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

보안관 ⓒ 사나이픽쳐스


영화 <보안관>이 개봉 후 무난히 180만 고지를 넘으며 순항하고 있는 중이다. 제목에서 서부극 느낌을 주는데 막상 보면 왜 그렇게 제목을 지었느지 끄덕이게 된다.

시작과 동시에 주윤발이 이쑤시개를 씹어 먹는 홍콩 느와르 영화가 시선을 잡고, 그 영화의 장면과 대사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는 대호라는 '아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속 영웅과 달리, 용감하게 동료 형사와 함께 마약 사범을 잡으러 쳐들어간 모텔에서 그만 그는 마약 사범을 눈앞에서 놓치는 건 물론이고 동료 형사조차 잃고 결국 형사 직에서 물러나고야 만다.

불청객

그로부터 3년 그는 형사라는 법적 신분 대신 기장 마을 '수호자'로 동네를 누빈다. 그런 그의 앞에 바로 그 3년 전 마약 사범 체포 현장에 있었던 종진(조진웅 분)이 마을에 비치 타운을 세우겠다며 화려하게 입성한다.

영화는 서부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마을에서 신망 받던 보안관은 새롭게 등장한 실력자 앞에 무기력하다. 그러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을 내던져 악을 소탕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웨인 등등 정의로운 보안관이 등장했던 예전 서부 영화들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대호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이 영화의 방향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뻔한 구성의 <보안관>의 차별성은 우리나라 아재들의 정서를 비틀어 간다는 데 있다. 대호의 정서와 그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 분위기는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다. 정수기 사업을 하는 이웃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된 사실을 털어놓자 대호는 "왜 그런 일이 생기자마자 내게 말해주지 않았냐"다. 이 오지랖으로 대호는 마을의 대소사를 자기 삶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런 그를 호형호제하며 떠받드는 종화(김종수 분), 선철(조우진 분), 춘모(배정남 분) 역시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를 갖고 그에게 의지한다.

그들 앞에 나타난 종진이라는 사업가는 처음엔 배척당하면서도 이내 풍부한 재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 돈 앞에 끈끈했던 관계들도 하나둘씩 무기력해진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대호 대신 종진을 마을 대표로 뽑는다.

목구멍이 포도청

 보안관

보안관 ⓒ 사나이 픽쳐스


'목구멍이 포도청' 정신 앞에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뒤짚히는 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흥미로운 건 지역 공동체의 변질, 혹은 붕괴에 대응하는 대호의 모습이다. 한번 형사는 영원한 형사라며 직업정신을 내세우는데 여러 사나이들이 등장했던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대호는 분명 특이한 캐릭터다,

영화는 이른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역성이 강한 곳을 배경으로 해 강한 연고주의의 허상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는다. 억울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대호는 직업의식을 내세우며 사생결단을 결심한다. 마치 서부 영화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각성하듯 말이다.

덕분에 영화는 사나이인 척하지만, 실상은 보통 아재인 등장인물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들을 보여주게 된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 전부가 마약사범이 될 위기에 빠뜨릴 정도로 판을 키운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의 해피엔딩이지만, 관객 입자에선 지역 공동체라는 게 얼마나 자의적이고 얄팍한 것인지 씁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여전히 '지체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지역 정서의 속살.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민낯을 제시하며 영화는 프로페셔널리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뻔하지만 결코 싫지 않은 이야기. 여러 아재들 캐릭터 또한 살아있었다.

 보안관

보안관 ⓒ 사나이 픽쳐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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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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