이 '나 안 죽이셔도 될 것 같다. 죽일 일 없을 거다'라고 하더라."

 영화 <불한당>의 배우 설경구가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관심을 받고 있다.

"왜 굳이 남자 이야기를 또 해야 하지? 싶었다. 나도 (교도소 내부를 다룬) 영화 <프리즌>을 봤는데 전혀 다른 영화 같더라." ⓒ 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배우 설경구의 때 아닌 위협(?)을 받으며 촬영한 영화 <불한당>은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했다. 설경구 본인도 "<불한당> 속에 좋은 장면이 많다. 정성을 담은 그림 같았다"고 말했다.

"콘티를 그리는 단계부터 미술 감독이 함께 참여했다. 한 커트를 그릴 때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고집을 피우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안 그리겠다고 그러고. 그렇게 합의가 돼야 겨우 한 커트 나온다. 콘티 작업부터 치열했던 것 같다. 궁금해서 한 번 보여달라고 했는데 만화를 보는 것처럼 술술 넘어갔다. 촬영 전 준비부터 믿음을 줬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하루 촬영을 접고 조명 세팅을 한 적도 있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불한당>의 에피소드 하나. <불한당> 설경구는 오직 이 장면 촬영을 위해 팔 근육을 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평소 <로키>의 장면을 오마주하고 싶었던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에게 "이 장면은 내가 반드시 촬영을 해야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불한당>의 에피소드 하나. <불한당> 설경구는 오직 이 장면 촬영을 위해 팔 근육을 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평소 <로키>의 장면을 오마주하고 싶었던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에게 "이 장면은 내가 반드시 촬영을 해야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 CJ엔터테인먼트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거는 게"

까마득한 후배 배우인 임시완을 어떻게 이끌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설경구는 딱 잘라 "임시완씨는 이끌어줘야 할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경구가 옆에서 지켜본 임시완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 걱정을 0.1%도 해본 적이 없다"고 그는 임시완을 기억한다.

"(임시완은) 계속 연기만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새벽이고 뭐고 연기에 대한 생각이 나면 전화를 해서 '이 신에서 이렇게 하면 어때요? 들어보실래요?'라면서 전화기에 대고 연기를 한다. 생각이 딱 났을 때 못 참고 전화를 하는 거다. 내가 임시완 나이 때? 난 열정적으로 술을 마셨다." (웃음)

 설경구 "촬영을 하면서 중반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재호가 유일하게 믿고 싶은 사람이 현수일 거라고. 재호는 현수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흔들렸다.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거는 게."

설경구 "촬영을 하면서 중반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재호가 유일하게 믿고 싶은 사람이 현수일 거라고. 재호는 현수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흔들렸다.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거는 게." ⓒ CJ엔터테인먼트


<불한당> 속에서 설경구는 임시완을 아끼고, 임시완은 그런 설경구를 따른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목이 날아가는 느와르적 세계에서 애정은 곧 목숨을 건 여정이다. 그런 둘 사이의 관계를 우정인지 아니면 동지애인지, 사랑인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이런 애매모호함을 부순 건 변성현 감독이었다.

변성현 감독은 몇 번이고 "<불한당>은 느와르보다 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변성현 감독이 예시로 든 영화는 무려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배우 설경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헉 했다. 촬영 끝난 다음에 들어서 다행이었다. 촬영 전에 들었으면 정말 헷갈렸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감독의 말에 동의하는듯 "극 중에서 현수(임시완)랑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언급했다. 그는 <불한당> 촬영을 중반부터 현수를 향한 재호(극 중 설경구의 배역)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했다.

"촬영 전에 김희원씨가 나를 쭉 짝사랑하는 것으로 콘셉트를 잡았다고 말해줬다. 극 중에서 내가 뭘 시키면 이유도 안 물어보고 작업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그럼 시완이를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삼각관계가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촬영 중반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고.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40대 중반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믿고 싶은 한 사람이 저 사람일 거라고 여겼다. 재호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빛도 흔들리고 고민도 한다. 죽을 위기에 있으면서도 현수 때문에 흔들리는 거다. 그게 사랑 아닌가. 목숨을 내거는 게."

 영화 <불한당>의 배우 설경구가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에 가담한 재호(설경구)와 현수(임시완) 사이에서 일어나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대돼 관심을 받고 있다.

설경구는 말한다. "조금 욕심을 내서 말하자면 여운이 남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2시간 보고 치우는 게 아니라 '왜 이 영화 계속 생각나지?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욕심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이 대사는 진짜일까? 거짓일까?

설경구가 맡은 재호라는 인물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어떤 대사는 그조차도 진짜인지 거짓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는 <불한당>에서 "속내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재호의 성격"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변성현 감독은 그런 <불한당>의 재호를 디딤돌 삼아 설경구의 옆모습을 발굴해낸다.

"다 드러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옆모습을 많이 썼다. '뭐야 진짜 옆모습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감독님이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옆모습을 많이 찍었다.

<불한당> 중간에 현수에게 재호가 가정사를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 그게 재호가 거짓말로 현수를 엮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대사를 다 말하고 나서 시완이에게 '진짜 같냐'고 물어봤다. 시완이는 '진짜 같은데요?'라고 말하더라. 스태프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진짜 같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과연 관객들은 재호의 고백을 믿을까? 진짜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설경구처럼 거짓말로 낚는 거라고 여길까? 재호는 영화 속에서 현수에게 내내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설경구 "옆모습을 많이 사용한 영화였다. 앞모습으로 계획한 것도 옆모습으로 많이 갔다. '뭐야 진짜 옆모습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감독님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포스터까지 옆모습이더라."

설경구 "옆모습을 많이 사용한 영화였다. 앞모습으로 계획한 것도 옆모습으로 많이 갔다. '뭐야 진짜 옆모습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감독님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포스터까지 옆모습이더라." ⓒ CJ엔터테인먼트


<불한당> 결말이 달라졌다고?
<불한당>이라는 제목은 변성현 감독이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 정해졌다고 한다. 설경구는 영화 제목을 그렇게 흡족해하지는 않았다. "<불한당> 이상하지 않나. 왠지 좋은 영화 같지 않고."

만약 <불한당>의 에필로그를 살렸으면 변성현 감독의 다음 작품은 <불지옥>이 될 뻔했다고 설경구는 전한다.

"원래 에필로그가 있었다. 그건 마지막에 편집됐다. 프리퀄의 가능성이 있는 엔딩이었는데 감독이 프리퀄은 절대 안 할 거라고 말해서."

한 피디는 프리퀄을 찍으면 <불한당>에 이어 <불지옥>으로 제목을 짓자고 제안했다고 설경구는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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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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