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의순수

ⓒ TOCA.TOKYO


일본 영화 <열다섯의 순수>는 한국 영화 <문영>을 떠오르게 한다. 잔잔하면서도 주인공의 불안한 모습을 잘 담은 영상이 눈에 띈다. 내면의 상처를 쓸쓸하지만, 인상 깊은 눈빛으로 표현한 사다 나루미(오가와 사라)에겐 <문영>의 문영(김태리)이 겹친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가족 등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지녔다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문영이 점점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과는 달리, <열다섯의 순수>에선 또 다른 상처를 지닌 이와사키 진(하기와라 리쿠)이 등장해 나루미와 함께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성장담이 아닌, 주인공들의 불안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무거운 비밀과 상처를 안고 있는 두 열다섯 살의 남녀를 그린 <열다섯의 순수>는 카이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 각본을 맡은 장편 데뷔작이다. 최근 막을 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일본에선 지난해 12월 개봉했다.

밤마다 밖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진과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발레 동작을 취하는 나루미는 꿈이 있는 평범한 열다섯 살 중학생이다.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진은 어느 날, 아빠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충격에 빠진다. 나루미는 단둘이 사는 엄마에게 학대를 당하고 매춘까지 강요당한다. 낯선 환경을 짊어지기 두려운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정착할 곳은 마땅치 않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하라주쿠에서 둘은 데이트를 하지만, 잠깐 맛보는 행복일 뿐이다. 밤거리를 방황하다 우연히 들어간 텅 빈 결혼식장에서 나루미는 진을 위한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지만, 자신을 향한 확실치 않은 진의 마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닫는다. 결혼식장 뒤에 비치는 십자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손길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결국, 이들의 첫 번째 탈출은 짧은 여정으로 끝난다.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남녀를 함께 등장시켜 폭넓게 다룬다. 편부모와 살지만, 사랑을 받고 자란 진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커밍아웃으로 자신의 정체성도 혼란스럽다. 반대로 폭력을 당하면서 성장한 나루미는 진에 비해 적극적이다. 탈출을 계획한 것도, 진에게 호감을 표시한 것도 나루미다. 영화는 대사보다 주인공들의 표정, 특히 눈동자를 통해 감정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다시 마주한 현실에서 매춘의 위협에 시달리는 나루미를 진이 구해내면서 전환점을 맡는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영화는 이들의 최종 목적지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일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나를 좋아할 순 없어도 널 좋아하고 싶다"라고 외치는 진의 마지막 한 마디는 안정된 공간을 찾고 싶어 하는 최후의 절규 같다.

카이 감독이 영화에서 열다섯 살 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자신이 일하는 사회 복지 아동센터에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많아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고갈하면서도 타인을 좋아하는 감정에 서투른 아이들의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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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진수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열다섯의 순수 카이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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